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기 싫으면 안보내면 되요. 왜 내 자식인데 이웃집 아저씨한테 신경 써? 남편이라면 조금 문제죠. 여러분 남편이라면 이게 반반씩 권리를 주장을 하니까 타협을 해야 되요. 이웃집 아저씨가 뭐가 걱정이오? 싫으면 “우리 아들 손대지 마세요. 당신 일이나 하세요.” 이러면 되지 또 나도 돌봐주지 못하는데 이웃집아저씨가 남의 아들까지 정성을 다해서 돌봐주겠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예. 그러세요.” 해도 되고. 싫으면 “당신이나 다니세요. 왜 남의 아들에 신경 씁니까?” 이래도 되고. 뭐가 문제요? 이런 게.
그럼 어떤 여자 분이 와서 스님한테 계속 따라다니면서 결혼하자고 하면 내가 물러야 되잖아. 이 불법은 중생을 구제하라고 내~ 읽어보면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라고 돼 있잖아. 그죠? 그런데 이렇게 까지 목매 죽겠다고 하면 수순을 해야 되지 않느냐? 그럼 여러분이 “아이고 우리 스님 역시 보살이다.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구나.” 그렇게 말합니까? 그렇게 말해줘야 되잖아. 그 여자 분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게 아니고 남한테 말할 때 뭐라고 그래야 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 이래야 말썽이 없다. 아시겠어요?
“나는 안하려 그랬는데 하도 그래서” 구차한 거요. 구차한 거. 그럼 결혼해서 살면 갈등이 생기는 거요. 조금만 어려우면 “봐라. 내가 안하려는데 네가 자꾸.” 이렇게 되는 거요. 내 선택이오. 그러한 제안은 누가 했다? 그분이 했다 하더라도 결정은 누가 내렸다? 내가 내리는 거요. 내가 내린 거 보다는 모든 건 다 내가 한 거요. 그런데 우리는 늘 이렇게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거요. 이웃집 아저씨는 좋은 마음이든 나쁜 마음이든 그냥 ‘아이를 교회 보냈으면 좋겠다,’ 하고 제안한 거요. 그건 그 사람의 문제요.
그럼 그걸 받아서 내가 어떻게 할 거냐? 이건 내 문제요. 그 아저씨에 대해선 얘기할 게 없어. 한번 생각해봐. 이웃집 아저씨는 남의 아이도 교회 데려가려는데 왜 나는 내 아이도 절에 안 데려 가려고 그럴까? 그러니 그 사람이 더 열심이죠. 그죠? 그러니까 아이는 교회 가는 게 순리요. 왜? 이 세상은 열의에 의해서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게 세상 아니오. 그러니 그걸 보고 “아~ 저분은 참 자신이 믿는 가르침에 대해서 이웃집 아이에게까지도 저렇게 열성이구나.”
그런데 내가 불자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세상의 어떤 가르침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저렇게 열심인데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게을러서 어떻게? 그러니까 마음만 ‘불교가 최고다.’ 하지, 자기 스스로 “불교 별거 아니야. 해봐야 소용도 없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까 남한테는 가서 그렇게 따져 말해도 우리 아들한테는 “그래, 니는 하지마라.” 이렇게 생각이 드는 거요. 그러니 내가 이런 경계에 부딪혀서 아~ 내가 법에 대한 믿음이 적었구나. 법에 대한 가피가 없었구나.
그래서 더 열심히 정진하는 계기가 되고. 또 아이에게도 좋은 법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좋죠. 그런데 그걸 이해관계로 우리 아들 교회 데려가려니까. “아니다.” 그때야 이제 “절에 데려와야지.” 이렇게 데려오면 어떻게 되느냐? 아이가 어린회에 나왔다가 재미없어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면 진행측에 불평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지. 교회가면 애가 재미있게 잘 놀다가 오는데. 절에는 아무리 보내고 싶어도 보내놓으면 애가 가기 싫어하는데. 어떻게 보내노? 이렇게 또 항의 하는 거요.
자기애를 갖고 또 남한테 이렇게 항의 하는 거요. 이런 게 다 뭐냐? 자기 공부가 안된 거요. 이웃집 아저씨 문제도 아니고, 절문제도 아니고, 교회 문제도 아니고, 아저씨 문제도 아니고 자기 문제다. 그걸 이 법이 정말 좋다면 아이가 이 좋은 법을 놔두고 저렇게 딴 데 귀의해서 인생을 보내는 게 안됐다 싶으면 내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되는 거요. 재산을 물려준다. 뭘 물려준다. 이런 거보다도 이 아이가 법을 공부하도록 거기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해야 되는 거요.
