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을 표현하는 말은 많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을 보면
절대, 도, 제1원인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와 도는
삼라만상의 최초 인자라는 뜻 외에도
분별을 초월한다든지, 진리를 터득한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다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중 하나를 꼽는다면
제1원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도학적으로 다듬어 표현하면 [태일, 太一]이 됩니다.
이제 세월을 무한대로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상태,
즉 자존하며 만물의 바탕이 되는 태일로 복귀해 봅시다.
이곳에서 어느 순간 분별이 피어오르고
그와 동시에 시공이 창출될 것입니다.
연이어 정보로 가득한 삼라만상이 들어서고
정보의 차등에 따라 차원이 쭉쭉 갈라져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화되어 나온 3차원이라는 공간에
물질이라는 폐쇄 정보가 엉겨붙으면서
천지가 생겨나고, 생명이 화생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너무 쉽게 천지창조를 표현했나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태일로 돌아가 창조의 여행을 떠나봅시다.
물론 우리의 이성을 동력으로 삼아
상상 속에서만 움직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말입니다.
이 정도 타임머신이라면
우리 현생 인류의 수준으로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타임머신을 만들 시간을 가져봅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의 눈을 활짝 뜨고
상상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봅시다.
준비되었으면 이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머나먼 과거로 되돌아가 볼까요?
더 이상의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
바로 우주 삼라만상의 제1원인인 태일입니다.
타임머신의 창밖을 통해 태일을 바라봅시다.
무언가 보이는 것이 있나요?
만일에 무언가 보인다면 목적지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일은 분별이 시작되기 이전의 상태여서
그 어느 것도 볼 수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터럭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은 태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태일]을 달리 [절대]라고 부르지 않던가요?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실로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광의 목적은
뭐니뭐니 해도 시각적 정보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다면
청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살펴봅시다.
하지만 오감을 넘어 영감까지 동원한다 해도
일모의 느낌조차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태일은 분별이 완전히 멈춘, 절대 그 자체인 까닭입니다.
절대라는 말 한마디에 의해
태일에 대한 여행은 완전히 멈추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절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수리에 빗대어
절대의 상태를 알아봅시다.
절대를 수로 표현하면 무엇이 될까요?
나 홀로 존재하고 있으니 숫자 1이 될까요?
그런데 숫자 일은 절대가 아닙니다.
1 또한 비교할 대상인 0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절대를 0으로 보면 어떨까요?
0 역시 비교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하게 됨으로써
절대성을 잃고 맙니다.
정리하면
1이나 0은 절대가 아닌 분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절대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어렴풋이나마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절대는 1도 아니고 0도 아닌 상태이며,
이것은 바꿔 말해
1이면서 동시에 0인 상태입니다.
그래야만 분별이 완전히 정지되어 절대의 독전이 성립됩니다.
태일, 이놈이 절대라는 것만 알 뿐
그 외의 신상 정보는 알 길이 요원합니다.
도대체 태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태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태일은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쉽게 유인가? 아니면 무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이미 내려졌습니다.
1과 0을 동시에 만족하듯, 유와 무의 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비유비무한 제3의 존재 형태를 띄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할까요?
이 부분도 잠시 생각만 하고 그냥 넘어갑시다.
이해를 구하다가는
얼마나 오랜 세월이 소요될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인류사를 통틀어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 말입니다.
한마디로 붓다가 되어야 할 텐데
그러다가는 관광이고 뭐고 다 물 건너가고
백골이 수만 번 진토되도록
수행만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태일을 그냥 떠나려니 약간 섭섭한가요?
그래도 이곳은 나를 비롯해 우주 삼라만상에 복귀할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던가요?
그렇다면 태일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이곳이 어떤 상태로 되어 있는지만 잠깐 상상해 보도록 합시다.
태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질이
앞서 말한 [절대]라는 것입니다.
절대는 분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비교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초월적 경지로서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그런데 [변화]라는 것은 분별에서 비롯합니다.
그렇기에 분별이 없는 태일에서
어떻게 변화를 일으켜 삼라만상을 창조했는지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꾸 의문만 던지고,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하니
답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분별로써 보는 습성만 걷어내면 되니 말입니다.
허나 분별에 길들여진 사고체계를
단번에 벗어던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금처럼 시간여행을 하다 보면
점차 분별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볼 뿐입니다.
아무튼 절대인 태일만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 분별을 일으키게 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삼라만상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고,
지금처럼 영상의 내용을 가지고 씨름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태일에서 맨 처음 일어난 변화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려면
이제 태일을 떠나 타임머신의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1초에 수천 억 년이 미래로 흘러가게끔 속도를 올리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 봅시다.
그래도 타임머신의 창밖에 아무런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면
며칠만 더 기다려 봅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창밖을 바라보니
과연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는 듯합니다.
암흑의 층이 갈리며 구분이 생긴 것인데,
순도 100%의 암흑 속에
순도 99.999%의 암흑이 겹쳐지며 파동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건 도대체, 아무리 봐도 빛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암흑의 구분이 생긴 것을 보면
빛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암흑의 물결이 꿈틀대는 상태
이런 시기를 일러 [무극]이라 합니다.
