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_ 치유를 위한 자기표현

Buddhastudy 2022. 2. 14. 18:46

 

 

 

말이나 글을 통한 자기 표현을 통해 내부의 심리적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

1. 표현의 혼란 ㅡ 사실과 감정을 말하지 않고 해석과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2. 진짜 감정 발견하기

3. 발견된 감정과의 대화 ㅡ 맥락의 차이 해소

4. 온전한 이해와 괴로움의 소멸//

 

 

오늘은 치유적인 자기의 표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처가 많은 시대이고,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입니다.

특히 요즘 또 역병도 돌고 경제도 어렵고 다들 힘듭니다.

 

이 순간이 힘들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는 과거로부터 쌓여온 힘든 점들도 있죠.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이 쌓이면 속병이 되지 않겠습니까?

 

치유적인 자기표현은

옛날부터 자기의 마음 상태를 표현함으로써

상당히 마음속에 쌓여있는 내부의 압력을 좀 낮추는 것으로써

자기의 표현은 굉장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죠.

최근에는 치유적 글쓰기라든지, 이런 것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결국 말로 하거나 글로 쓰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과 글을 쓰는 이유는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 마음속의 압력을 해소하는 거죠.

벨브를 열고 수문을 열어서 내부 압력을 해소하는 겁니다.

그걸 놔두면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단은 표현한다는 자체가

절반 정도의 치료 효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또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술을 먹는다든지, 그 사람만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내가 얼마나 힘들고, 넋두리가 되겠죠.

그것은 치료가 안 됩니다.

그건 잘못하면 일상적인 푸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표현을 통해서 치유가 되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1단계, 표현의 혼란

첫 번째 단계가 일단 표현하는 겁니다, 표현.

말이나 글로 표현 해보면 우리가 쓰는 단어들, 단어들이

실제 내 감정하고는 다른 말들을 쓰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 다닐 때,

시험 범위가 넓고 해야 할 공부도 너무 많아서 나는 버거웠어이렇게 표현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시험 범위도 넓은 것도 사실이고, 내가 버거웠다, 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이게 사실과 감정에 관한 것인데, 이렇게 하는 거죠.

 

학교에 시험 정치가 잘 못됐다.

그리고 시험은 실력을 테스트하는 진정한 방법이 아니다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해석이잖아.

자기 기준을 가지고 하는 해석이고 주장입니다.

 

해석하고 주장하다가 남들과 싸우고 상처 입고 힘들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치유적인 자기표현은 저럴 필요가 없는 거죠.

저러면 역효과가 나는 거죠.

 

그래서 있었던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해서 느꼈던 감정을

일단 밖으로 내놓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두 번째 단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단계, 진짜 감정 발견

진짜 감정을 발견하는 것.

교육제도가 잘못됐어, 공정하지 않아이게 아니라

나는 이 과업을 완수하지 못할까 봐 불안했어, 초조했어이게 진짜 감정일수...

 

이 감정이 예를 들면

너무 없어 보인다거나 너무 초라해 보인다거나 멋있지 않다거나 이런 게 전혀 중요한 게 아니죠.

이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이죠.

진짜 감정을 발견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해 주는 겁니다.

 

우리가 심리학에서 쉐도우라고 하는 게 저런 거잖아요.

나의 찌질한 측면, 나의 멋있지 않은 측면을 자꾸 처박아 두는 거죠.

그리고 다른 단어를 써서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묘사하고 헤쳐나가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뭐가 안 맞는 겁니다.

안 맞으니까 계속 찝찝한 거죠.

 

 

--3단계, 감정과의 대화

, 그 다음에 이게 되어야 특정 되어야 하죠.

내 감정이 진짜 감정이 탁 내 눈에 띄어야

굉장히 중요한 건데, 띄어야 그 감정과 직면해야, Confrontation이라고 하는 건데

직면해야 대화를 하죠.

상대가 생겼잖아요.

 

내 감정을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내가 어떻게 소화할 건가에 대해서 비로소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 대화를 뭐라고 하는가 하면 맥락의 차이를 해소한다이런 표현을 씁니다.

 

저번에 전쟁터에서 병사가 공습경보를 듣는 것과

집에 돌아와서 길거리에서 구급차 소리를 듣는 것은

똑같은 사이렌 소리이지만 맥락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이 대화한다는 뜻은 이것과 이것의 맥락이 다르다.

나는 이 부분을 억울하다고 느꼈거나 불공정하다고 느끼지만

다른 맥락으로 비추어보면 균형이 잡혀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는 것들을 여기저기

이 맥락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납득이 될 수 있죠.

 

 

--4단계, 온전한 이해

납득이 되면 온전한 이해의 다다르게 됩니다.

 

흔히 부부간에도 보면 친정과 시댁,

여기는 얼마나 해주고 저기는 얼마나 해주고

물리적으로보면 발란스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며느리의 친정과 시댁에 관한 여러 가지 스토리가 얼마나 많이 쌓여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을 종합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아니라

보아야 할 것도 보는 그런 대화를 하면

맥락, 도저히 참을 수 없다거나 이거는 말이 안 된다거나

이런 것들이 점점점점 해소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나는 내면에서 이 상황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하는 거죠.

온전한 이해를 한다는 게 그냥 상대방이나 상황을 무턱대고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그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온전하게 균형잡힌 이해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이해가 어디까지 다다라야 하냐하면

, 밥을 많이 먹으면 배가 부르구나, 잠을 못자면 낮에 졸리는구나

하는 정도까지 이해가

거기 무슨 우리가 감정을 실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잘못된 이해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은 거의 다 해소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이것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죠, 전혀 없죠.

 

하지만 우리가 자기 자신의 감정 상태를 직시하지 못함으로써

이 사실과 감정을 표현하는데 너무나 서툴고, 우리 문화권은 그것을 지지해주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싸나이가이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진짜 감정을 발견하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을 대화하고 이해하는 것으로해서 다를 수 있다.

다루게 되면 나의 괴로움의 상당부분이 소멸활 수 있다, 하는 얘기를 오늘 해 드렸습니다.

 

 

치유적인 자기 표현

말로 하든지 글로 하든지

진짜 자기감정을 표현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