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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_ 수행정도에 따라 갖추게 되는 다섯 가지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Buddhastudy 2021. 9. 13. 18:37

 

 

 

 

 

본문에 보시면요,

수보리야, 어의운하오?_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유육안부아?_ 여래에게 육안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여시니이다, 세존하_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유육안이니이다_ 여래에게 육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어의운하오?_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유천안부아?_ 여래에게 천안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여시니이다, 세존하_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유천안이니다_ 여래에게 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어의운하오? 여래 유혜안부아?_ 여래에게 혜안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여시니이다, 세존하_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유예안이니이다_ 여래에게 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어의운하오?_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유법안부아?_ 여래에게 법안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여시니이다, 세존하_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유법안이니이다_ 여래에게 법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어의운하오?_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래 유불안부아?_ 여래에게 불안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여시니이다, 세존하_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 유불안이니이다_ 여래에게 불안이 있습니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말하는 오안입니다.

(오안: 수행정도에 따라 갖추게 되는 5가지 눈, 육안, 천안, 법안, 혜안, 불안)

이 오안은 반야반야밀 대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은 사상은 없고, 오안은 있다.

반야바라밀은 사상이 없어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어요.

 

그러니까 생사에 공포가 없고요, 삶과 두려움의 공포는 전부 아상인장중생상수자상에서 오는 겁니다.

이 사상의 번뇌가 끊어지면 삶과 죽음의 두려움은 전혀 없어요.

그래서 이 삶과 죽음이라는 게 있어서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일으켰기 때문에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아주 문제에요.

있어서 있는 게 절대로 아니고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이걸 지각이라 그럽니다. 지각. 알고 느낀다.

그래서 생사로 번뇌에 의해서 지각할 뿐이지, 없다, 없는 걸 어떻게 아냐?

오안을 얻어보면 알거든요, 오안을.

 

그럼 오안이 뭐냐?

첫째 육안인데요, 육안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세계를 보는 눈이에요.

부처님에게 오안이 다 있는데, 부처님에게는 인간세계를 보는 눈이 있어요.

인간세계를 보는 눈을 육안이라 그럽니다.

 

천안은 천상 세계를 보는 눈을 천안이라 그럽니다.

부처님에게 천상 세계를 보는 눈이 있어요.

 

혜안이라고 하는 것은_ 생사가 없는 것을 항상 비추어보는 눈

반야근본지로, 반야바라밀 근본지로 생사가 없는 것을 항상 비추어보는 눈을 혜안이라고 그래요.

근본지, 근본지가 육바라밀까지를 근본지라 그럽니다, 반야바라밀까지를.

반야바라밀 이후에 원바라밀, 역바라밀, 방편바라밀, 지바라밀, 십바라밀이 있는데

7바라밀 이후에부터는 전부 후득지인데요.

그것은 중생을 제도하는 지혜입니다.

 

그럼 법안이라는 것은 후득지로, 근본지가 아니고 후득지로,

근본지를 얻은 다음에 신통과 자비와 공덕을 더 많이 쌓아서 중생 제도하는 지혜를 후득지라 그럽니다.

중생제도하는 지혜를 법안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여래에게는 후득지로 설법도인하는 지혜가 있다.

설법해서 중생, 사람 제도하는 지혜가 있다.

이걸 법안이라 그럽니다.

 

불안이라고 그러면 앞에 4가지가 전부 불안이에요._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부처의 눈

부처님은 육안도 가지고 계시고, 천안도 가지고 계시고, 혜안도 가지고 있고, 법안도 가지고 있고.

그런데 이게 전부 어디서 나오냐 하면 불안에서 나온다 이거죠.

부처님 눈에서 나온다.

 

그럼 부처님 눈은 이걸 포함해서 불성을, 불성이 바로 반야인데요

이 반야를 원만이 아주 극점에까지 보는 것, 남김없이 보는 걸 불안이라 그래요.

불성을 완전 무결하게 보는 걸 불안이라 그런다.

 

육안만 얻어서는 예를 들면 불성의 세계를 다 못 보고요,

천안만 얻어서도 다 못 보고,

또 혜안만 얻어서도 다 못 보고,

법안만 얻어서 다 못 보는데

불안이 되어야 불성의 세계를 남김없이 다 봐요.

