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선과 깨달음, 천 길 낭떠러지

Buddhastudy 2024. 10. 23. 19:38

 

 

안수정등이라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안수, 절벽의 나무와

정등, 우물의 등나무 넝쿨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제목 말고

맹수에게 쫓기다가 절벽에 매달린 채 꿀을 빨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 그 얘기

할 분들도 많을 겁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난 불길에 둘러싸였습니다.

놀란 상황에서 갑자기 맹수인 코끼리가 나타나 달려듭니다.

코끼리를 피해 도망을 가다가 절벽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깊은 우물처럼 생긴 이 절벽으로

사람이 매달릴 만한 넝쿨이 드리워져 있었고

이 사람은 잽싸게 덩굴을 부여잡고 내려가 코끼리를 피했습니다.

바닥으로 내려가서 좀 쉬었으면 했는데

그 아래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끔찍스러운 뱀 세 마리가

혀를 낼름거리고 있습니다.

위에는 맹수요, 아래는 뱀이니 오갈 데가 없는 처지라

나무 덩굴을 잡고 있던 손목에 힘을 주려던 순간,

위를 올려다보니 쥐들이 나무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죽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되어버린 그 순간

얼굴에 뭔가 떨어집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그 물의 정체는

그 무언지 몰라도 아주 달콤합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깜빡 잊을 정도로 달콤했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앞뒤의 정황을 잊어버리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꿀맛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불교의 우화인 안수정등 이야기는

일단 들으면

무엇을 은유하는지 알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바로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의미하죠.

 

인간이 탐진치, 즉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에 빠져

무상의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채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오욕락의 꿀 한 방울에 목숨을 매는 현실을 비유하는 겁니다.

 

그런데 선문답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를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아니,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비유로 말해서

처지를 깨닫고, 발심을 하도록 하는 이런 우화를

어찌 선문답의 소재로 쓴다는 말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처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사들께서 이 이야기에 대해 벗어나 보라고

한마디를 제자들에게 요구했더랬습니다.

 

용성이라는 스님은 아예 전국에 편지를 보내

아는 자는 한마디 해보라고 법거량을 재촉하기까지 했습니다.

절마다 화제가 되어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전강스님이

김천 직지사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절 앞에는 스님들이 모여 있었는데 전강스님이 올라오고 있었던 겁니다.

선을 깨달아 안다는 분이 오고 있으니

거기 스님들이 당연히 안수정등 법거량을 전강에게 걸었습니다.

 

스님 절에 들어가시기 전에

전국의 고지가 내려온 안수정등에 한마디 해 보시겠습니까?”

 

스님들 앞에서는 마침 엿장수가

스님들이 가지고 나온 물건들과 엿을 바꾸어 주려고 서 있던 참이었습니다.

전강스님이 다가와 엿 한 가락을 들더니

나무 엿판에 내리쳐 소리가 나며 부서졌고

그중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말했습니다.

 

달다!”

 

멍하게 보고 있는 스님들을 뒤로 하고

전강스님은 유유히 직지사 천왕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습니다.

 

이게 조선 팔도에 파발을 띄운 후

가장 탄복한 한마디였다고 합니다.

 

용성 스님은

과연 전강의 경계를 당할 자가 없구나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답답하면

일단 이 상황을 제대로 본 것입니다.

어찌 그 대책 없는 절벽을 벗어날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난데없이 달다니 뭐 어쩌라는 걸까요?

 

말이야 맞습니다.

분명 절벽에 매달려 꿀을 빨던 나그네도 단맛을 봤고

전강의 엿도 달았겠지요.

 

절벽에 매달려 죽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상황을 바꿀 수도 없고, 시간을 늘릴 수도 없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뛰어야 했거니, 생각해도 소용이 없고,

나를 둘러싼 짐승들이 잠시 후 싹 사라져 버리는 상상을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생각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실을 봅니다.

진실은 생각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생각은 진실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안수정등 이야기는

바로 그곳을 가리키기 위해

우리 생각을 꽁꽁 묶는 방편입니다.

 

여러 스님들이 답했습니다.

만공 어젯밤 꿈속의 일이니라

혜봉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

혜월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으나

잡아 얻음이 분명하니라

보월 누가 언제 우물에 들었던가?”

고봉 아야, 아야!”

용성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웠느니라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낭떠러지에 매달려서도 단맛을 알던 그이는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