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 전쟁의 참혹함을 보고 있노라니 무력감에 빠집니다. (2023.10.30.)

Buddhastudy 2023. 12. 28. 20:17

 

 

제 질문은,

현재 세계 여러 곳에서 수많은 갈등과 끔찍한 잔학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데

불교 수행에 대해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입니다.

엄청난 고통과 그로 인한 무력감의 시간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지금 무력감을 느끼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저는 그저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 주변에는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아직 많이 알지 못하고 배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 싶고

이 문제에 대한 제 의견을 단호하게 표현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슬픔에 빠져들지 않고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사실대로 이해하면 감정의 동요가 덜 생깁니다.

,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보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그 일이 어떠한 일이든

일어날 만한 원인이 있기에 일어난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거나

그저 우연에 의해 일어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현상이든 일어날 수 있는 조건

또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알고 이해하면

마음의 불편은 없어집니다.

 

물론 원인을 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해를 못 하게 되면

미움, 증오 등 흥분된 마음 상태로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 선택으로 인해 나중에 후회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상황을 이해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선택하게 되면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든

그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먼저 자세히 알게 되면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보다는 상황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다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내가 지지하는 쪽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부를 할 수도 있고

SNS를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올릴 수도 있고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현장에 가서 어떤 행위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기부한다면 재정적인 부담을 감당해야 하고

응원이나 비판의 글을 쓴다면

거기에 대한 비난이 따를 수 있다는 걸 감수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미국 하버드 대학생들이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을 비판했다고 해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앞으로 취직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뉴스도 나왔잖아요.

평정심을 가지고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쉽지만

만약 흥분된 상태로 선택한 것이라면 나중에

그때 내가 잘못 선택했다.’ 하고 후회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선택을 한다면

부상을 당하거나 죽을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선택이든 그에 따른 결과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평정심을 가지고 선택해서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후회가 없어야 한다는 거예요.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그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상황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

**첫 번째로 지녀야 하는 관점은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공하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공격했다는 것은

일단 잘못된 행위라고 봐야 합니다.

 

 

**두 번째 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침공한 게 아닙니다.

1975년 유럽에서의 냉전을 종식하면서

나토(NATO)와 소비에트 사이에

헬싱키 협정이라고 하는 상호 간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토가 그 후로 조금씩 동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독립된 국가라기보다는

러시아 일부로 생각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어에서 우크라이나는 국가 이름이 아니라 지방 이름입니다.

그런데 나토가 우크라이나까지 진출하겠다고 하니

러시아에서는 안보상의 위기를 느낀 겁니다.

그전부터 나토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루마니아로 영향력을 넓힐 때도 불만은 있었지만

그 나라들은 러시아의 땅은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참았지만

이제는 러시아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우크라이나까지 진출하니까

러시아로서는 이것은 헬싱키 협정의 위반이자

러시아를 침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동부에 있는 돈바스 지역은 다수가 러시아 사람들인 지역입니다.

크림반도도 원래 러시아 땅이었는데

소비에트 시절에 우크라이나 쪽으로 편입을 시킨 땅입니다.

 

이렇게 러시아로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여러 가지 문제를 겪으며 참았던 감정이

이번에 폭력적으로 분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러시아의 무력 행동이 정당하냐는 것은

처음부터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것도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관점을 뚜렷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런 다음 각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갈등이 있을 때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세 번째 관점은

지금 현실이 어떠냐는 것입니다.

현재 전선은 어느 정도 고착화되었고

여기서부터 어느 쪽이든 진군을 하려면

엄청난 소모전과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이럴 때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계속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일단 멈추고 앞으로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잃어버린 땅을 찾겠다는 입장이고

러시아도 자기 나름대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전쟁을 멈추고 대화로 풀어가는 선택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지루한 소모전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이 따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양상을 우리는 한국전쟁에서도 이미 경험을 했습니다.

한국전쟁도 처음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이번엔 남쪽에서 북쪽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밀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참전하면서

다시 38도 선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 후 38도선에서 어느 정도 전선이 고착화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1년 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후 휴전을 하기 전까지

서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2년 넘게 시간을 끌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파괴와 희생이 발생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도 앞으로 대량 소모전이 일어나면

차츰 나토도 지치게 될 것이고, 러시아도 지치게 될 것입니다.

