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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멘토 임작가] 행복으로 이끄는 8가지 발달과업 4편 |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Buddhastudy 2022. 9. 22. 18:45

 

 

이제 다음 발달 단계는

아이가 만 5세부터 12세까지의 시기로서

유치원 말부터 초등학교까지의 시기가 되겠습니다.

 

이 시기엔 아이에게 큰 환경적 변화가 찾아오죠.

주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아이가

이제 유치원에서 혹은 초등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또래 아이들과 같이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의 아이들은 학교에 있는 또래 아이들을 아주 많이 의식하게 되고

자신을 다른 아이들과 항상 비교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시기엔 아이들이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사람으로 자라날지

아니면 능력에 바탕을 둔 자신감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날지가 결정됩니다.

 

아이들은 또래 동료들을 많이 의식하기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자기 목숨만큼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여러분은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아이였었나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어떤 아이가 축구와 같은 운동을 정말 잘해요.

그럼 축구를 잘한다는 그거 하나로 또래 아이들한테 인정을 받는 거예요.

그럼 그게 그 아이의 자부심이 되는 겁니다.

자신감의 원천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는 축구를 더 열심히 하게 되죠.

그걸로 인정받으니까요.

 

또 어떤 아이는 외모가 예뻐요.

그래서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그 아이를 좋아해 줘요.

그러면 그 아이는 외모로 인정받는 거예요.

예쁘니까요.

그 아이의 인생에선 이제 외모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게 됩니다.

외모로 인정받았으니까요.

 

이거 말고도 또래 아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가 아주 다양합니다.

게임 하나를 잘해도 인정받고 공부를 잘해도 단연코 인정을 받을테고요.

 

그런데 만약 아이가 뭔가 잘하는게 없다고 해봅시다.

잘하는 게 없어서, 또 외모도 잘나지 않아서

또래 아이들한테 인정을 못 받는다고 해보죠.

그러면 아이는 어떻게 느낄까요?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 아이가 열심히 할 수가 없어요.

노력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으니까요.

인정받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면 이제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이가 자신감으로만 꽉 차 있으면 어떨까요?

 

자신감만으로 꽉 차 있어도 좋진 않습니다.

자신감과 더불어 겸손함도 사람은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요.

 

한번은 제가 15살짜리 남자아이를 가르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애가 아니었어요.

공부를 꽤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카이스트 대학을 졸업하셨고 대기업 부장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아이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이 공부를 꽤 잘 한다는 점에도 자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이 아이를 코칭하게 된 이유는

이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많이는 아니지만 좀 떨어졌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아이를 지도하게 되었는데,

아이를 제가 관찰해보고 분석해보니까

성적이 나중엔 더 떨어지겠더라고요.

 

그런데 성적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심리적인 근거가 있었어요.

그 근거가 뭐였냐면,

이 아이가 자신감으로 너무 꽉 차 있다는 거였어요.

 

아버지가 카이스트 출신에 대기업 부장에 집안에 재산도 꽤 있었어요.

그리고 본인이 공부도 잘했어요.

그러니까 자신감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자신감은 능력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거잖아요?

능력에 바탕을 두지 않은 자신감을 우린 뭐라고 부릅니까?

허세라고 하지 않아요?

 

심리학에선 이걸 복어가 자기를 잔뜩 부풀리는 것처럼

자신의 자아를 부풀렸다고 표현합니다.

그 아이의 자아는 풍선처럼 부풀려진 거예요.

 

이 아이가 딱 그 케이스였던 거예요.

자기 능력이 실제로 엄청난 건 아닌데, 그래서 실제로 성적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고

아주 잘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그 아이는 복어처럼 빵빵하게 자아가 부풀어 있었어요.

열등감도 안 좋지만 이런 허세장이는 더 안 좋습니다.

 

문제는 이 아이가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 거였어요.

그래서 허세장이가 되어버린 건데,

열등감은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만

허세는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잖아요.

우린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지 잘난척 하는 사람을 안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이가 능력에 기반한 자신감은 있지만

잘난 척하지 않는 겸손함도 함양할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균형이 중요한 겁니다.

 

열등감을 너무 느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자신감으로 부풀어 있어도 안 된다는 것이죠.

지나친 자신감은 허세와 잘난 척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제 다음은 다섯 번째 발달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만 12세부터 18세까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 시절에 해당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릭슨은 인간의 인생에서

이 단계를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간주했습니다.

아마 그건 에릭슨 본인이 이 시기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경험을 직접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에릭슨 본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고민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에릭슨의 부모님은 서로 국적이 다른 분들이었어요.

아버지는 덴마크 사람, 어머니는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덴마크 사람인 아버지가 어머니와 헤어졌고,

그래서 어머니가 독일로 건너와

같은 이스라엘 출신의 소아과 의사와 결혼을 해서 거기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에릭슨은 그곳에서 유대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은 머리에 까만 눈을 가진 정통 유대인과 다른 외모를 지닌 에릭슨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에릭슨은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 때문에

자신이 덴마크 사람들하고 있을 때는

자신이 순수한 덴마크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고,

또 이스라엘 사람들하고 있을 때에도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느낄 수가 없으니까

자신이 정말 누군이지 혼돈스러운 정체성 혼란을 느꼈다고 해요.

아마 여러분은 백프로 순수 한국인이시겠죠?

 

그래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것에 대해 공감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순수 한국인이라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은 없었는데

정체성 혼란을 겪는 학생 하나를 예전에 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 였었는데,

그 아이의 아빠는 한국인이고, 엄마는 중국인이었어요.

이 아이는 중국에 있는 한국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본인이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스스로가 구분을 잘 못하고 있었어요.

 

일단 이 아이는 한국어를 완전히 구사를 못했습니다.

엄마가 한국어를 하긴 하는데 엄마가 중국인이다 보니까

한국어를 능숙하게 배우질 못한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쟤 엄마는 중국인이래" 와 같은 소리를 듣게 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게 되는 그런 상황에 있던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는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던 거예요.

 

에릭슨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 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청소년기에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을 했을 거라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기는 청소년이 성인으로 가게 되는 그 이전 단계입니다.

이 시기에 청소년들은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어디에 소속 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못 찾으면 필연코 방황하게 됩니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결국 삶의 목적과 밀접히 연관된 부분이잖아요?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니까

아이들은 다양한 형태로 방황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것이 소위 정체성의 위기라는 문제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