무극, 요상한 시기임이 분명합니다.
이놈의 정체를 좀 더 확인하기 위해
타임머신의 시간을 1초에 100만 년으로 대폭 낮춰서 관찰해 봅시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이 흘러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어쩌다 암흑이 뒤틀리며 소용돌이치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더 이상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타임머신의 시간을 1초에 천억 년까지 올려봅시다.
그리고 며칠 기내에서 쉬다가 다시 창밖을 봅시다.
이제 무언가 변화가 보이나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직도 암흑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일모의 변화조차 없습니다.
변화가 정말로 없는 것인가요?
혹시 변화를 못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주 모형을 너무 크게 확대하다 보면
변화를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시간에 속도를 올리는 대신
타임머신의 크기를 줄여봅시다.
무한대에 가깝게 축소해 보는 것입니다.
대략 1초에 수천 조 분의 1로 줄어들게끔 하고
몇 시간 뒤에 창밖을 바라봅시다.
이제 무언가 보이나요?
극미하게 줄어들어서 보니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암흑 사이로 소용돌이치는
희미한 빛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빛, 이건 분명 변화의 조짐이 아닌가요?
빛을 추적하다 보면
뭔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빛의 창조
최초의 분별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무극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간대로 넘어온 것입니다.
무한의 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태일의 극히 일부에서
절대성을 잃어 무극이 되었고
이런 무극의 한 영역에서 분별이 시작되었습니다.
무극의 최초의 분별이 찍히는 시점,
이때를 일러 [창조점]이라 합니다.
창조점
경이로운 시점이긴 한데, 이 또한 의문투성입니다.
절대란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영원토록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데
어떻게 창조점이 찍히게 된 것일까요?
이것도 그냥 넘어갑시다.
그냥 궁금증만 한 번쯤 가져봅시다.
앞으로 올려질 영상들을 보다보면
부지불식중 저절로 풀리게 될 것입니다.
자 다시 창밖을 봅시다.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무극의 한 영역에서
무언가 빛을 뿜으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조금 피어오르다가는 이내 꺼지고
잠잠하다가는 다시 피어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저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질량을 지니고 있는 물질일까요?
아니면 질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일종일까요?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와 질량을 지닌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일종의 힘입니다.
정확히는 정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힘을 일종의 에너지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에너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에너지는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물질로 변환할 수 있지만
힘은 그저 비유비무한 정보 상태로 머무르며
만물의 설계도가 됩니다.
힘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갈라지는데
첫째는 무언가를 그려내려는 힘이고
둘째는 그려진 것을 지우려는 힘입니다.
전자를 유력, 후자를 무력이라 합니다.
이제 태일은 창조점을 통해
유력과 무력이라는 두 가지 힘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 힘의 충돌에서 빛이 창출되었고
빛이 퍼지는 반경까지 공간이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빛의 변화에 의해 시간도 생겨났습니다.
이제 시공이라는 캔버스 안에서
유력과 무력이 온갖 빛을 뿌려대며
그림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경이로운 순간입니다.
창밖을 통해 창조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볼 만한가요?
그런데 사실 무엇을 그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운이 일어났다 꺼지고 다른 기운과 뒤섞이며
괴상한 문양만을 마구 그려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마디로 추상화입니다.
추상화에도 일정한 주제가 있기 마련인데
창밖에서 펼쳐지는 최초의 추상화에는 뚜렷한 주제가 없습니다.
그저 카오스 상태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러니 재미도 없고 감상할 맛도 안 납니다.
그래서 이런 시간들을 일러 [혼극]이라 합니다.
혼극,
이런 곳에 머물러 관광하라고 하면
영 기분이 안 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금 시간이 빨리 흘러가게 해야겠습니다.
그럼 다시 1초에 수백억 년의 속도를 올려볼까요?
적당한 온도로 차를 우려내어 천천히 한 잔 마시고는
다시 창밖을 바라봅시다.
아, 드디어 카오스의 상태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그림마다 일정한 구도가 있고 여기저기 질서를 잡기 시작합니다.
문양의 통일성이 생겨나니 조금은 감상할 맛이 날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구체적으로 윤곽을 잡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때부터를 [우주]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 이르러
여태까지 어느 곳을 여행했었는지를 되짚어봅시다.
처음 도착한 곳은 [태일]이었고
그다음은 [무극]과 [창조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창조점에서 [유력]과 [무력]이 솟아나
[빛]을 토해내고
[시공]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질서한 변화로 가득 찼고,
이런 상태의 [혼극]을 지나
이제 막 질서를 잡기 시작한 지금의 시점으로 왔습니다.
질서의 출발점
이 시점부터를 우리는 [태극]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관광을 즐길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태극은 그야말로 변화가 무상합니다.
그만큼 볼거리가 쌓여 있을 것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중요한 장면들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우주여행을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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