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나무위키사가 사실 한국에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바로 파라과이에 있는데요.
남미에 있다는 것 말고는
사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국가죠.
조금은 생소한 국가, 파라과이에 대해 알아볼 텐데요.
파라과이의 영토는 406,000㎢ 정도로 한국의 약 4배 크기이며
남미 중심부에 있는 내륙 국가입니다.
국경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와 접하고 있죠.
이렇게 보면 완전한 내륙국으로 물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파라과이에서 수력발전이 전력의 거의 100%를 차지하고
오히려 생성된 에너지의 90% 정도를
이웃 국가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 대부분을 수출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전력망 수출 국가 중 하나라는 것이죠.
게다가 브라질과 공동소유하고 있는
이타이푸 댐의 수력 발전 시설은
중국의 삼협댐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대의 규모입니다.
사실 파라과이엔 바다는 없지만 풍부한 강이 있습니다.
국명부터가 사실 파라과이 강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이 강은 브라질 마투그로스 주의 상류에서 시작하여
파라과이의 중앙을 관통하며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파라나 강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파라나강은 라플라타 강을 거쳐 대서양으로 이어지죠.
그리고 아르헨티나와의 국경 쪽에는 팔코마요 강이 흐르고
이 강도 파라과이 강과 만나게 됩니다.
또 이 주요 강들을 바탕으로 주변에 여러 강들이 생성되다 보니
강이 상당히 풍부하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토 중앙 파라과이 강 하류에 수도 아순시온이 있죠.
파라과이의 자연 지리는 크게 2개로 나누어지는데요.
그 기준도 역시 파라과이 강입니다.
-동부 지역은 일반적으로 파라데니아 지역으로 불리고
이곳은 국토의 40%에 해당하지만
인구의 약 95% 가 거주하고
-서쪽은 차코 지역이라 불리며
60% 국토에 인구의 5% 정도밖에 거주하지 않습니다.
동부는 비교적 다양한 지리적 특성을 띠는데
동쪽과 북쪽의 고지대, 중앙 지역, 남부 평원까지
간단히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죠.
사실 북부 동북아 고지대라 하지만 그렇게 높진 않습니다.
세로 트레스 칸두(Cerro Tres Kandú)의 최대 고도는
842m 정도밖에 되지 않죠.
아무튼 이 지역엔 고원과 숲이 차지하고 있으며
중앙으로 내려오며 고도가 낮아지죠.
이 중앙 지역은 강과 붙어 있다 보니
고도가 당연히 낮고
일부 꼭대기가 평평한 고립된 언덕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남쪽엔 낮은 언덕조차 없는 넓은 평온으로 되어 있죠.
이번엔 서쪽 차코 지역으로 가보죠.
이곳은 최대 고도가 300미터 이하인 평야 지역이며
고원이나 언덕과 같은 장애물이 없다 보니 기후도 단순한 편이죠.
보시는 것처럼 차코 지역의 서쪽은 반건조 열대 지방으로
연간 강수량이 550~ 1,000mm 정도밖에 안 되죠.
차코 지역 동쪽은 사바나 기후로
강수량은 여름에 집중되고
특히 파라과이 강 근처는 배수도 잘 되지 않다 보니
겨울엔 사막이었던 지역이 여름엔 늪지대가 되는 경우도 발생하죠.
이런 지역은 근대에 개발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농업 활동 등을 하기 어렵다 보니
전통적으로 거주 인구가 적었고 대부분 원주민들이 거주했죠.
반면 동쪽의 중앙과 남부 지역 쪽엔
온대 몬순 기후로 전반적으로 습하긴 하나
1년 내내 강수량이 풍부하고 계절에 따른 기온 변화가 적당합니다.
실제로 수도 아순시온의 경우
가장 따뜻한 1월의 평균 기온은 29도이며, 가장 추운 7월도 18도이죠.
