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1)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목적이 없으면 경계가 걸리지 않나요?

Buddhastudy 2021. 12. 30. 19:43

 

 

 

반야심경 마지막 강의에서 목적이 없으면

경계에 걸리지 않고 부처의 길로 나아간다고 설법해 주셨는데요.

어떤 목적도 갖지 않고 그냥 하라는 말씀이신지 궁금합니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행해서 한발 걸어가는 사람과

한발 한발 걸어가는 사람과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 도달해야 하겠다이렇게 각오하고 결심만 하고

걷는 게으른 사람하고 누가 더 빨리 도달하겠습니까?

 

아니 내가 여기서 출발해서 서울을 가는데

서울을 간다고 목표가 정해졌는데

그다음부터는 꾸준히 도달할 때까지 다만 한발한발 가는 사람이 빨리 도달하겠느냐?

늘 가지는 않고 게으름 피우면서

서울 가야 한다, 서울 빨리 가야지이 사람이 빨리 가겠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게 1번 대답인지, 2번 대답인지.

 

깨달아야 하겠다이렇게 하는 각오와 결심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 아침 5시에 기도하기 위해서 일어나면

5시가 되면 벌떡 일어나는 게 중요하지, 누워서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이렇게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이렇게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은 일어나기 싫다는 얘기에요.

 

약 같은 걸, 입에 쓰고 먹기 싫을 때

아이고 먹어야 하는데, 먹어야지이런 걸 하지

맛있는 사탕을

, 몇 시에 먹어야지이러나? 그냥 주워 먹지.

 

그것처럼 각오하고 결심하면 어떻게 되느냐?

에너지를 써요, 각오하고 결심하고

, 머리에 열이 난다.

 

두 번째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은

밑 마음이 하기 싫다는 것이 깔려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거스르고 있다, 이런 얘기에요.

또 각오하고 결심한 것은 안 되면 괴로움이 생긴다, 좌절과 절망이 생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목표가 처음에 정해지면

그다음부터는 그쪽을 향해서 다만 갈 뿐이다.

막히면 넘어가고, 또 둘러 가고, 이렇게 다만 갈 뿐이다.

 

이 사람은 설령 홍수나 산사태가 나서 며칠 못 간다고 해도 괴로워하지 않고

또 설령 전쟁이 나서 아예 못 간다고 해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 각오하고 결심하고 매일 다짐하는 사람은

못 가게 되면 거기서 세상을 탓하거나 아니면 게으른 자기를 탓하거나

이렇게 괴로워한다. 이런 얘기에요.

 

불교의 가르침은 깨닫는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불교의 가르침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른다,

이걸 열반이라고 그래요.

괴로움이 없는, 아무런 속박이 없는, 걸림이 없는 상태에 이른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런 걸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느냐?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면

마음이든 바깥 사물이든 사실을 사실대로 알게 되면

이 괴로움이라는 것이 사라져버린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목표는 열반이고

그 열반에 이르는 수단이 뭐다?

깨달음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 수행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기 때문에 깨달아야지 하는 거를 너무 각오하면

만약 못 깨닫게 되면 괴로워요? 안 괴로워요?

괴로우니까 그럼 깨닫는 목적이 괴로움이 없는데 이르기 위해서 깨닫는데

깨닫는다는 거에 집착하게 되면 바로 괴로워진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살이하면서

결혼해야지하는데 결혼을 못 하면 괴로워지고

공부해야지하는데 공부 못하면 괴로워지고

깨달아야지했는데 못 깨달으면 괴로워지고

가야지하는데 못 가면 괴로워진다.

 

그래서 이런 가야지이것은 목표를 향한 것이지만

사실은 거기에 집착되어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럼 집착을 하게 되면 괴로움이 생긴다.

여기서 목적이 없다는 것은 아무런 방향이 없다가 아니라

집착이 없다, 엄격한 의미는 그런 의미이다.

 

, 집착이 없이 다만 할 뿐이다이런 얘기에요.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거는 목표를 달성하는 의지가 약하냐? 이런 개념하고 다르다.

