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아이들을 잘못 키웠기 때문에, 그러니까 한 여성으로서는 착실히 살았을 런지는 몰라도 엄마로서는 역할을 제대로 못한 거요. 다시 말하면 제 살기 바빠서, 또는 잘못된 생각으로 아이들을 제대로 못 돌본 거요. 그렇기 때문에 이거는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애가 학교 안가겠다는 거부터 시작해서 사춘기를 넘어가면서 자기가 그 과보를 받아야 되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기가 “애가 왜 저러냐든지,” 억울해 하면 안 돼요. 그건 자기가 지은 인연이기 때문에 과보를 받아야 되요. 그래서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고마운 마음을 내어야 되요.
“아이고,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다.” 이렇게. 애가 학교를 안가면 “아이고 그래도 건강해서 다행이다.” 애가 학교 가서 꼴지를 해도, “아이고 그래도 학교 다녀줘서 다행이다.” 아시겠어요? 성적이 중간쯤 되면 “중간밖에 못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래도 우리아이 밑에 절반이나 있다. 중간이나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요. 그래서 긍정적으로 봐줘야 되요. 자기가 지은 인연의 과보로 따지면 이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가 나와야 되는데, 그나마 참 다행이다. 이렇게 보고 아이들을 대해야 그나마 아이들이 덜 나빠지지, 자기가 아이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걸면 자기 실망이 커져요. 자기는 애들에게 그렇게 무슨 좋은 인연을 지은 건 아니에요.
물론 이해는 되요. 살기 바빠서. 그러나 자기가 제대로 애를 키웠다 그러면 애를 들쳐 업고 가게 일을 했어야 됩니다. 남의 손에 맡기지 말고. 그것이 아이가 훨씬 더 잘 성장하는 방식이에요. 가게 시끄러운데 손님 있는데, 나쁘지 않느냐가 아니에요. 엄마가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엄마가 자기를 보살폈다. 이게 있어야 아이는 사람으로서의 믿음이 생겨요. 얼마 전에 왜, 저기, 쓰찬성에서 지진 났는데, 열몇 시간 만에 무너진 흙더미에서 꺼내니까 엄마는 죽어있었는데, 품에 있는 아기는 어때요? 하나도 안 다치고 살아있었다. 이런 얘기 들어봤어요? 이게 엄마에요.
엄마는 제 목숨을 버리고 애를 살려야 되는 거요. 그럴 때 아이가 사람이 되는 거요. 생물학적인 사람이 아니라 인류학적인 사람이 되는 거요. 우리가 말하는 양심이라는 거는 본래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엄마의 자식에 대한 헌신성이 나에게 나의 심성이 되어서 그게 우리가 말하는 양심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심성의 바탕이 선하다 하는 것은 그저 생물학적으로 낳아서 들판에 놔놔도 선하다. 이런 게 아니에요. 그거는 엄마의 자식에 대한 그 헌신성이 심성의 밑바닥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근본으로 돌아가면 선하다 라는 그런 양심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만약에 애가 태어나자마자 돼지우리에서 키워가지고 자랐다.
그러면 비록 인간종,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종이라도 우리가 말하는 그런 양심이라는 건 형성 안 됩니다. 그래서 엄마로부터 형성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가정에 불화가 많거나 엄마가 어릴 때 아이를 이렇게 남의 손에 넘기거나 이러면 아이의 심성이 불안해 지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못 갖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충분히 살기 바빠서 그랬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하고 애기를 돌보라는 게 아니에요. 구걸을 하더라도 애기를 업고 다니면서 해라. 농사를 짓더라도 애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해라. 가게를 하더라도 애기를 엄마 곁에 떼지 마라. 근거리에, 늘 애기가 보는 범위 안에 있어야 된다. 이런 얘기요.
몇 살 때까지? 최소 3살 때까지는. 3살 때까지 자아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건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에 UCLA 의학부에서 발표한 걸 보면, 24개월 된 두 아이의 뇌 사진을 찍었는데, 엄마로부터 끔찍이 사랑받은 아이는 뇌가 크고, 대뇌가 크고 활동이 아주 활발하고,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아이는 대뇌의 크기가 작고 활동력이 굉장히 활발하지 못하다. 이런 제가 기사를 본적이 있어요. 으흠. 또 지금 일본정부가 지금 한일관계나 이런 문제에선 일본정부가 지금 굉장히 발원도 못되게 하고 많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잖아요. 그래도 일본정부가 2~3일 전에 발표한 거 중에 이런 게 있어요.
현재 일본의 직장인들은 애기를 낳으면 애기 엄마에게 1년6개월 유급휴가를 줍니다. 우리나라는 얼마 줘요? 1년 유급휴가를 주는데, 그것도 안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일본정부는 이것을 3년으로 유급휴가를 주겠다. 이거 만약에 시행한다면 이거는 일본국민성이 앞으로 굉장히 좋아진다는 얘기가 되요. 우리나라도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보육정책을 좀 잘못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애기를 갖다 맡기는 데 뭘 한다? 지원을 해주겠다. 그러면 엄마가 보던 애도 맡겨요. 공짜로 봐준다니까.
이거는 역행, 반대되는 지금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거요. 그러니까 엄마가 애기를 돌보게 하고 거기에 대한 지원을 해야 되요. 원래는 제 자식을 제가 돌보지 그건 돈 받고 보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지금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하면서 이게 힘드니까 자꾸 애기를 안 낳으니까 이젠 애기를 낳고 키우는 게 개인 문제가 아니고 사회문제가 된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애기를 낳고 키우는 사람에게는 엄마개인의 책임이 아니고 우리도 같이 공동책임을 지어준다. 그게 바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우리가 낸 세금을 갖고 지원을 한다는 거요.