이렇게 대조적인 기후와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인구의 대부분은 습한 아열대 기후이자, 저지대, 혹은 평원이 펼쳐져 있어
사람이 거주하기에도, 경제생활을 하기에도 좋은, 중앙과 동남쪽 지역에
과거부터 대부분이 거주했고
자연스럽게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이 있다 보니
동쪽과 서쪽의 인구 격차가 계속 계속해서 벌어졌던 것이죠.
--독립 전 역사
자 그럼 역사를 잠시 볼 텐데요.
파라과이는 조금은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때부터 많은 원주민들이 이 지역에 살아
15세기에 이 지역을 장악한 세력은
농업, 전투력, 카누 운전 능력 등을 갖춘 과라니 족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남미가 그렇듯, 곧 유럽의 세력을 만나게 되는데요.
1537년 스페인의 페드로 데 멘도사는
2천 명의 병력과 13척의 배를 이끌고 남미로 들어오게 되죠.
항해 중 폭풍을 만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535년 라플라타 강을 통과하여
1536년엔 현재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건설하고
얼마 후 과라니족과의 전투에서 이긴 후
그들과 우호조약을 맺고
현재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지역에 요새를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스페인 제국은
이 지역에 누에바 안달루시아 주를 만들고
아순시온을 주의 수도로 삼죠.
1617년엔 행정 관할권이 분할되어
북쪽엔 아순시온을 수도로 하는 과이라주
남쪽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수도로 하는 ‘리오데 라 플라타주’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어찌 보면 파라과이가
아르헨티나와 분리되는 시작점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1500년대 말에서 1600년대 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확장되면
과라니족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특히 유럽의 질병으로 인구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고
또 스페인의 엔코미엔더 제도를 통해 강제 노동을 하며
사실상 노예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원주민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킨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제국의 승인을 받은 예수회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들은 1588년 아순시온에 도착하고
이후 리덕션이라는 원주민 정착지를 만들기 시작하죠.
이곳에선 유럽 선교사들의 보호 아래
과라니 족은 착취를 피할 수 있었고
또 세금 면제 등의 혜택을 누리기도 하며 기독교인으로 개종도 되어 갔죠.
점차 예수회의 영향력은 강해지고
리덕션 지역도 30개까지 늘어납니다.
그리고 반데이 란테스와 같은 주변 세력들로부터 방어를 하기 위해
리덕션 자체 민병대를 만들며
결국 4천 명에 달하는 병력까지 보유하고
활과 머스킷 총 등의 무기까지 확보했죠.
그러다 보니 이 예수회의 세력 자체가
스페인 제국에게도 점점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1750년 스페인, 포르투갈 간의 영토 분쟁 지역에 대한 국경을 정하는
‘마드리드 조약’이 체결되는데
이 조약에 따르면
7개의 리덕션 지역이 스페인에서 포르투갈 영토로 바뀌게 되고
그만큼 예수회의 세력이 약해지죠.
그래서 이 조약은 몇몇 예수회는 반대하게 되고
결국 예수회와 스페인- 포르투갈 연합군 간의 전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카이보테 전투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군은 4명만 사망한 반면
고라니족은 1500명 정도나 사망하며
예수회 세력이 패배를 하게 되죠.
그리고 얼마 안 가 1767년 예수회는 추방당하며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던 중 유럽에선 1789년 프랑스 혁명과
그에 이어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스페인의 힘은 상당히 약해졌죠.
1806년엔 영국의 리버 플레이트 침공이 있었는데
나폴레옹 전쟁으로 여력이 없었던 스페인 본국의 도움 없이
당시 이 지역에 스페인의 세력 ‘리오데 라 플라타’ 군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막아내게 되죠.
본국에선 나폴레옹 전쟁으로 수탈만 해가고 지원은 받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외부 세력의 공격을 막아내기까지 한 이 지역의 사람들은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움직임을 더욱 크게 가져갔고
결국 18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5월 혁명으로
스페인 부왕령의 통치를 끝내고
‘리오 데 라 플라타 연합주’로 독립하는 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코르도바, 아순시온, 몬테비데오와 같은 몇몇 세력들은
이 연합주에 들어가는데 저항을 하게 되죠.
