잘못됐는지, 안됐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물었는데. 잘못됐지 이게. ‘아~ 이렇게 잘못했습니다’라고 써 놔놓고도, 맨 밑에다가 ‘잘못된 것인지요.’ 이렇게 물어놨어. 누가 질문했는지 모르겠는데, 기도문을 잡아야 되요. 그냥 막연히 기도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기도문이 아마 이 질문하신 분이 있을 텐데, 비밀은 아닌 거 같으니까, 누구에요? 손들어 보세요. 기도문이 뭐에요? ‘숙이겠습니다.’ 자~ 기도문이 ‘숙이겠습니다.’ 이렇게 돼 있다, 이 말이오. 숙이겠습니다. 숙이겠습니다. 이 말은 뭐에요? 내가 잘났다하라는 거요? 내가 잘났다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거요? 내가 옳다 하라는 거요? 옳다하는 생각을 버리라는 거요? 버리라는 거에요. 내가 옳다 하는 거를 놔라는 거요.
화가 난다는 거는 내가 옳다하는 거요. 상대의 행위를 탁~ 보는 순간 벌써 화가 탁 나는 거는 ‘내가 옳다.’ ‘상대가 글렀다’ 이거거든요. 그것은 숙여진 태도가 아니죠. ‘숙이겠습니다.’ 그러니까 딱 볼 때 ‘숙이겠습니다’ 하는게 나한테 딱 명심이 돼서, 그게 기준이 되 있어야 되. 그래서 딱 상대를 보면서 내가 바로 마음이 두근거리든지. 여기 설명한대로 두근거리든지, 화가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리면 벌써 내가 옳고 상대가 하는 행위가 보기 싫다 이 말이거든요. 이 마음이 두근거리거나 감각이 일어나는 것은 거기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거에요.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싫다’ 이 말이에요.
관법차원에서는 이것은 알아차리는, 기도문 갖고 얘기하는 거니까, 딱! 하는 순간 어! 내가 옳다구나. 또 내가 잘났다고 하구나. 또 내가 나를 세우고나. 이렇게 바로 그 감각, 몸에서 두근거림이 일어나든, 화가 일어나든, 일어나는 순간 바로, 또 내가 옳다고 하는 거구나. 이렇게 알아차려야 되. 기도문이 딱 명심 돼 있으면, 금방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는데, 기도문을 놓쳐버리면 경계에 팔리죠. ‘저사람 저래가지고, 저게 저래가지고.’ 이렇게 된다. 그건 벌써 아까 얘기한데로 명심을 놓쳐버리고 경계에 끌려가버렸다 이거야.
그런데 우리는 열 번이면 열 번, 백번이면 백번. 안되는게 사실은 진리에요. 안 돼. 그런데 문제는 안 되는게,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안됐을 때 안 되는 줄을 알아야 되는데, 안됐을 때 안 되는 줄을 모르는 거요. ‘아~ 내가 하심이 안됐다’ 하는 것을 알아차려야 되는데, 하심이 안 되는 것을 자기가 모른단 말이오. 저러니까 누가 안미워 하겠노? 이렇게 원인이 밖으로 딱 가서, 자기가 지금 하심이 안 된 상태라는,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게 우리들 대부분 삶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아침에 기도를 할 때, 이미 어제 것을 내가 기억을 되살린다 하는 것은, 이미 일어나 버린 거요.
그러니까 어제의 생활을 곰곰이 한두 가지를 되돌아보면서 ‘아~ 내가 하심이 안됐구나.’ ‘내가 숙이지 못했구나.’ ‘또 내가 옳다고 주장했구나.’ 이것을 하루 지난 뒤에도 알아차린다. 하루지난 뒤에. 그 경계에 탁 부딪칠 때는 자기 옳다는게 딱 서기 때문에 알아차리지를 잘 못해요. 감정에 확 쏠려버리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 지나 놓고 보면 어때요? ‘아~ 또 내가 내 잘났다고 했구나.’ 이렇게 알아차려 지는 거요. 그러니까 아침에 절을 하면, 특히 엎드려서 절을 하면서, 어제 생각을 곰곰이 되돌아보면 ‘아~ 내가 고때 기도문을 놓쳤구나. 고때도 내가 또 잘났다고 했구나.’ 이렇게 딱 하루 지난 뒤에 알아차려져.
그러면 그것을 참회하는 거요. 참회의 핵심은 알아차림입니다. 잘못한 거를 잘못했다고 알아차리는게 뭐라고? 참회. 딱 알아차려 지니까, 그 알아차림이라는 거는 잘못했을 때, 잘못했구나 하고 알아차려지니까, 다음엔 내가 탁 거기 안 빠져 들어야지. 다음엔 내가 안 휩쓸려야지. 다음엔 내가 안 어겨야지 하는 원이 따라 붙어요. 그래서 참회는 선심에 속합니다. 선법에 속한다 이 말이오. 그런데 후회는 불선법에 속해요. 후회하는 마음은 괴로운 마음이에요. 후회는 알아차리는게 아니라, 그 잘못한 거에 빠져서 자기를 학대하는 거요.