서로 지치게 되면 그제야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일 거예요.

이걸 미리 알고 대화로 풀어나가면 좋은데

사람의 어리석음은

이렇게 엄청난 것을 잃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마스가 무력으로 침공한 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러나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강경 세력인 우파가 집권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서안 지구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짓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가자 지구를 봉쇄하는 등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그 힘으로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와 적개심을 무시했기 때문에

결국 기습공격을 받게 된 거예요.

 

한국 속담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약자라고 너무 지나치게 무시하고 억압을 하면

그들의 분노가 폭발해서 큰 사고를 일으킨다는 겁니다.

물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방어하는 힘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대의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는 정책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입니다.

 

 

**네 번째 관점은

자신이 입은 피해를 근거로

상대에 대한 폭력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내가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상대를 죽여도 좋다하고 정당화하는

굉장한 자만심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피해를 본 건 맞지만

피해를 보았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사람들 수만 명을 죽여도 된다는

정당성을 과연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과 미국은

그런 복수가 정당하다고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런 행위는 설령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정당성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즉 인도주의적 원칙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죠?

지금으로부터 3,8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던

고 바빌로니아 왕국의 왕인 함무라비 법전에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복수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법의 정신은 그것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복수가 일반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가 내 눈을 찌르면 나는 상대를 죽여버렸습니다.

상대가 내 이빨을 다치게 하면 나는 상대를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복수하더라도

상대가 내 눈을 뽑았으면 눈만 뽑지 더 이상의 복수를 하지 마라하는

복수에 대한 제한 규정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일어나는 복수는

3,800년 전 함무라비 법전의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 만들어진 유엔(UN) 헌장 역시

아무리 전쟁하더라도 민간인을 해쳐서는 안 되고

적군이라도 다치면 치료해 주고

포로가 되면 돌려주지, 복수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 서 있습니다.

 

적국의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굶주리면 먹여야 하고,

다치면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 인도주의입니다.

이것이 유엔(UN) 헌장에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21세기에 그런 정신을 무시하고

4천 년 전보다 수십 배로 복수하는 분노에 지금 휩싸여 있는 겁니다.

 

이런 행동을 당장 멈추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지하면서 인권을 이야기하고 인도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로 낯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즉각적으로 멈추어야 합니다.

복수에 휩싸여서는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을 이스라엘 사람보다 열 배, 백 배 더 죽인다고 해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이 살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적을 100명 죽이는 것보다

우리 국민 1명을 살리는 것을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민간인 살상이 예상되는 전쟁은 멈추고

그 후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흔히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고 말하잖아요?

힘이 있는 자는 우선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먼저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항상 어렵습니다.

 

9.11 테러로 인하여 미국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은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분노로 풀어서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결과가 어떻습니까?

이라크와 리비아는 현재 어떻습니까?

 

어떤 문제를 순간적인 분노로 대응해서는

올바른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쪽을 편드는 관점이 아닌,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사람을 살린다는 관점에서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시는 동안 공감이 가는 부분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고통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고통이란 것을

승진하지 못하거나, 해고 당하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죽는 것과 같이

매우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중도를 찾기 위해 즐거움과 괴로움에 관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할 때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적용되나요?

그것을 내려놓고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도 되나요?)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덜어 주는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이 선택은 누구나 다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정토회에서도

음식이 부족한 곳에는 음식을 지원하고

약품이 부족한 곳에는 약품을 지원하고

학교가 없는 곳에는 학교를 지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홍수 피해 지역, 지진 피해 지역도 계속 지원하고 있어요.

 

지난달에는 제가 미국을 방문하여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쟁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백악관을 비롯하여 의회, 국무성, 국방성을 방문했고,

많은 NGO 단체, 싱크 탱크를 만났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도

비극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첫째, 우리는 항상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합니다.

둘째, 분쟁이 생기면 빨리 멈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 그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는 만큼 도우면 됩니다.

가만히 앉아서 걱정하는 것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차라리 그 시간에 전쟁 반대 댓글을 쓰든지 성금을 보내는 것이 더 낫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