결국 전투로까지 이어지고
코르도바는 쉽게 패배했지만
현재 파라과이(아순시온)와 우르과이(몬테비데오)는 쉽지 않았죠.
그리고 파라과리 전투와 타쿠아리 전투에서
파라과이 군이 승리하며
1811년 파라과이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독립 후 역사
사실 근대 말이 공화국이지
실상은 프란시아의 장기 독재가 시작되는데요.
근대 독립 당시, 프란시아의 독재가 조금은 이해 가기도 하는 게
당시 파라과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미개발된 지역이었고
아순시온 주민들 대부분도 농업에 종사하며 문맹인 경우가 많았죠.
즉 정치, 금융, 외교, 경제 등 여러 가지 사회 기반 시스템과 관련된
전문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매우 부족했고
이럴 땐 때론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기도 하죠.
프란시아는 언론, 경찰력을 통제하는 등, 자유를 매우 제한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엘리트 계층이나 교회 재산을 몰수하여
빈민들에게 임대해 주는 등
나름 개혁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또 외교적으로는 주변 국가들과 단절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주변국들의 비간섭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는데
그 가운데서 농업, 조선, 섬유 등 토착 산업을 발전시켜
나름 경제적 자급자족 시스템을 만들어 갔죠.
이 같은 고립 정책이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 둘러싸인
비교적 힘이 적은 독립국에겐 유리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독재라 하더라도
만약 리더가 잘만 하면 국가를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죠.
그런데 그 반대의 상황이면 리스크가 매우 커지기도 합니다.
프란시아 이후 안토니오 로페스가 뒤를 잇고
또 그의 아들 솔라노 로페스가
1862년부터 세 번째 독재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당시 브라질은 우르과이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비개입적인 노선이었던 프란시아와는 달리
브라질의 개입이 파라과이에도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브라질에게 우루과이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죠.
하지만 브라질은 1864년 우루과이를 침공하게 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파라과이는 브라질의 배를 나포하며
브라질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되죠.
그리고 이후 파라과이는 브라질을 공격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코리엔테스 지방을 건널 수 있도록 허가할 것을
아르헨티나에게 요청을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이를 거부했고
솔라노 로페스는 이번엔 아르헨티나의 전쟁을 선포하고
코리엔테스를 침공합니다.
그리고 우루과이도 친 파라과이였던 ‘블랑코 당(백색당)’이 약해지고
친브라질 세력인 ‘콜로라도 당(적색당)’이 정부의 중심이 되다 보니
당연히 우루과이도 브라질 쪽에 힘을 보탰겠죠?
이런 과정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3국 동맹이 이루어지고
이들과 전쟁한 파라과이는 처참하게 패배합니다.
당시 파라과이 인구의 절반 이상, 남자 성인은 90%
게다가 상당수의 아이들까지 군인으로 동원되어 사망하게 되었고
전쟁 이후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 손실로
경제, 아니 나라가 붕괴됩니다.
결국 독재자 로페스는 끝까지 저항하다
전투 중 사망하게 되는데요.
만약 그의 의도대로 영토 확장 정책이 잘 이루어져
어느 쪽으로든 바다로 가는 길에 영토를 얻었다면
엄청난 전쟁 영웅이 되었겠지만
결과만 본다면 독립 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국가 파라과이의 국민 대부분을
죽음으로 내몬, 최악의 독재자라 볼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어진 파라과이는 이후에도 순탄치 않았는데요.
1900년대 초 몇 차례의 혁명과
1932년에 차코 전쟁
1947년엔 내전이 있었고
1989년까진 또다시 독재가 이어지죠.
--경제
새로운 독재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의 35년간의 독재 기간 동안
물론 공과 과가 있겠지만
현재 파라과이의 좋지 않은 경제 구조가 만들어진 것에
상당한 책임은 있어 보입니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특히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부와 권력은 정부, 여당인 콜로라도당, 군에게 집중되었죠.
그리고 부와 토지도 소수에게 집중되게 되는데
과거 프란시아 시기의 독재와는 다르죠.