 

세속은 목표를 이루냐? 못 이루냐가 중요하지

수행에서는 괴롭냐? 안 괴롭냐가 중요한 거요.

 

여러분들은 결혼했냐? 안 했냐?

애가 낳았냐? 안 낳았냐?

애가 잘 되었냐? 안 되었냐?가 중요하지만

 

수행자는 결혼했냐 안 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괴롭냐 안 괴롭냐가 중요한 거고

돈을 벌었냐 안 벌었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돈을 벌든 안 벌든 괴롭냐? 안 괴롭냐가 중요하고

자식이 있으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식이 있어도 안 괴로워야 하고, 없어도 안 괴로워야 하고..

괴롭지 않은게 중요하지

자식이 있어서 괴롭고, 자식이 없어서 괴롭다,

이것은 수행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의 목표와 개념이 좀 다르다.

여러분들이 그런 세상의 목표,

돈을 벌어야지, 가야지, 결혼해야지, 혼자 살아야지, 이혼해야지, 뭐 해야지 이런 것 때문에 여러분들은 괴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놔 버릴 때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강의 요점은 열반으로 간다.

, 열반이란 말이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간다, 이런 얘기에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날씨가 맑으면 맑은 날 할 수 있는 감자를 캐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오면 비 오는 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농사일은 많이 있다.

약 치는 일도 있고, 풀 뽑는 일도 있고, 고추 딸 일도 있고, 깨 모종 낼 일도 있고, 풀도 맬 일이 있고

많은 일이 농사꾼을 잘 알고 있다.

그럴 때 내일 뭐 해야지, 내일 뭐 해야지하는데

내일 약 쳐야지하는데 비가 오면 날씨 탓을 하게 되고

모종 내야지하는데 해가 쨍쨍 나게 되면 또 날씨 탓을 하게 된다.

 

많은 일이 있는 중에

날씨가 맑으면 맑을 날 할 수 있는 일

흐리면 흐린 날 할 수 있는 일

비 오면 비 오는 날 할 수 있는 일

또 비가 많이 와서 쉬어도 안타깝지 않다.

, 내가 오늘 뭘 해야 하는데 비가 와서 일도 못하고 큰일이 났다

이것은 집착되어 있다, 이거예요.

오늘은 비가 오니까 아, 그동안에 쉬지도 못했는데 마침 잘 됐다. 오늘 하루 쉬자.”

안 그래도 모종 내려고 그랬는데 햇빛이 강해서 못 냈는데

날씨가 흐리고 약간 흐리니까 물 안 줘도 되고, 오늘 모종 내면 좋겠다.“

해가 쨍쨍 나니까 조금 덥기는 하지만 오늘은 고추를 따면 좋겠다, 약을 치면 좋겠다

이런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날씨에 내가 괴로움이 없다.

 

날씨가 더우면 수영하기 좋은 날이죠.

수영하러 갔는데 비가 오면 안 좋죠.

계곡에 놀러 갔는데 비가 온다, 그러면 추워서 못 견딘다.

그날은 날씨가 맑아야 한다.

 

맑은 날 할 일이 있고

흐린 날 할 일이 있고

비 오는 날 할 일이 있고

종류가 다 다르다.

 

인연을 따라서 살면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

날씨로부터 자유롭다

날씨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날씨를 탓하지 않는다.

 

한 번씩 큰 홍수가 나주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러면 강에 있는 많은 하천에 있는 쓰레기들이 쓸려 내려가기도 하고

겨울에 한번 대개 추워지는 것도 나쁜 게 아니에요.

그래야 병충해가 이듬해 적어진다.

겨울이 따뜻하면 이듬해 병충해가 아주 많아진다.

 

단점과 장점이 항상 같이 있다.

그런데 자기의 의도에 안 맞다고 늘 불평을 하면 괴롭게 살아가고

의도를 내려놓고 원래 농사 짓는다 하는 큰 의도는 있지만

순간순간의 의도를 내려놓고 인연을 따라서 살게 되면

문제가 없다.