 

남김없이 다 보는 걸 둥글 원, 지극할 극, 원극이라 그래요.

불성의 원극을 보는 것이 불안이다.

아주 원만하게 지극하게, 원만지극의 경지를 본다 이거죠. 불성에 대해서.

그러면 불안이라 그럽니다.

 

오안에 대해서 설명이 많은데

경전을 설명하는 천친논, 무착논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견성, 수행하는 차원에서 오안을 설명할 때는

육안이라고 그러는 것은

우리 부모가 준 몸속에 불생불멸하는 법신이 있는 것을 보는 눈을 육안이라 그런다.

이 부모가 준 이 몸은 생로병사인데, 법신은 불생불멸이에요.

생로병상의 몸에서 불생불멸의 몸을 보면 그걸 육안이라 그래요.

이 몸은 무상한 몸인데, 여기에 무량수가 있어요, 죽지 않는. 영원한 수명이 있어요.

그걸 보면 그걸 육안이라 그런다.

 

그래서 이 몸을 오래오래 보존하려고 애쓰는 건 좀 그렇고

이 몸에서 무량수의 법신을 보는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오래 살아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깨달음으로써 해결된다. 이게 불교에요.

 

깨달으면, 무량수니까.

가지고 있는데 못 깨달아서 문제가 되는 거죠.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참 이게 보통 일이 아니오.

 

내가 절에 와서 여러 번 그런 걸 당했는데요.

절이라고 사람 안 죽는게 아니잖아요.

젊은 스님이 죽을 때, 젊은 스님들은 죽음에 대한 겁이 많아서 설려달라고 그래요.

나이 많은 스님들 보고 살려달라고 그래요.

 

그러면 나이 많은 스님이 뭐라고 그러나? 어릴 때 굉장히 호기심 있게 봤어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냉정하게 이를 데가 없어요.

약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의원을 불러주는 것도 아니고요

2가지 봤는데, 다 그러더라고.

 

한 분은 반야심경 읽어라이렇게 얘기해요.

지금 살려달라고 매달리는데, 반야심경 읽어라.

 

통도사 경봉큰스님은 젊은 스님이

스님, 살려주세요이러니까

화두 들어라.” 이러시더라고.

 

내가 그걸 보고

너무하다, 죽는 사람보고 화두 들어라 그러느냐.”

그런데 그게 딱 맞는 가르침이에요.

숨지기 전에라도 반야심경을 읽어서 그 불생불멸의 무량수법신을 보면 되는 거예요.

숨지기 바로 직전이라도 화두를 들어서 그 불생불멸의 무량수, 아미타불과 같은 죽지 않는 법신을 보면 되는 거예요.

그거 외에는 길이 없어요.

만년을 산다 하더라도 죽는 순간에는 허망한 거예요.

하루를 살아도 깨달으면 허망하지 않아요.

여기서 육안이라고 그러는게

우리 몸속에서 죽지 않는 법신을 보는 그걸 육안이라 그런다, 이렇게 설명하고요

 

천안이라고 하는 것은

견성이 명철해서, 그 본성을 보는 것이 아주 밝아서

너와 나라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의 그런 차별상이 다 끊어진 것을

죽고 사는 차별상이 다 끊어진 것을

천안이라 그런다.

 

혜안은

일체중생에게 반야의 성품이 갖추어진 것을 보는 것이 혜안이다.

 

법안은

부처님의 온갖 지혜라든지, 자비라든지, 신통이라든지, 계정혜 3학이라든지

이런 것이 반야의 본성 속에 다 갖추어진 것을 보는 것이 법안이다, 이렇게 설명하고요.

 

불안이라고 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이 일체제불을 출생시킨다.

삼세제불급 제불아뇨뇩다라삼먁삼보리 법이 개종차경출, 다 이경으로부터 놔왔다, 앞에 그런 말이 있거든요.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에서 나온다라는 것을 보는 것을 불안이라 그런다.

이것이 불성의 원극을 보는 것입니다.

불성이 아주 원만하고 지극한 세계를 보는 것을 불안이라 그런다.

 

그래서 부처님의 세계는 어떤 걸 말하느냐.

