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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사모아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12. 28. 20:04

 

 

 

1. 소개

사모아 독립국(Independent State of Samoa) 약칭 사모아는

오세아니아 남태평양의 서사모아 제도들로 구성된 공화국으로

수도는 아피아(APIA)입니다.

 

사모아의 국기는 UN의 신탁통치령 시기에 선정하였고

1962년 독립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채택했습니다.

빨간색 바탕에 왼쪽 상단에는 작은 파란색 직사각형이 있으며

직사각형 안에 하얀색 남십자자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빨간색은 충성을

하얀색은 순결

파란색은 애국심을 의미합니다.

 

사모아는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동쪽 끝 해상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군도로

사바이와 우폴로 2개의 큰 섬과

몇 개의 작은 섬,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모아의 국토면적은 약 2,842km²로 세계 174위이며

이는 제주도와 인천광역시를 합친 크기와 비슷한 면적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198천 명

인구수로 세계 186위이며

경기도 구리시 인구와 비슷합니다.

 

사모아의 1년 총 GDP2019년 기준

9500만 달러로 세계 181위이며

1인당 GDP4500달러로 세계 107위입니다.

 

사모아의 공용어는 영어와

폴리네시아계 언어에 속하는 사모아어로

사모아어는 음절이 모두 모음으로 끝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인구의 약 96%가 사모아인이며

그 외 폴리네시아인과

유럽혼혈인 유로네시아인이 소수 있습니다.

 

사모아 주민은 대부분 개신교를 믿고 있으며

그 외 로마가톨릭, 감리교, 하나님의 성회 등을 믿습니다.

 

 

2. 역사

사모아제도는 폴리네시아인이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할 때 가장 먼저 도착한 곳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에 정착한 폴리네시아인들은

오랫동안 독자적인 사회를 유지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요.

1722년 네덜란드의 항해가, 야코프 로게렌(Jacob Roggereen)

처음으로 이 지역을 탐방하면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770년대 중반부터는 향료무역선을 비롯하여

태평양 지역 탐색을 시도하는 많은 유럽 함선들의 왕래가 이어졌습니다.

 

사모아인들과 유럽인들 사이의 초기 접촉은

대부분 동쪽의 미국령 사모아에서 일어났고

이후 사모아제도로 유럽인들의 진출이 이루어졌습니다.

 

1830년대에는 영국인 선교사였던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와 찰스 바프(Charles Barff)가 이 곳에 도착하여 전도활동을 펼쳤고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184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유럽의 선교사들이 사바이섬에 정착했고

뒤이어 유럽의 이주민들이 대거 이주해왔습니다.

그 당시 사모아는 폴리네시아계의 말리에토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으나

왕위 계승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비슷한 시기,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꾀하던 영국, 독일, 미국이

본격적으로 사모아 제도에 대한 점령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모아는 국내외적으로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1889, 태풍이 일어나 그 당시 아피아 항구(Apia Harbour)에 집결해있던

3국의 함대가 1대만 제외하고 모두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을 수습하는 3국 협정이 성립되어

서사모아는 독일령 사모아로

동사모아는 미국령 사모아로 분할되었고

영국은 빈손으로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1914년 뉴질랜드가 사모아를 점령하였고

1920년 국제연맹은 뉴질랜드의 사모아 위임통치를 인정합니다.

 

사모아인들은 1920~30년대에 걸쳐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벌였으나

곧이어 2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되면서 독립은 뒤로 늦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7년 뉴질랜드의 신탁통치 지역이 된 사모아는

꾸준히 독립운동을 벌인 끝에

1961년에 UN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고

다음 해인 196211, 공식적으로 독립국임을 선포하면서

오세아니아에서 최초의 자치국이 되었습니다.

 

사모아는 19751215일에 UN에 가입하였으며

1997년에는 공식적인 국호를 서사모아에서 사모아로 바꿉니다.

하지만 동쪽에 위치한 미국령사모아와의 구별을 위해

여전히 서사모아라 불리기도 합니다.

 

 

3. 정치 & 경제

사모아독립국은 19708월에 영국연방에 가입하여

영국연방에 속한 의회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헌법상 국가원수는 5년 임기로 의회에서 선출되며

나라를 대표하는 명목상의 권한만을 가집니다.

 

실질적인 국가행정을 총괄하는 사모아의 수상은

다수당의 대표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선출됩니다.

 

행정부는 국가원수와 의회가 선출하는 총리 및

총리가 제청하여 임명한 12명의 각료로 구성되며

포노(Fono)라 불리는 입법부는 단원제 국회로

임기 549명의 의원으로 구성됩니다.

 

사모아의 주요 정당으로는

인권보호당(HRPP), 사모아 민주연합당(SDUP), 타우투아 사모아당(TSP) 등이 있습니다.

 

사모아는 남태평양위원회의 일원으로서

그중에서도 뉴질랜드, 호주와의 외교관계를 매우 중시합니다.

군대는 없고,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만 있으며

뉴질랜드와의 체결한 국방협력을 기반으로

유사시에는 뉴질랜드가 군사적 지원을 맡고 있습니다.