 

아기를 낳아야 하겠다는데 못 낳으면

애 낳느라고 온갖 애를 쓰고 인공수정 하느라 난리를 피우고

애를 안 낳겠다고 결론을 내면 애가 생겨서 ..

 

여기 즉문즉설 할 때 한번 봐요.

애를 낳아야 하는데 못 낳아서 온갖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애를 안 낳으려고 했는데 애가 생겨서 낙태해야 하느냐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아이가 생기면 생겨서 좋은 거고

아이가 안 생기면 불임 수술 안 해도 되고, 애를 안 낳는 그런 수술 안 해도 되고

그런 피임 안 해도 되고 좋잖아 그죠?

그래서 옛날부터 무자식이 상팔자라 그랬잖아.

 

그러니까 없다고 정해버리면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정해버리면 없어서 문제가 되는데

있다 없다를 정하지 않으면 있으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없어서 좋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 의도를 두지 않을 때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스님도 불교를 널리 전파해야 하겠다.

한반도에 전쟁이 없어야 하겠다,

평화를 이루어야 하겠다, 통일로 가야 하겠다.

정토회에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널리 전파해야 하겠다.

이런 게 있지만,

 

그러나 그 인연을 따라서

전쟁이 일어날 위기가 있으면 전법도 그만두고 평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요즘같이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 있을 때 뭘 풀어보려고 애를 쓰면

애만 쓰고 안 되니까 스트레스만 받잖아, 그죠?

그럴 때는 전법에 치중을 한다.

 

코로나 왔다, 그러면 돌아다니지 못하니까

못 돌아다녀서 안달을 하는게 아니라

안 그래도 농사지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농사나 짓자,

 

이렇게 /인연을 따라서 해야 한다.

큰 목표는 있되

주어진 조건에서 늘 인연을 따라서 해나가야 한다./

 

...

 

천하만물이 목적 없이 살고 있어요, 천하만물이.

대다수 사람도 그냥 먹고 입고 자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목적은 자기가 만드는 거요.

목적이 있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목적은 자기가 만들고, 사명도 자기가 만드는 거요.

사명 갖고 살든지, 사명감 없이 살든지, 목적을 갖고 살든지, 목적 없이 살든지

그건 자유예요.

결혼하고 살든지, 혼자 살든지, 애를 낳고 살든지, 애를 안 낳고 살든지

자기가 스님이 되든지, 신부가 되든지

그건 자유라는 거요.

 

하느님으로부터 부여한 목적, 부처님이 주신 목적

이런 말은 사실 사람들이 붙인 말이지

원래는 목적이 없어.

모든 생명이 다 그래.

 

그런데 인간의 사유가 목적을 만든다, 목적의식을 만들었다. 의식이 생겨난 거요.

그런데 그 목적의식은 더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목적의식을 갖고 있으면 되는데

그 목적의식, 자기가 만든 목적의식에 사로잡혀서 그 목적의식 때문에 괴롭다면

그 목적의식을 버려라,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거지

목적의식 없이 살아라,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본래 존재는 목적의식이 없어.

그런데 다 잘살려고 목적의식을 만든 거요.

그런데 그 목적의식 때문에 괴롭다 그러면

목적의식을 버리면 되잖아요.

 

내가 자전거 안 타고도 늘 살았는데 자전거가 생겼어.

그런데 자전거 타는데 너무 힘들었어.

그럼 안 타면 돼.

자전거 타는 거 힘들어요이런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거요.

안타면 되니까.

 

그런데 자전거 타는게 유용하다고 생각하면 자전거를 타면 되는 거요.

유용하게 타는 데까지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고가 들어야 하는 거요.

그런데 노고는 안 들고 유용한 것만 바라는 건 욕심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목적의식은 자기가 만드는 거고

또 그 목적을 향해서 자기가 살아가는 거고

그게 더 좋으면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가면 되고

목적의식 때문에 괴롭다면 왜 괴로운가 하고 살펴보니

내가 목적에 너무 집착했구나그러면 목적의식을 놔버리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