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293회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

Buddhastudy 2013. 2. 23. 04:54

출처 YouTube

  

같이 살려고 결혼했지 않습니까? 그죠? 그런데 헤어져 사는 것을 이렇게 선택을 하니 남편의 선택이 바르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너무 당연하고요. 결혼을 할 때 헤어져 살려고 결혼한 거에요? 아니에요? 같이 살려고 결혼을 했죠. 제일 좋은 방법은 애들 데리고 다 같이 가는 거요. 제일 좋은 방법은. 그러니까 오늘 집에 가셔서 스님께 여쭈어보니까 부부는 같이 살라고 부부가 된 거다.

 

헤어지라고 부부가 된 게 아니고 같이 살라고 부부가 된 거니까 쪽박을 차더라도, 뭘 먹느냐? 뭘 입느냐? 이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같이 가는 게 제일 좋다. 남편 따라가는 게 좋다. 그렇게 말씀하던데 당신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먹는 걸 못 먹어도 좋고 자는 건 천막 쳐 놓고 자는 게 좋고 그저 당신만 있으면 대만족이오. 그런데 우리 불자들이 정진을 할 때 마음이 그렇지 않습니까?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없다면 천상의 복락도 마다하겠으며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다면 저 지옥의 고통도 기꺼이 받겠습니다.’ 이게 지장보살의 소원이오.

 

그런 것처럼 나는 당신과 함께 산다면 어떤 생활도 마다하지 않겠다. 이거야. 그러나 당신과 떨어져 산다면 아무리 좋은 생활을 나한테 보장해줘도 나는 마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아이 데려가듯이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가서 밥하라면 밥하고 일 거들라면 일 거들고 농사지으라면 농사짓고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저 종하나 데려간다고 치고 데려가셔서 부려주십시오.” 이렇게 첫째 요청을 해보는 거요. 그렇게 해서 그래 갑시다.” 그러면 좋은 일이고,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쩝~ 세상일도 좋지만 그냥 여기서 같이 살자.” 해도 좋은 일이고,

 

그러고 싶지마는 그럼 애들 둘이는 어떻게 하느냐? 하난 중학교 3학년이고 하난 고3인데. 그러니 고3짜리 내년에 대학 가고, 3짜리 고등학교 보내놓고 같이 가든지, 당신은 거기 1년만 있다 오든지 하시오.” 하면 그것도 좋은 일이오. “그런데 아이들의 교육이 심각하니까 당신이 여기 남아서 아이들 돌봐야 되지 않겠소? 그러면 우리 스님의 주례 법문에 아이는 부차적이라 그랬소. 부부가 첫째고, 그러니까 애들 둘이 여기 남겨서 자취하도록 합시다. 그러고 우리 갑시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집 이거 팔아서 아이들 둘이 자취하도록 방하나 얻어주고 그 돈 분할해서 쓰도록 돈이 좀 되면 이자 받아 쓰도록 이렇게 조치를 하고 갑시다.”

 

모든 사고의 근저에 부부가 함께 하는 거를, 함께 하는 정신을 두고 대화를 하셔야 됩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그러면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 안 돼도 괜찮아요. ? 남편이 죽고도 사는 사람 많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그 죽는 거 하고 그래도 거기 가서 있는 거 하고 비교해볼 때 어느 게 나아요? 죽는 게 낫겠다. 이런 사람도 있어요. ? 죽으면 재혼이라도 하지. 그냥 죽지도 않고 이렇게 있으면 곤란하지 않소. 이렇게 들면, 같이 살려고 결혼을 했는데 이렇게까지 같이 안 살겠다고 하니 난 혼자는 못살겠소. 그러면 이혼을 합시다.

 

남편이 죽는 거 하고 이거하고 비교해봤을 때, 죽는 게 더 낫겠다고 할 정도로 내 마음이 든다면. 이 말이오. 왜 이렇게 결정하는 게 좋다. 안 그러면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근처에 깔려있기 때문에 그래. 차라리 저러니 죽는 게 낫겠다. 이런 게 늘 가슴속에 잇단 말이오. 그럼 그 상대를 살생하는 죄업을 짓게 돼. 그러니 그거보다는 그래도 죽는 거보다는 어때요? 살아있는 게 낫다. 이런 마음이 들어야 돼. 그래서 그러면 이혼을 합시다.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실망하거나가 아니고, 나는 혼자 못살겠는데 당신 이렇게 되면 나는 결국은 당신 죽기를 바라거나, 안 그러면 딴 남자가 눈에 자꾸 보이거나 하면 내가 죄를 짓게 된다. 이거야.

 

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짓고 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 이거야. 그러니 우리 솔직하게 그냥 삽시다. 이렇게 해서 이혼을 하고 사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재혼하는 길도 있다. 이건 미워서 싫어서 이익 때문에 하는 게 아니잖아요. 두 번째 죽는 거 하고 비교해보니까 그래 멀리가 있었어도 죽는 거 보다야 낫다. 1년에 한번 볼 수도 있잖아. 그죠? 죽으면 1년에 한번 못 봅니다. 죽으면 3년에도 한번 못 봐요. 10년에도 한번도 못 본다니까. 보기가 어려워.

