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의 유명한 명상 수행자였던 토마스 머튼은
선 해설자인 스즈키 다이스세츠와 대화를 나눈 이후
불교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가 마주 본 것은
절대적인 공과 직면하는 것과 같은
대단히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이면서도
실감나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대신하는 그 무엇이
뭔가를 보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체계화된 불교의 교리 정도가 아니라
그가 배워왔던 카톨릭의 가르침을 넘어서는
명료한 가리킴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머튼처럼 가톨릭 출신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라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가끔 예수님이 했다는 말 중에
이해하지 못할 말을 보았을 때는
그냥 “뜻이 있겠지...” 라며 넘기기도 했지만,
왜 그런 글이 성경에 실렸을까 하는 것은
쉽게 버리지 못할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비유는
궁금증을 일으키는 선의 화두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궁금증과 경건한 기도가
얽히는 인연이 가끔 있으면
저는 한없이 고요해졌고
그 고요해짐은 제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기에
정말 신비로웠습니다.
말 그대로 성령께서 임재한 듯한 느낌에 잠겨서
평화의 기도를 올리고
감사의 묵상에 들기도 했습니다.
신약 성경의 천국에 대한 수훈들은
선문답보다는 선시에 가깝습니다.
나중에 제가 선시들을 보고서
평화의 느낌을 느꼈을 때
저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그 마음의 상태를
그저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천국을 달리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선은 치열한 구도의 발걸음이지만
이것은 또한 물 위를 걷는 듯한 평화의 발디딤이기도 합니다.
선의 칼끝 같은 긴장 너머에는
적멸의 고요가 숨어 있습니다.
이게 마치 예수가 말하는 천국의 비유와 비슷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고, 이미 임하였고
너희 안에 있고, 바로 너의 것이라고 예수는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대사가 선객에게 묻기를
“어디서 떠났는가?”
“저쪽에서 떠났소”.
“저쪽 일이 어떠하던가?”
선객이 찻잔을 번쩍 드니 대사가 말했다.
“그것 역시 이쪽이다. 저쪽은 어떤가?”
선객은 대답이 없었다.
비유가 좀 비약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예수님의 말씀과 선문답이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거룩함은 그 때나 장소를 가리지 않으니
있음을 가리키는 가르침은
언제나 거룩해 보입니다.
기독교 성경이든, 선불교 선시든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선문답을 알아듣게 된 즈음에
혼자서 행선을 하며 불렀던 찬송가가 있습니다.
유명한 곡이고 가사가 아름다워
이렇게 인용하는 것이 즐겁고 기쁩니다.
찬송가 가사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제가 어릴 적 알던 그 가사로 올려봅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함께 동행하면서 나의 친구 되시오니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기독교의 정경에는 속하지 않지만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그러나 실제로 문서 자체는 발견된 성경 중에 가장 오래된
도마복음이 있습니다.
도마복음을 보면서 저는 성경의 수훈들이
선을 닮았다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기회가 되면 도마복음 선 특집을 한번 정리해 봐야 할 정도입니다.
“너희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깨달으라.
그리하면 감추어졌던 것이 너희에게 드러나리라.”
바로 앞에 있는 것, 그것입니다.
말로 가리킬 수 없는 것, 그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친절한 가르침은
말을 닫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지나치게 친절한 선사입니다.
수준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귀 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그 친절함과 온유함이
제 가슴을 절절하게 울립니다.
--
산 위에 세워지고 요새화된 도성은
쓰러지거나 감추어지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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