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860회 좋은 일 하고도 욕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 무슨 뜻

Buddhastudy 2013. 12. 30. 22:49

출처 YouTube

 

누가 전생이 있느냐?” 이게 본 질문이라면 모른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고, 그냥 우리가 얘기할 때 천당지옥이 있다고 그래요? 없다 그래요? 보통 얘기할 때. 있다고 그러고 전생도 있다 그러고 내생도 있다 그러고 이런 얘기하잖아. 그죠? 그래서 그거는 일반적으로 하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좋은 일 하고 욕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는 옛날 속담이 있는데, 왜 그런 속담이 있느냐? 그거는 좋은 일 하면 칭찬받아야 되는데, 좋은 일 하고 칭찬 안 받고 욕을 얻어먹으면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법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그죠?

 

좋은 일하면 결과로 칭찬을 받는다. 이렇게 얘기되는데. 그런데 그거는 요것만 보면 그렇고 그 전 단계까지 보면 좋은 일하고 비난을 받으면 비난이 나쁜 거 같은데 비난을 받음으로 해서 이 사람이 사실은 과거 살생을 말했다든지 뭘 해서 단명할 인연인데, 이렇게 좋은 일 함으로 해서 비난받는 연고로 명이 길어진다. 명이 길어진다 이 말이 뭐에요? 공덕이 크다. 이 얘기에요. 좋은 일 하고 욕 얻어먹으면 공덕이 크다. 명이 길이진다는 이 말이 공덕이 크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네 욕 얻어먹는 것이 나쁜 게 아니고 사실은 공덕 중에 들어가는 거다. 그러니까 욕 얻어먹는 거를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이게 수행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되냐 하면, 좋은 일 하고 욕 얻어먹는 것도 공덕이라고 안다면 그런 경우에도 빙긋이 웃을 수 있다면 좋은 일 하고 칭찬받으면 더 좋겠죠. 그럼 나쁜 일해서 욕 얻어먹으면 신경질 낼까? 웃을까? 좋은 일하고 욕 얻어먹어도 웃는 사람이 나쁜 일 하고 욕 얻어먹는 거는 문제가 되나? 안되나? 안되겠죠? 그러니까 좋은 일 하고 욕 얻어먹는 게 공덕이 된다는 도리를 알아버리면 좋은 일 하고 욕 얻어먹을 때도 빙긋이 웃을 수 있다. 그 말은 인생에 어떤 경우를 당해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 교훈을 우리가 좋은 일하고 욕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는 거로 표현한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 얘기는 이런 거요. 사람이 살생을 했단 말이오. 누굴 죽였잖아. 그죠? 그럼 그게 인과로 고대로 받으면 나도 뭐해야 됩니까? 죽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죠? 고대로 받으면 단명하는 거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1단계. 내가 한만큼 고대로 딱 받으면 단명해야 되는 거고, 두 번째 단명한다는 건 누가 나를 죽인다. 이 말이오. 그런데 누가 나한테 찔렀는데 내가 안 죽었어. 그럼 뭐가 됩니까? 찔렀는데 안 죽었다. 죽어야 되는데 안 죽으면 장애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골골하고 계속 아프잖아. 그죠? 계속 아픈 거는 죽는 거 보다는 나은 거요? 못한 거요? 나은 거요. 그런데 그 사람을 내가 보복도 할 수가 없다하면 사람이 계속 욕하고 다니지 않습니까? 그죠?

 

저놈은 죽일 놈이다. 죽일 놈이다. 죽일 놈이다.” 그러니까 이 과보가 고대로 받으면 뭐하고? 죽어야 되고. 고거보다 조금 감해지면 아파야 되고, 고거보다 조금 감해지면 욕 얻어먹어야 되는 거요. 그러니 첫 번째 받아도 당연히 받아야 되는데, 나머지 두 개는 그게 나쁜 게 아니라 그래도 네가 지은 받아야 할 과보의 비해선 좀 탕감된 거다. 그러니 그걸 갖고 기분 나빠하지 마라. 이렇게 자기에게 몸이 아프면 아픈 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이런 얘기요. 긍정적으로. 천당 간다. 지옥 간다. 이런 얘기를 진짜 천당이 있다. 지옥이 있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죽고 난 뒤에 지옥 갔다. 하는 게 여러분들 우리 엄마가 지옥 갔다.” 이런 게 좋아요? “천당 갔다.” 이런 마음이 좀 편해요? “천당 갔다.” 이런 마음이 편하죠.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이게 편해요? 천당 갔다. 이게 편해요? 그래. 그러니까 사실은 다 산사람을 위한 얘기다 이 말이오. 그러니 진짜 죽어서 그럼 지옥 가냐? 천당 가냐? 이러면 그거는 확인할 수가 없는 얘기다. 정확하게 말하면 확인할 수 없는 얘기다. 이 얘기고. 그러면 그 믿을 필요가 없습니까? 아니다. 사람이란 것은 집착을 탁 놔버리면 죽든지 살든지 생사에서 떠나버리면 되는데 그럴 수준이 우리가 못될 때는 사람이 죽었을 때 아~ 좋은 데 가서 여기보다 더 좋은 데 갔다. 그러면 그걸 애달파 하지 않게 되겠죠? 어차피 죽었는데.