 

남북이산가족들은 1년에 한번만 볼 수 있다면 기분 좋은 일이오? 나쁜 일이오? 엄청나게 좋은 일이오. ‘만세부를 일이오. 1년에 한번 볼 수가 있고, 1년에 한번 이상도 보고싶다면 비행기타고 가면 돼. 돈이 좀 들어서 그렇지. 그러니 남편 죽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그거 뭐 대수요. 부처님은 출가하고 집에 몇 년 만에 돌아왔어요? 12년 만에 돌아왔어요. 갈려면 이혼이라고 해주고 가든지. 그러니까 우리가 부처님을 존경을 안 하면 부처님 나쁜 사람이야.’ 간단하게 되는데. 우리가 지금 부처님을 우리의 위대한 스승으로 모시고 있잖아. 그죠?

 

그런데 10년이라고 그랬으니까 부처님보다 2년 짧잖아. 부처님은 기약도 안 했어. 기약도. 몇 년 후에 돌아오겠다고. 결과적으로 12년 만에 돌아왔지. 그러기 때문에 불자라면 남편이 자기 나름대로 원을 세워서 출가해서 수행을 하겠다든지, 어디 인도 가서 봉사를 하겠다든지, 여기 가서 고랭 농사를 돕겠다든지. 나름대로 인생의 하나의 원을 세워서 뭘 해보고 싶잖아. 그죠? 그거를 결혼했다는 한 가지 이유로 그걸 막아서 그 사람의 희망을 꺾을 이유가 뭐가 있어요?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같이 살 이유가 있느냐는 거요.

 

그러니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혼하는 게 낫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원대로 한번 해보시오. 좋소.’ 보내주고 그냥 사는 거요. 살다가 눈 맞는 남자가 있으면 그때 가서 의논해도 된다. 이거야. 그때 가서 의논해도. “여보, 혼자 살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러면 보따리 매고 총알같이 오면 다행이고. 그래도 살겠다. 그러면. 이런 일은 벌리기 전에 미리 의논하게 좋아. 벌려놓고 의논을 하면 변명이 되거든요. 무슨 얘긴지 아시겠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벌써 이게 혼자 사는 것을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렵고, 자꾸 주위에 있는 남자가 눈에 자꾸 이리치고 저리치고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히고 자꾸 들어오면 벌써 좀 위험한 거요? 안 위험한 거요? 위험하지. 그럼 부부지간에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아. 이런 일이 있다 이거야. 그러니 당신이 빨리 와서 자리를 매꾸든지. 안 그러면 이혼을 하든지. 난 죄짓기 싫다 이 말이오. 내가 인생으로 태어나서 뭣 때문에 남 눈치보고 그렇게 살 이유가 뭐가 있냐?

 

솔직하게 말해서 부부니까 의논을 해서 들어보고 상대의 처지를 내가 고려해서 그럼 좋소. 내가 2년 기다리겠소.” 이럴 수도 있고. 내 고집대로 하려고 하면 안 돼. 이미 맺어질 때 어떤 일이 있더라도이렇게 약속을 했나? 안 했나? 거기에 이것도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들어간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이렇게 이미 약속을 이미 했단 말이오. 합의 결혼을 했으니까 헤어지더라도 어떻게 해야 된다? 합의 이혼을 해야 돼. 성질로 이혼을 하면 안 되고. 합의로 충분하게 논의해서 하나도 털끝만큼도 미움이 남지 않게 서로의 처지를 고려했을 때, “아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그렇게 생각을 하면 가시는 거를 잘 다녀오십시오. 여기는 잊어버리시고. 아이 둘은 내가 책임지고 잘 살겠소.” 이렇게 보내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앉아서 원망하는 거는 비불자적 행위고 배수행적 태도다.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건 이해가 되지마는 그건 중생심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한번 해본다. 보내주거든 부처님 생각하고 그리고 또 기회가 좋잖아. 남편도 없고 이러면 잔소리도 안하고 그러니까 정토에 와서 일하기가 굉장히 수월할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을 바꿔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 보면 나한테 닥친 일이 유리한 일이 참으로 많아요. 유리한 일이. 그런데 인생이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사람은 이런 게 큰일이지마는, 인생에 여러 가지 희망이 있는 사람은 뭐 다른 것도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이 사람만 붙들고 매달리고 쳐다보고 살 이유가 없다는 거요. 내가 태어날 때 이 사람 만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결혼할 때도 수많은 사람 중에 어쩌다가 결려서 결혼한 거지. ‘꼭 이 사람이라야 된다.’라고 정해진 것도 없었고. 부모가 맺어줘서 됐으면 맺어줘서 된 거고. 선봐서 됐으면 선봐서 된 거고. 연애했으면 많은 사람 중에 어떻게 눈이 맞아서 된 거고. 특별한 거는 없습니다. 살다 보니 정이 든 거고.

 

그러니까 이런 일에 너무 마음 쓰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협의를 해서 같이 가든지 안가든지. 상대를 존중하는 게 필요해요. 바로 이 정도로 가겠다고 할 때는 자기 나름대론 결심이 있어요. 어쨌든 나름대로는 원이 있단 말이오. 우리 부처님이 집을 떠나실 때처럼 생각하고 그래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기 나름대로 한번 해보겠다는데 굳이 막을 필요 있겠냐? “뜻대로 한번 해보시오.” 이렇게 가볍게 보내줄 수도 있고.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