 

사모아는 전통적인 농업국으로

주요 농산물로는 타로감자, 얌감자, 빵나무 등을 재배해왔습니다.

19세기 말부터는 코코야자를 심기 시작하여

코프라 역시 현재 사모아의 주요 수출품입니다.

바나나, 카카오의 재배도 활발한 편이며

근해에 가다랑어와 다랑어 어획량도 상당히 많습니다.

 

사모아는 태평양 도서 국가들 중에서도

경제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이지만

여전히 국가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입니다.

 

노동인구의 약 60%가량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전체 수출액의 90%가 농업 관련 수출에서 나오며

특히 바나나와 카카오의 수출이 매우 활발한 편입니다.

 

하지만 거의 매년마다 섬을 덮치는

사이클론의 피해와 함께

주요 수출작물인 타로감자가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에

농업 위주의 사모아 경제는 늘 불안에 놓여있어

최근 들어서는 관광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며

산업의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사모아는 남태평양 날짜변경선의 동쪽 아래 피지제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800km 해상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화산군도입니다.

사모아 제도에는 사모아독립국과 동쪽의 미국령 사모아, 2개의 나라가 존재합니다.

사모아독립국은 수도인 아피아가 있는

우풀루섬에 인구의 절반가량인 10만 명이 살고 있고

사바이섬과 작은 9개의 섬을 합쳐 10개의 섬들에 나머지 10만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섬인 사바이섬은 용암으로 덮여 있는 탓에

사람의 거주지역으로는 적합하지 않으나

대신 1,858km의 최고봉 실리실리산이 솟아 있습니다.

 

사모아는 여름이 길고 습도가 높은 열대성 기후를 보입니다.

다만 4월부터 10월 사이 간간이 불어오는

무역풍의 영향으로 찜통더위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11월부터 4월까지가 강수가 집중되는 우기철로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의 강수량이 6,000mm가 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건기로

그만큼 축제와 행사도 많아 여행에 적당한 계절입니다.

섬 전체가 열대식물에 뒤덮여 있는터라 습도가 더욱 높은 편이어서

동위도상에 있는 타히티섬과 피지 제도보다 더 덥습니다.

 

특히 사모아는 사이클론이 통과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11월부터 4월까지는 주기적으로 대형 사이클론의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원래 사모아는 세상에서 가장 해가 늦게 지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부터 교역이 늘어난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과의 시간대를 맞추기 위해

1230일을 건너뛰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면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로 변신했습니다.

 

남태평양의 보석이라 불리는 사모아는

청정한 자연과 소박한 원주민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사모아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한 곳은 토수아(To sua)입니다.

거대한 구멍이란 뜻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은

꽃과 풀이 무성한 열대우림 속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해구인데요

자연이 만들어놓은 가장 신비한 수영장이라 불립니다.

 

랄로마누(Lalomanu) 비치는

여행서 론리플래닛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7대 해변으로 선정하기도 한 하얀 모래사장입니다.

이곳은 신혼부부나 커플들에게 인기만점 여행지로

끝없이 펼쳐진 깨끗한 모래사장에서 자연을 벗삼아

일광욕이나 바다수영을 즐기기에 제격이라고 합니다.

 

사모아 마을주민들이 펼치는 전통음악공연인 피아피아(fiafia)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사모아의 대표적인 축제인데요.

특히 사모아 남성들이 불을 장난감처럼 다루면서 추는 불춤은

사모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라고 합니다.

 

또한 사모아에서는 문신이 주민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의식 중 하나입니다.

사모아의 남성들은 12세에서 14세가 되면 허리부터 무릎까지 문신을 새기는데요.

한 달 동안 이어지는 문신작업의 고통을 참아내는 과정을 통해

용기와 정신적인 힘을 기른다고 합니다.

 

 

5. 인물

사모아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복싱계의 마크 헌트

2의 타이슨이라고 불렸던 헤비급 권투선수

데이비드 투아(David Tua)가 있습니다.

 

데이비드 투아는 1992년 프로데뷔 후

15경기 연속 KO승을 기록하며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전설적인 권투선수인데요.

 

19729, 사모아의 대가족에서 태어난 그는

7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권유로

복싱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데이비드 투아는 뉴질랜드의 한 작은 체육관에서

일주일에 3일씩 열심히 훈련에 매진했고

1988, 15세의 나이로 질랜드 국가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19세에 투아는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올림픽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땄습니다.

182cm의 비교적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135kg의 육중한 체구로 날리는

스플래시 훅풀 오버핸드’ 2가지 펀치 기술로

OPBF챔피언과 WBA 복싱 토너먼트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방에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KO승이 많기로 유명한데요.

프로선수 시절, 투아의 KO비율은 엄청나

514731무의 전적 중

41승이 KO승이었다고 합니다.

 

2002년 미국의 마이클 무어러와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 30초 만에 KO승을 거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화끈하고 강력한 펀치는 물론이고

웬만해서는 쓰러지지 않는 단단한 맷집으로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데이비드 투아 선수는

20136월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이후로 자원봉사와 불우이웃돕기를 실천하며

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