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차원에서 얘기하면 그냥 번뇌망상이 가득한 사람이오. 지 생각에 빠셔서 지 혼자 좋아서 날뛰는 수준이다. 이렇게 내가 좀 독하게 얘기를 해야 정신을 차릴 거 같애. 왜 그렇게 말하느냐? 자꾸 남의 인생에 간섭을 하고 있어. 수행은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내 인생을 살펴라 이렇게 얘기하는데. 계속 남의 인생 얘기하고 있어.
부모는 부모로서 걱정이 되니까 시집을 가라, 왜 연습을 안하냐? 왜 거 빠져 다니냐? 부모는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얘기니까 그럼 부모로서 할 수 있으니까 그건 내버려 두면 되는데. 그 부모에게 그런 말 하지 말고, 내 지금 수행 잘 하고 있다고 참 중요하다고 요런 말 하라고 지금 얘기하고, 동생보고 도 그러고, 아빠보고도 그러고, 딴 사람 보고도 그러고. 그건 공부가 아니야. 그 공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던,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건 그 사람들의 문제라는 거요. 왜 그 사람들의 문제를 계속 갖고 시비를 해. 엄마도 엄마로서 제 말할 권리가 있고 제 생각할 얘기가 있는데. 그럼 본인도 그럼 뭣 때문에. 자기 좋으면 혼자 좋지 엄마보고 정토회 가자 소리를 뭣 때문에 하노? 엄마가 볼 때는 인생 간섭 아니야. 좋으면 니 혼자 좋지. 왜 나보고 끌고가자 그러냐? 그것처럼 엄마도 딸이니까 그걸 너무 웃는 그 모습이 좋기는 한데 너무 좀 나사 빠진 사람같이 보이지 않겠냐?
그러니까 웃는 거를 조금 조절해서 웃어라. 부모가 그렇게 생각이 들어서 조언을 해준 거란 말이야. 그러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저는 좋아서 했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네. 다음에 조심할게요. 이러면 끝날 일 아니에요 이게. 그렇다고 하지 마라는 얘기는 아니잖아. 나는 좋으니까 남이야 뭐라고 그러든 또 하면 되. 부처님 좋고, 법륜스님 좋다고 하면 된단 말이오. 남이 뭐 미쳤다고 그러던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죠? 하면 되지만은 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또 그렇게 느끼는 것도 그 사람들의 자유다.
그런데 내가 기쁜 것은 내 자유인데. 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내가 좋으면 됐지. 동생한테 부모한테 강요하지 말아. 그러니까 동생이나 엄마가 가만히 볼 때는 우리 딸이 저게 어디 종교에 미쳤나? 저 어디 미쳐가지고 저게. 부모나 어버지나 이 사람들은 걱정이 된다 이거야. 그러니까 그래서 와서 보고, 보니 안 그런데 구나. 아~ 아이고 우리 딸이 다녀도 괜찮겠다 이리 생각하면 그건 어머니 자유고, 안되겠다 니 미쳐서 날뛰어서는 안되겠다 이리 생각하면 그것도 어머니 자유고.
그런데 어머니 하자는 데로 다 따라 해라 이 말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자유를 인정해라 이 말이야. 어머니의 자유를. 내가 좋은 건 내가 좋은 건데. 남에게 이 기쁨을 전하기는 하지만은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가 이 기쁜 거를 막 말할 수 있듯이 상대도 거기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할 수가 있다. 부모님이 딸을 걱정을 해서 이런저런 얘기 하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것을 시비하는 내공부가 지금 부족하다. 내가 하나는 알았는데 둘은 모른다 이 말이오. 부처님 법을 만나서 기쁜 것은 알았는데. 그것이 엄마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야 된다. 그런데 내가 엄마라고 하는 존재, 가족에 대해서 직접.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자. 여기 둘이 여기 사람들 다 물어봐라. 길을 가다가 어떤 남자가 골목길에서 오줌누고 있으면 그냥 쓱 보고 지나가지. 그거 별 시비심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아이고 급했나 보다 이러고 지나가는데, 같이 가다가 지 남편이 길거리에서 바지 딱 내리고 오줌 누면 창피하나? 안하나? 창피하지. 그러니까 부모라는거는 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요. 왜 이 심리 현상이 일어나느냐?