 

그러니 그것은 우리에게 심리치료효과가 있기 때문에 굳이 그 믿을 필요가 없다. 이런 말 할 필요가 없다. 이 거야. 그건 효과가 있으니까. 그러면 지옥 간다. 이런 건 내가 지옥 간다해서 사람을 협박을 해가지고 막~ 겁을 주고 이거는 내가 사람들한테 별로 안 좋다. 그건 확인도 안 되는 거 갖고 사람을 협박하는 건 좋은 게 아니다. 그러니까 천당 간다. 이건 약간의 권유와 유혹은 사실이든 아니든 부작용이 별로 없는데. 협박 공갈하는 거는 세상에서도 안하는 일인데, 확인도 안 되는 일을 갖고 협박 공갈하는 거는 안했으면 좋겠다. 내 생각은 그래요. 그렇죠. 그렇죠. 긍정적으로. ?

 

어제도 약간 정신장애가 있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 분 입장에서 자기 친구나 동료들하고 비교해보면 자기에 대해서 열등의식이나 이런 게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그러니까네, 딴 사람같이 못되니까 늘 답답하고 그러니까 불안하고 그러니까 죽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잖아. 그죠? 그럴 때 이거를 어떻게어떻게 치유해서 정상적인 사람처럼 됐으면 좋겠다. 이건 저도 마찬가지요.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없는데 그 생각만 계속하고 살면 이 사람은 정신적인 질환을 고치지를 못한다. 이거야. 그런데 이분이 내가 이런 사람 경우에 애강원이나 이런 지체부자유아에 가서 한 3개월 봉사를 하라그러거든요.

 

그런데 가서 봉사를 해보면 그 사람들에 비해서 자기는 조건이 좋아요? 안 좋아요? 훨씬 좋단 말이오. “~ 나는 이걸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나도 괜찮네.” 이렇게 되면 심리가 안정이 되고 이 사람이 삶을 자기 삶을 복되게 살아갈 수가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어떤 조건에 놓인 사람이라도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거야. 그런데 우리가 이 비교해서 자꾸 열등의식을 갖기 때문에 자기 삶을, 자기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이렇게 고통 속에서 낭비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거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관계, 현재 놓인 관계를 얼마든지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제가 앞에 말 한데로 다람쥐하고 사람하고 비교하면 누가 낫다? 사람이 객관적으로 보면 나은데, 실제로 사는 거 보면 다람쥐가 더 나아요. 그 이유는 사람이 지나치게 기대가 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람쥐보다 못한 한 생을 살게 된다. 이 얘기요. 그런데 사람이 다람쥐보다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사람이 이런 욕심을 내려놓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이런 얘기요. 예를 들어서 여자든 남자든 만약에 불임이다. 애기를 못 낳는다. 애기를 못 낳는 사람이라면 결혼해서 애기를 낳아야 된다는 삶을 지향한다면 어때요? 열등해요? 열등 안 해요? 열등하죠.

 

그런데 그런 사람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버리면 오히려 좋은 몸이오? 나쁜 몸이오? 좋은 몸이오. 그러니까 그 몸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걸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좋고 나쁘 고가 생기는데, 좋고 나쁜 거는 몸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에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똑같이 나이가 60인데 머리 기르고 있는 사람이 아직 장가를 못 갔다 그러면 실패했다 그러죠? 그런데 머리 깎은 스님은 60까지 장가 안가고 버텼다 그러면 성공한 케이스에 들어가잖아. 그죠? 똑같은데 어떻게 이걸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그래서 제가 머리가 자꾸 빠져서 고민입니다. 그러면 어때요? 아이고 머리 깎으세요. 그러잖아. 머리깎아버리면 있는 머리도 깎는데 없는 머린 좋은 조건이에요? 나쁜 조건이에요? 좋은 조건이에요.

