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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세계사] 디즈니 성의 원조,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만들어지게 된 이야기

Buddhastudy 2024. 9. 18. 20:04

 

 

오늘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새로운 백조 돌성이라는 뜻을 가진 이 성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성은 사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고 익숙한 성입니다.

이는 이 성이 바로 디즈니사의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성의 모티브를 제공한 성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피센에 위치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있는 자리에는

중세 때 이미 ......라는

우리에게는 매우 복잡한 이름을 가진 두 채의 성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문서상으로

1090년 최초로 언급되는 이 두 채의 성은

군사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던 요새였는데요.

중세 시대가 저물고 시간이 지나면서

두 채의 성은 쓸모를 잃은 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이렇게 방치되고 있던 두 채의 성을

재건축하려는 결정이 내려지게 됩니다.

이 결정을 내린 인물은 바로

186419살의 어린 나이로 바이에른의 왕위에 오르게 된 루드비히 2세였습니다.

루드비히 2세는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퓌센에 있는 이 두 채의 성을 재건축하기로 결정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 이유는 시대적인 것이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는 귀족과 왕족들이

중세의 성을 비롯 각종 건축물들을

종전의 군사적인 목적을 제거한 채, 재건축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도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게

중세의 군사적인 목적을 없애고

루드비히 2세가 개인적으로 머물 것으로 재건축되었죠.

 

그런데 바이에른 지역에 위치한 여러 중세의 성들 중

하필 피센에 위치한 성을 고른 것은

루드비히 2세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직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왕으로 재위할 때

루드비히 2세는 종종 이 성 근처로 놀러 와 시간을 보냈는데요

이때의 기억이 루드비히 2세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즉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시대적인 이유와 개인적인 이유가 겹치면서

지어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869년 건설이 시작되는데요.

처음에는 비교적 간단한 공사를 계획했지만

공사 과정에서 루드비히가 점점 많은 것들을 요구하면서

공사 시간과 비용 모두 대폭 증가하게 됩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원래

공사 시작 3년 후인 1872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실제로는 1884년이 되어서야 루드비히 2세가

성에서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산 위에서 대규모로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당연하게도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는데요.

루드비히 2세는 공사 비용을

국고가 아닌 왕실의 재산으로 충당하고자 했지만

당시 돈으로 600만 마르크에 달하는 공사 비용을

왕실의 재산만으로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루드비히 2세는 막대한 빚을 지면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고

1885년에는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왕실 재산이 압류될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습니다.

 

한편 이렇게 왕이 개인적으로 큰 빚을 지는 것을 두고

사회에서는 큰 논란이 일었는데요.

그런데 루드비히 2세에 대한 당대의 논란에는

보다 거시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미 독일이 1870년 프로이센의 주도로 제국의 형식으로 통일되었기에

바이에른 왕실과 루드비히 2세는

점차 허울뿐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870년 말이 지나며 루드비히 2세는

점차 공식적인 업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 때문에 몬트쿠니시

즉 달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그는

결국 1886년 퇴위당합니다.

 

이렇게 퇴위당한 루드비히 2세는

2달도 채 지나지 않아 한 호수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는데요.

 

공식적으로 루드비히 2세의 사망 이유는 자살이었지만

진짜 사인을 두고 곧 무수한 추측이 벌어지게 됩니다.

 

어쨌든 루드비히 2세가 사망하게 되자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주인을 잃게 되었는데요.

원래 루드비히 2세는 성을 지으면서

이 공간을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루드비히 생전만 해도

일반 시민들이 성을 방문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었죠.

그러나 루드비히 2세가 사망하게 되자

이런 루드비히 2세의 의도는 금방 무시되었고

그의 사망 6주 후부터 이미 성은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당시 1인당 2마르크에 입장료를 내고 성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 입장료의 대부분은

루드비히 2세가 지었던 빚을 갚는 데 쓰였습니다.

 

결국 루드비히 2세가 사망하고

13년이 지난 1899년이 되어서야

루드비히 2세의 빚은 완전히 청산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탄생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파괴될 위험에 처했는데요.

이런 위험은 정작 미국이나 영국, 소련과 같은 연합국이 아니라

나치 내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독일군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프랑스에서 약탈한 각종 미술품뿐만 아니라

독일 제국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금을 보관하고 있었는데요.

 

나치 수뇌부는 성에 보관하고 있던 금과 예술품들이

다시 적의 수중에 넘어갈 것을 두려워해

성 자체를 폭발시킬 것을 검토했었습니다.

 

다행히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아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오늘날까지 매년 150만 명이 넘게 방문하는

명소로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