그거는 자기하고 동일체로 착각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부모는 자식하고 자기와 일체감을 갖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약간 좀 창피하게 느끼는 거요. 그러니까 엄마가 그런 얘기 하면, ‘네. 어머니 그렇게도 생각 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같은 불교고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이렇게 수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잖아. 그런데 엄마가 나를 사랑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 그게 나한테는 사랑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지만은. 그런데 뭐 내 행복을 훼방한다고?
시집가면 큰일 나겠다. 부모가 있으면 시집 보내면 안된다. 공부 더 해야지. 제 원하는 데로 안되면 훼방한다 이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오. 정토회 와서 막 좋아가지고 스님도 좋아하고, 정토회도 좋아하는데 내가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은. 왜 그러냐 하면 우리의 이 공부는 좋아도 이성적인, 정신을 차려가면서 좋아해야 되고,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늘 자기 본분을 지켜가면서 좋아해야지. 그래야 언제라도 남이 뭐라 그러든 내가 구애를 안받지. 안그러면 균형감각을 잃게 된다. 그런다고 늘 남의 눈치를 보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뭐 하고 싶으면 뭐든지 다 해도 되.
그러나 상대가 거기에 대해서 느끼는 것은 항상 인정하고 용인해야 된다. 그리고 우리 이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돈 100만원 탁 가지고 정토회에다 보시하면 정토회에서 다 좋아하나 안하나? 좋아하지. 그런데 애들이 딱 들을 때 자기 신발 사 달라 그럴 때는 안 사주고 절에는 딱 100만원 갖다 보시하면, 애가 딱 들을 때면 안좋지? 여러분들이 절에다 천 만원 딱 보시했는데, 사촌이 지금 애 대학 못보내, 학비도 없는데. 그 얘길 들으면 기분 좋을까? 안좋을까? 안좋지. 그러니까 일가다 친척이다 부모다 형제다 하는 것은 늘 그게 다 각자라고 생각 안하고. 다 그걸 자기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자기한테 우선해 줘야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스님이 늘 얘기하잖아. 스님 법문 듣고 딱 좋다고 남편한테 가서 ‘여보 오늘 스님 법문 들었는데 너무너무 좋더라. 우리 스님 햐~’ 이러면 남편이 속으로 기분 나뻐. 몸은 집에 있지만은 혼이 스님한테 빠졌나? 마음이 저쪽으로 가버렸구나. 섭섭하다 이 말이야. 그래서 남편을 자꾸 끌고 절에 가자 그러면 안 갈라 그래. 그래서 어떻게 얘기해야 된다? 오늘 법문, 스님 듣고 내가 여보 너무너무 내가 반성이 됐어. 난 내가 잘났고 당신이 잘못한 줄 알았더니. 오늘 스님 법문 들어 보니까 내가 다 잘못했더라. 아~ 당신이 한 그 얘기인데도, 당신이 얘기할 때는 귀에 안들어 오더니 스님 얘기 딱 듣고 나니까. 아~ 참 내가 당신 얘기 그 동안에 내가 안들었구나. 이렇게 얘기하면 ‘거 중이 쓸데없는 소리를 그 중이 뭘 알아?’ 이렇게 하지만은 속으로는 ‘중, 거~ 괜찮다.’ 이렇게 생각해.
그래서 늘 남편을 세워주고, 아~ 스님이 당신을 하라는 걸 내가 알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다음에 슬그머니 책도 놔 놓으면 한 번 읽어 볼까? 이런 생각도 들고, CD도 꽂아 놓으면 자기 몰래 슬쩍 틀고, 여러분들이 읽어라, 읽어라, 주고. 들어라 들어라 하면 안듣는 이유가 그거 읽으며 ‘들었제? 니 어이해야 된다?’ 요구한다 이 말이야. 어떻게 하라고. 스님 여기 법문에 자기를 버려라, 자기 고집을 버려라 하면 여러분들은 탁 듣고, 저 말을 우리 남편이 들어야 되는데. 그래 다음시간에 남편 끌고 오잖아. 그래 들었제 니? 그건 뭐요? 너 고쳐라 이 얘기요 그러니까 안올라는거요. 그래서 이게 지혜로워야 된다 이 말이오. 그렇게 정진해서 여러분들의 인생에 지금보다 내일이. 올해보다는 내년이. 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나날이 나아지는 그런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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