그런데 가장 큰 투자는 뭐에요? 내가 사람이 바뀌는 거요. 절에 열 번 데려오는 거 보다 집에서 내가 사람이 바뀌어야 되는 거요. 남편이 여기 봐요. “집에 노는데 뭐 하노? 교회나 가지.” 당신 따라 절에 안가라 그러고 교회가라는 거는 이 글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꼭 지적해야 되겠어? 지금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는 얘기요. 말을 안 할 뿐이지. 이 글 속에 이미 남편은 아내에게 불만이 있다는 얘기요. 절에 가는 거에 대해서 불만일수도 있고 평소에 행동거지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 이건 뭘 말해요?
‘절에 가면 뭐하노? 배운게 있나?’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으음. 그러니 이걸 통해서 ‘아~ 내가 이게 공부가 덜 됐구나.’ 하는 점검하는 계기로 삼으시고 부지런히 정진해서 남편이나 아내나 거기에서 뭘 잘해준다. 이런 중생식으로 해결하려고 그러지 말고. 내가 분별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정진을 부지런히 해서 주위가 “우리 부인이 절에 가더니 우리 엄마가 절에 가더니 조금 다르네.” 이런 생각이 들게 되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내에게 절에 데려가라고 얘기하거나 이러죠. 아무런 이 분은 불법에 대한 좋은 점을 모르는 거요. 오히려 불만이 있으니까 은근슬쩍 신경을 거슬리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니 남편이 뭐 나한테 불만이 있어서 그렇다. 이렇게 스님이 얘기한다 해서 오늘 집에 가서 스님 말씀 들어보니 “당신 나한테 불만 있는 거 같은데 있어? 없어?” 이렇게 얘기하지 말고. ‘내 공부가 부족하구나.’ 그러니까 애 지금 교회 갈 거냐? 절에 올 거냐? 어린이회 집어넣을 거냐? 안 집어넣을 거야?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정진이 가장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아이에게 불법을 인연 맺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도 아이가 교회 가는 게 더 좋다. 그러면 뭐 또 자기 인연이오. 종교에 믿을 자유가 있다고 그랬죠? 예. 그건 자유에요. 그러나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 법에 귀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은 사람에게 제공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강요하는 게 아니라 기회를 준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널리 전법을 해야 돼. 부처님은 45년 동안 전법하지 않으셨습니까? 전법은 어떤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오. 이 법이 너무 좋기 때문에 전법 하는 거요.
그런데 많은 불자들이 전법정신이 부족한 것은 불교가 소극적이라서 그렇다. 그런 거 아니에요. 다 복 비는데 정신이 없고, 법에 귀의해서 법의 이치를 깨치고 경험해서 자기가 새로 태어난 그런 경험이 없는 불교를 했기 때문에 정신도 부족하고 전법에 힘이 없는 거요. 이건 경험하게 되면 불교얘기 안 해도 매사에 이 좋은 법을 사람들에게 얘기하게 되는 거요. 학교에 가면 수학을 가르치면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불교 믿어라.” 이런 게 아니라. 널리 좋은 법이 방정식으로도 나타나고 그래프로도 나타나고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사건으로도 나타나고 온갖 것으로 나타나는 거요. 그래서 사람들이 법의 도움을 얻게 된단 말이오.
그런 전법을 여러분들이 하도록.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이렇게 정진을 하셔서 자기 인생의 고뇌를 해결할 힘을 얻어야 돼. 그러면 전법은 저절로 될 거요.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에서 깨달음을 얻으시자. 결심을 해서 전법을 한 게 아니고. 혼자인데 세력 만들려고 전법한 것도 아니잖아요. 누가 명령을 내려서 전법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 좋은 법을 저 사람들이 이 좋은 법을 듣고 얼마나 기뻐할까? 이런 생각에서 법을 전하신거요. 그래서 첫 전법도 600키로나 떨어진 먼 곳까지 가서 자기를 비난하고 간 사람한테 가서 법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처음에는 거부반응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렇게 전법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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