 

만약에 내가 대머리다 그러면 머리 깎는데 유리해요? 불리해요? 유리해요. 앞은 이만큼 깎을 필요가 없다. 이거요. 뒤에 것만 깎으면 되지. 그러니까 자기 몸이든 뭐든 자기에게 유리한 국면이 있는데 법으로 따지면 존재자체는 유불리가 없어. 그걸 공이라 그래.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하고 장점이 되기도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늘 자기가 불리한 쪽으로 그걸 움켜쥐고 애걸복걸한다. 이 거요. 그래서 제가 애들 가르칠 때도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하잖아. 조그마한 5살 자리애가 밥 먹다가 성질나면 엄마를 애먹이는 방법이 뭔지 알아요? “밥 안 먹어.” 이런 거란 말이오.

 

그러면 엄마가 애기한테만 절절 매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초등학교 다니면서 엄마를 애먹이는 방법 뭐요? “밥 안 먹어.” 이 정도는 그럼 먹지 마.” 이래 나오니까 안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어떻게 나옵니까? “공부 안 해.” 이렇게 나온단 말이오. 그러면 애기 공부해야 된다 생각해서 엄마가 절절맨단 말이오. 그다음에 사춘기가 되면 어때요? “공부 안 해.” 이래도 안하면 네 손해지.” 이래 나오니까 이게 그거 갖고 안 되니까. 이제 뭐라고 한다? “집 나가.” 이러고 며칠 안 들어오면 엄마가 절절 맨단 말이오. 그런데 20살이 넘어가도 그런 소리 하면 그럼 나가라.” 이러니까 안 된단 말이오. 그때는 어떻게 한다? “죽을래.” 이래 나온단 말이오. “그럼 나 죽어버린다.” 이래 나오니까 난리가 난다. 그래서 엄마는 애기를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그런데 이길 수가 있어요. 으흠. “밥 안 먹어.” 하면 하면 아이고, 양식 없는데 잘됐다. 우리 아들 착하다.” 이래서 슬쩍 넘어가고. “공부 안 해.”하면 아이고, 안 그래도 우리 집에 돈이 없어서 너 대학 보내기 어려웠는데 얼마나 착하노. 아이고, 잘했다.”이러고. “집 나가하면 아이고 방이 없어서 안 그래도 고민인데 방 좀.” 요렇게 살짝 슬쩍 하면서 얼마든지 그걸 갖고 싸우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늘 그 별거 아닌 거 갖고 전전긍긍하게 살죠. 그러니까 애가 애를 먹이는 게 아니라는 거요. 자기가 그걸 문제 삼아서 난리를 피우는 거지.

 

그런데 우리가 쓰는 언어는 이래요. 우리가 쓰는 언어는 문화적인 거기 때문에 예를 든다면 전생 얘기는 실제로 전생이 있고 없고 객관적인 걸 떠나서 우리가 어떤 문제에 있을 때 아이고, 그거 다 전생에 마~ 네가 못되어서 그래.” 이런 말을 쓰거나, 안 그러면 아이고, 너 그 짓 하면 내생에 너, 벌 받아.” 이런 말은 일상적으로 써요? 안 써요? 그냥 문화적으로 쓰는 말이오. 이거는 사실이냐? 아니냐? 이 문제를 넘어서는 거요. 예를 들면 유럽 같으면 또 유럽대로 어떤 종교적인 언어나 문화적인 언어가 있다는 거죠. 중국 같으면 사주팔자 얘기를 한다든지. 이런 것은 그냥 일상적인 언어에 속하는데.

 

그런데 문화적으로 우리가 그냥 쓰는 언어하고, 그것을 진리의 측면에서 사실인가?” 이렇게 물을 때하고는 구분해야 된다. 이런 얘기요. 으흠. 그러니까 사실이냐?” “사실이 아니다그러면 그럼 문화적인 언어를 쓰지 마라.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중 제 머리 못 깎는다. 사실이냐? 사실이 아니오. 지금 중 다 제 머리 깎아요? 안 깎아요? 다 깎아. 나도 다 아침에 다 깎아. 혼자서. 그러면 중 제 머리 못 깎는다 이 말 쓰면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단 말이오. 중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하나의 문화적 언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 이거를 그게 사실이냐? 이렇게 접근을 하면 안 된다. 그건 그것대로 쓰고 우리가 진리의 측면에서 사실이냐? 이렇게 누가 묻는다면 아니다. 요즘은 깎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해야 된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