그래서 엄마를 어떻게 도와주느냐? 아이를 어떻게 도와주느냐를 엄마를 어떻게 도와주느냐의 관점이 잘못된 거요. 왜냐하면 투표권이 엄마한테 있으니까. 그러나 그건 잘못된 정책이오. 문제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 이게 중요한 거요. 아이가 사람이 되도록, 심성이 바르도록 키우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아이의 심성은 대부분이 엄마를 닮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를 편안하게 해줘야 되는 거요. 그러니까 첫째는 가능하면 애기 엄마가 자기자식을 키우는 게 제일 아이한테 정성을 기울여요. 어떤 남보다도 제어미가 정성을 기울여서 키운다. 한 80%는 그래요. 그런데 그렇지 않는 엄마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는 엄마권을 박탈해야 되요. 그래서 입양을 시키든지, 엄마노릇을 할 사람에게 내 보내야 되요. 사실 아이를 위해서는 그렇다는 거요. 아이를 위해서는. 그다음에 엄마의 심리가, 엄마가 키운다고 중요한 게 아니라, 엄마의 심리가 안정이 되어있어야 되요. 그래야 아이의 심성이 안정이 된다. 그러면 엄마의 심리가 안정이 되려면 남편이 애기 엄마에게 잘해야 되요. 그런데 남자들은 애한테 잘하려고 그래요. 애한테 잘하고 아내한테 못하면 애는 나빠집니다. 그러니까 아내한테 잘해야 되요. 아내한테 잘하면 아내가 심성이 안정이 되면 애기가 좋아지는 거요.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손자한테 잘하지 말고, 애기엄마한테 잘해야 되요. 그래야 손자가 잘 되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는 애기에 대해서 충분하게, 지금 얘기 들어보면 부부가 갈등을 일으키고, 자기 지금 심리가 불안하고 위축되어있고, 그런 상태에서 애기를 키웠는 데다가 거기다가 또 애기를 일찍 떼어놓고, 그러니까 자기가 애기한테 너무 많은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아시겠습니까? 우리애가 나빠질 거다. 스님이 그러더라. 이렇게 불안해하라는 게 아니라, 앞으로 애기가 어떻게 일어나든, 그걸 자기가 누구의 잘못으로? 나의 잘못으로도 돌이켜서 애기를 나무라면 안 된다.
“아이고, 내가 잘못 살아서 애가 힘들다.” 이런 마음을 내어야 애를 자비롭게 지켜볼 수가 있다. 이 말이오. 그리고 애에 대해서 요구가 많지 않고, 이렇게 고맙게 생각한다. “아이고, 그래도 내 잘못에 비하면 네가 참 잘 커준다. 그만하기 참 다행이다.” 항상 이렇게 아이한테 긍정적 마음을 내어야, 지금이라도 아이한테 좋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 정도만 하고 부부지간의 문제는 그거 뭐 알아서 하면 될 거 같은데. 그런데 남편하고 원래 부부가 같이 직장생활을 하는 거는 어리석어서 그래요. 같이 안하는 게 좋습니다. 사람이 늘 붙어있으면 갈등이 심해져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따로 사는 게 좋은데.
그러니까 자기가 이렇게 생각해야 돼. 자기는 부부라고 직장에 나와서 부부라고 생각하지? 그게 잘못된 생각이오. 집에 있을 때는 부부지만, 직장에 나오면 자기는 종업원이에요. 남편은 뭐고? 사장이고. 그러니까 자기가 종업원으로서 사장한테 예우를 깍듯이 안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거요. 제 말 이해되는가 모르겠어. 인간존재라는 것은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내가 택시를 타면 뭐라고 불리고? 승객이라고 불리고, 가게에 가면 손님이라고 불리고, 절에 오면 신도라고 불리고, 애 만나면 엄마라고 불리고, 부모 만나면 딸이라고 불리고, 남편 만나면 아내라고 불리고, 사장 만나면 사원이나 종업이라고 불리고.
자기 존재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이걸 무아라 그래요. 대승불교로 말하면 공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요. 직장에서는 남편이 사장이고 자기는 뭐다? 종업원이에요. 집에 가면 뭐다? 부부에요. 그러니까 직장에서 사장의 권위를 자기가 종업으로서 좀 깔아뭉갠 거 같네. 내가 보니까. 뭘 집어던지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저렇게 눈이 뒤집어져서 한다는 거는, 그 인간 성질이 좀 더러운 것도 있지만, 그러나 그 성질이 일어나는 거는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사장으로서의 권위가 안 섰기 때문에 저렇게 미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종업원을 사표를 내고, 아시겠어요? 종업원을 사표를 내든지, 안 그러면 같이 있어도 자기가 종업원이라는 거를 딱~ 가게 문 열고 들어가는 순간으로부터 종업원이라는 입장을 확실히 가지면 남편 발작 안할 거요. 제 말 이해가 되요? 안 돼요? 되요? 그러니까 그거는 집에 가서 남편이고, 직장에서는 사장이 마음에 안 들면 사표내고 딴 회사를 가도 되요. 그리고 이 회사에 있는 한은 사장의 대우를 딱 해줘야 되요. 딴 종업원과 동일한 입장을 자기가 딱 가지면 그런 발작 안 할 거요. 한번 실험적으로 해보세요. 내 말 거짓말인가.
그러니까 “당신의 나의 사장입니다.” 오늘부터 이렇게 100일간 기도하면서 직장생활을 한번 해보시고, 자기가 어떻게 종업원이 건방지게 사장하고 맞먹을라 하는지를 보고, 그때마다 딱 돌이키면 문제가 없을 거요. 그러면 거기 다니고, 자기가 안 되든지, 자꾸 지가 사장역할을 하려고 하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발작을 하든지 하면 사표를 내고 딴 직장으로 옮기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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