죽고 살고 너 나 있고 없고 이런 차별 번뇌는 없고

반야지혜는 밝다.

이걸 설명하는 거예요.

 

우리가 고통받는 것은

차별 번뇌에서 나온 것이지

반야지혜를 깨달으면 그건 없는 것이다.

이걸 설명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그러면 불안을 가지고 뭘 보는가?

그 보는 세계를 여기서 얘기합니다.

수보리야, 어의운하오?_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여항하중소유사를_ 저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를

불설시사부아?_ 부처님이 모래라고 말을 했느냐?

여시니이다, 세존하_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설시사니이다_ 부처님께서 모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보리야, 어의운하오?_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일항하중소유사하야_ 저 항하 가운데 있는바 모래와 같아서

유여시사등항하어든_ 이와같은 항하가 있거든

시제항하소유사수 불세계여_ 이 모든 항하에 있는 모래 수와 같은 부처님 세계여.

여시 영위다부아?_ 이와 같은 것이, _ 얼마나 가정 조사, 얼마나 많겠느냐?

심다니이다 세존하_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불고수보리하사대_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이소국토중_ 이 모든 국토 가운데

소유중생의_ 있는바 중생의

약간종심을_ 여러 가지 종류의 마음을

여래실지하나니라_ 여래가 다 아느니라.

이렇게 됐거든요.

 

그러면 여기서 뭘 말하는가?

이 부처님의 불안으로서 보는 지혜의 세계가 어떤 건지 잘 알기 어렵거든요.

부처님의 세계가 어떻다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뭐를 얘기 했느냐 하면

모래를 얘기했고요, 항하의 모래.

두 번째는 항하사 강을 얘기했고, 하수

그다음엔 세계를 얘기했고

그다음엔 중생을 얘기했고

그다음엔 중생의 마음을 얘기했어요.

이걸 불지를 이해하는 5단계라고 그래요.

 

5단계가 뭐에요?

모래_ , 항하_, 불세계_ , 중생, 중생의 마음.

이런 걸 다 안다 이거에요. 부처님이.

이것이 불안의 경지입니다.

모래가 얼마나 되는지 다 알아요.

항하가 어떤 건지 다 알고요

세계가 어떤 건지 다 알고요

중생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건지 다 알고

중생의 마음을 다 알아요.

이것이 무차별 묘지혜의 경지입니다, 차별 없는 묘한 지혜의 경지다.

이게 불세계 부처님 지혜다, 이거죠.

그런데 없거든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은 없어요.

 

그런데 이런 지혜를 가지고 이렇게.

모래들을 알고, 항하를 알고, 세계를 알고, 중생을 알고, 중생의 마음을 안다.

이렇게 해서 번뇌는 없고 지혜는 밝다.

이게 반야바라밀의 세계다, 이걸 설명하는 거예요.

 

그럼 중생은 반대죠.

번뇌는 많은데, 지혜를 못 깨달아서 걱정뿐이에요.

걱정이 모두 번뇌에요.

걱정할 일이 있어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 번뇌에 의해서 그렇게 걱정하는 거예요.

 

번뇌는 예를 들면 꿈과 같은 겁니다.

꿈에 보는 건 있어서 보는 게 아니라 자기 꿈으로 보는 거예요.

꿈에 뭘 봐도 그건 꿈이에요.

꿈에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깨면 끝이에요.

꿈에 아무리 고민되는 게 있어도 깨면 끝이에요.

 

그래서 꿈의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는 방법은 뭐예요?

꿈에 부자되게 해주고, 출세하게 해주고, 건강하게 해주고, 그거 필요 없어요.

일어나툭 때려서 깨우면 끝나는 거예요.

 

꿈에 전염병이 걸려서 오염된 채소 잘못 먹고 창자 뚫려서 죽었다.

걱정해서 의사 불러서 꿈속에서 치료해줄 게 아니라

톡 때려서 일어나그럼 끝이거든요.

 

주장자 이렇게 보여주는 건, 톡 때려서 깨워준다, 이 소리예요.

딴 거 아무것도 없어요.

 

꿈속에서의 고통은 꿈속에 들어가서 잘해주는 게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게 하면 끝나는 거예요.

그게 반야바라말입니다.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