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 대승은 제가 늘 얘기하지만 전혀 다른 가르침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적당히 섞여있다 보니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도를 닦으십니까?
무엇을 위해 불법을 닦으십니까? 몰라요.
요즘 스님들이 부자되는 법에 대해 책을 씁니다.
그게 지금 전혀 이상하지 않으시죠?
부자가 되더라도 보살도에서 나온 부자되는 가르침이라면 환영하겠는데요,
그 내용이 뭐냐는 거죠.
보살도가 어디 가버리고 없어요.
대승불교를 하지 말든가,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제 주장은 그겁니다.
저는 대승불교를 이 땅에 다시 세우고 싶어서 온 것 같아요.
저는 불교인도 아닙니다.
대승불교라는 건
사실 불교도 아니에요.
인간 안에 있는 양심을
구현하자는 가르침일 뿐입니다.
유마거사를 최고의 모델로 삼는 대승보살의 모습에는 이미 승속의 구분도 없습니다.
그냥 ‘양심의 구현자냐, 아니냐?’ 이런 구분 밖에 없습니다.
‘육바라밀을 하느냐, 안 하느냐? 이것 밖에 없어요.
지금 이 순간 아무리 힘들더라도 육바라밀이 들어가면 바로 치료됩니다.
여러분이 힘들다고 얘기할 그 시간에 육바라밀을 쓰세요.
깨어 계시고,
남을 배려하는
지혜로운 판단을 하세요.
그게 도에요.
여러분이 지금
지상에서 하셔야 할 일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산에 가서 명상하고, 견성하고, 열반에 들고, 극락가고...
다 사치입니다.
무엇을 해야 되는지 모르니까 지금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경전들이 그렇게 가르쳤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게 다른 게 아니라, 대승의 정신에 충실하기만 하면 돼요.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대승의 4법인’이 있죠?
그것에 맞지 않는 것은 따르지 마세요.
그게 모든 보살들이 자명한 진리라고 인정했던 것입니다.
“진속이 둘이 아니다.” 그러면 다른 말 하지 마세요.
현상계와 절대계를 가르지 마세요.
“나와 남이 둘이 아니다.” 이 가르침을 따르세요.
“열반에 머물지 말자.” 살아가면서 현실 속에서 육바라밀을 구현하는 것을 열반으로 삼으세요.
“요익중생”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세요. 홍익인간 하고 살아가세요.
그 중생 안에 나도 들어가고 남도 들어갑니다.
나와 남 모두를 위하는 삶을 매순간 사세요.
여러분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어요.
원효가 말하는 본래 깨달음, 즉 ‘본각의 이로움’이 우리에게는 있어요.
다만 안 쓰고 계시는 거죠.
이걸 쓰지 않으면서 죽겠다고만 하면 답이 없습니다.
지금 통일되지도 않은 교리들에 매달리지 마시고
여러분 내면에 있는 양심의 소리, 본래 깨달음의 소리를 따르세요.
그 깨달음의 소리는 여러분 안에서
지금 깨어있으라고 하고
나누라고 하고,
절제 하라고 하고,
받아들이라고 하고,
정진하라고 하고,
바르고 자명하게 판단하라고 외칩니다.
요 소리를 외면하면서 도를 논하고, 열반을 논하고, 극락을 논한다는 건
제가 보기에는 다 사치에요.
에고 놀음이에요.
그렇게 놀려면 노세요.
하지만 최소한 여기에 계신 분들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시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시면
절대계와 현상계가 하나로 꿰어져서 보일 것입니다.
“일체가 내 마음작용이구나!”
“나부터 내 마음을 바로 잡아서 이 현상계에 좋은 카르마를 짓자!”
이것 말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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