그러니까 참회는 그냥 잘못을 잘못인줄 알고 알아차리는 거요. 딱 알아차릴 때 거기에 반드시 알아차림과 ‘아 잘못했구나’ 하는 알아차림과 동시에 다시 해봐야지 하는, 다음엔 내가 안어겨야지 하는 원이 따라 붙어요. 그러니까 아침에 그렇게 딱하고 오늘을 시작하니까, 마음에 준비가 돼 있다 이거야. 경계에 딱 부딪치는 거. 그래서 오늘 또 놓치면 내일 또 그렇게 되. 그럼 이게 진실하게 공부가 된 사람은 이게 자꾸 놓치게 되고, 하루 만에 또 참회하고, 또 놓치고, 또 참회하고. 이러면 집중이 몽롱하게 일상생활에 젖은 사람이 아니고, 거기에 집중하는 사람은 점점 그 횟수가 거듭 될수록 뭐가 생긴다? 분심이 생긴다. 요걸 내가 자꾸 놓치다니. 요게 긴장이 높아진다, 이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수행의 힘이 어때요? 깊어지는 거요. 힘이, 힘이 세 진다, 이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하루 지나서가 아니라 딱 화가 나거나 딱 감정이 일어난 뒤에 금방 알아차려요. 금방 지나간 뒤에 알아차리면, 알아차린 만큼, 10분 만에 알아차리면 10분 만에 사라지고, 1시간 만에 알아차리면 1시간 만에 사리지고, 하루 만에 알아차리면 하루 지나서 격정이 사라진다, 이 말이오. 거기에 대한 맺힘이. 일단 놓친 거를 1분 뒤에 알아차려도 놓친 거란 말이오.
그렇게 하다가 기도에 집중을 하면서, 원이 자꾸 깊어지면 어떠냐? 어느 순간에 가슴이 두근 하는 순간에, 또는 화가 딱 일어나려고, 감정이 불쾌하게 탁 일어나는 순간에, 기도문이 생각나면서, 아~ 하고 마음을 탁 내려놓게 된다. 그러면 흔적도 없이 샥~ 사라지고, 아주 마음이 가볍게 증상을 체험하게 된다. 그때 ‘아~ 이거구나.’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런데 고 다음엔 또 안돼요.
그러면 처음에는 100번 만에 한번 성공을 했어. 두 번째는 계속 되는게 아니고. 50번 만에 한 번씩 되고, 그 다음엔 10번 만에 한번씩 하고, 그 다음엔 5번 만에 한 번씩 오고, 그 다음엔 한번은 되고 한번은 안 되고. 이미 힘이 붙기 때문에. 그 다음엔 어떠냐? 두 번은 되고 한번은 안 되고, 다섯 번은 되고 한 번은 안 되고, 열 번은 되고 한번은 안 되고. 안된다하는 용어로 따지면 지금도 안되지만은, 그 상태는 천향지차라는 걸 알아야 되. 그러니까 이렇게 딱 집중해서 해야 되요. 다시 말하면 기도문에 정념이 돼야 된다. 기도문에.
그건 늘 실험이오. 인생이. 안되면 ‘아~ 이런 경우에는 안 되구나.’ ‘아~ 이런 경우에는 놓치 구나.’ 이렇게 자기를 점검하는 계기가. 화가 일어나버려도 실패한게 아니라, 후회하거나 좌절할 일이 아니라, ‘아~ 이 경우에 안 되구나. 이 경우에는 안되구나.’ 자기를 늘 점검하는 계기가 되죠. 그러니까 공부가 조금씩 조금씩 실패 속에서 계속 진척이 되 나가는 거요. 그때그때는 실패하지만은 사람은 계속 바뀌어 나가는 거요. 이 사람은 지금 안 되는 거에 대해서 조금 좌절하거나 실망하는 상태에 있다, 이 말이오.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방식이 잘못됐을 때는 관점을 바르게 잡는게 중요하고, 두 번째는 관점을 바르게 잡았다고 해서 무조건 되는게 아니오. 아시겠습니까? 안 되는게 정상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안 되기 때문에 자꾸 다시 도전하고, 다시 도전하고, 다시 도전하는 거요. 그걸 이름하여 수행이라고 하는 거요. 안 되는 것들의 반복이 되는 과정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고때 마음의 상태가 주저앉으면 그것은 빠지는 거요. 고때 안되면 다시 일어나서 또 다시 해봐야지. 다시 해봐야지. 다시 해봐야지. 이게 뭐냐?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거요. 낙관주의요. 안 돼도 좋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거요. 안 되는 거 자체도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다시하고 이렇게 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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