1989년 쿠데타가 일어나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긴 했지만
과거의 잔재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미 부가 소수에게 집중된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고
지금도 대부분의 부가
소수 상위층과
파라과이 농지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들에게 쏠리게 되며
현재는 지구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 중, 한 곳이 되었습니다.
IMF 조사 결과 기준
2023년에 1인당 GDP는 5,800달러 정도로
수리남, 엘살바도르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거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죠.
이 파라과이의 제품 수출 분포표를 보시면
경제 산업에 대해 더 잘 이해되실 텐데요.
농산물에 매우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있습니다.
생산량 세계 6위인 콩을 포함한 옥수수, 쌀 등의 농산물
또 수출 세계 10위권인 소고기가 주요 수출품이며
제조업 상품도 콩을 2차 가공한 콩기름, 대두박 등이 대부분입니다.
매우 단순하다 볼 수 있죠?
또 앞서 말씀드린 수력 발전을 통한 전기와 절연 전선도 상당 부분 차지합니다.
반면 수입 제품은
석유, 휴대폰, 차량, 데이터 처리용 기계, 설치류 퇴치 제품 등이 있죠.
이를 볼 때 1차 산업과 그를 가공한 제품이 주요 수출 산업이고
고부가 가치의 여러 물품들은
수입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볼 있습니다.
또 관광업 부분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라틴 아메리카에서 중간 정도의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또 이 수치의 상당 부분이 저렴한 가격에 쇼핑을 하기 위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서 국경을 넘어오는 수치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죠.
--나무위키가 파라과이에 있는 이유
이렇게 보면 사실 파라과이 자국 내 산업의 경쟁력은
그리 강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겠죠?
그렇다 보니 외국 기업의 유치도 상당히 중요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외국 기업에 주는 혜택 혜택이 매우 파격적인데요.
실제로 법인세율은 10%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낮다 볼 수 있으며
해외 소득에 대한 세금은 아예 없고
부유세, 상속세, 재산세, 자본 취득세 등도 전혀 없죠.
또 일반적으로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실제 거주가 필요한데
파라과이에선 공식적 거주지 없이도
영주권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영주권을 얻기도 쉽고, 기업 설립의 조건도 까다롭지 않고
또 꼭 거주하지 않아도 되고, 세금 부담도 매우 적어
디지털 유목민이나 소규모 기업가들에겐
아주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인터넷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무위키 같은 기업들도
파라과이에 본사를 두며 얻는 이점들이 상당히 있겠죠.
--높은 조직범죄지수
마지막으로 최근 눈에 들어오는 지수 하나만 소개해 드릴 텐데요.
세계 조직범죄지수 순위에서
2021년엔 16위에 위치했던 파라과이가
2023년엔 무려 4위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그 이유를 보자면 또 지리가 큰 영향을 주는데
이 파라과이의 풍부한 강에서 나오는 수로가
마약을 옮기기 매우 좋은 루트인 것이죠.
그렇다면 마약은 어디서 올까요?
파라과이 내에서도 연간 약 7천 헥타르 수준으로 대마가 재배되며
또 콜롬비아나 페루에서 생산된 코카인은
소형 비행기를 타고 파라과이에 도착합니다.
이 마약들이 브라질로 이동하거나
또 강을 통해
대서양과 마주한 항구가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나 몬테비데오까지 전달될 수 있죠.
이곳에서 마약은 유럽이나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까지도 이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마약이 이동 가능한 루트에선 밀수, 위조품 거래, 심지어 무기까지
여러 불법적인 유통들도 가능합니다.
사회는 전반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경제는 어려운데
또 무기는 얻기 쉽고, 마약이 생산되고 유통된다?
여러 조건을 합치면
조직 범죄가 기승하기 쉬운 환경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파라과이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조금은 슬픈 역사적 과정과
그에 따른 여러 어려운 부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세계의 흐름인 친환경 에너지 생산에서 큰 강점이 있고
외국 투자 증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만큼
앞으로의 발전도 기대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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