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남편이 3년째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2024.01.14.)

Buddhastudy 2024. 2. 8. 20:26

 

 

저는 남편과 3년째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작년에 겨울 여행도 다녀오고 여름휴가도 갔다 왔는데

서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잠자리는 같이 합니까?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 보세요.

우리 40일간 여행 가서 24시간을 같이 있어야 하는데

서로 말을 안 하게 되면

아이들이 많이 불편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교육상 좋지 않으니까

40일 동안은 말을 하고,

다시 돌아와서 말하기 싫으면 말을 하지 맙시다.’

 

수련을 할 때도 가끔 묵언을 풀 때도 있잖아요.

잠시 묵언을 풀자고 제안을 해보는 거죠.

이렇게 먼저 내 말을 좀 들어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해보세요.

 

첫째, 먼저 제안을 해봅니다.

그렇게 안 하겠다고 하면 알았다고 하고

출발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공표를 하겠다고 하세요.

 

엄마와 아빠는 수행 삼아 말을 안 하기로 했다.

그러니 여행 중에 너희들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대신에 필요한 것은 다 해 주겠다.

물론 나는 너희들과 대화할 수 있고,

아빠도 너희들과 대화를 하겠지만,

엄마와 아빠는 서로 말을 안 하기로 했다.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이가 나쁘면 여행도 같이 안 갈 것이다.

여행은 같이 가는데 이유가 있어서 말을 안 하기로 했으니까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라.

그걸 감안해서 같이 여행을 가자.’

 

이렇게 공표를 하고 여행을 가면 됩니다.

별일 아닙니다.

 

전쟁 때도 살고, 때리고 맞고도 사는데,

말 안 하고 사는 게 뭐 큰 문제예요?

답답하기는 하겠지만요.

카톡은 주고받아요?

필요한 게 있으면 글로는 소통을 해요?

 

...

 

남편은 일체 대꾸를 안 하나요?

손짓, 발짓을 하든지, 카톡으로 답을 보내나요?

 

...

 

제가 외국인들과 통역으로 법회를 할 때와 상황이 똑같네요.

제가 외국에 가서 즉문즉설을 하려면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통역이 있어도 하나도 소통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물론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통역을 데리고 가듯이

딸과 아들이 옆에서 통역을 해준다고 생각하면 큰 문제가 없네요.

그렇다면 아이들도 엄마와 아빠가 말을 안 한다는 사실을 다 아는 거네요.

서로 다 알고 있으니까 여행을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그것은 질문자의 문제죠.

남편 탓을 하면 안 됩니다.

산에 한 번 가보세요.

내가 산한테 아무리 좋다고 말해도 산이 대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산을 탓할 겁니까.

 

남편이 말을 안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우리 남편은 산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도 산보다는 훨씬 낫네요.

반응이 한 다리 걸쳐서 오니까요.

그런데 산은 한 다리 걸쳐서 반응도 안 옵니다.

 

그래도 여행을 가기 전에 40일 동안만 말을 트고 지내자고 제안은 해보세요.

여행 다닐 때만 말을 트고

여행을 갔다 와서 다시 묵언하라고 제안해 보고

거절하면 그냥 다녀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에요.

 

...

 

질문 내용이 아주 재미있네요.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는 남편의 심정이 이런 것 같아요.

질문자와 직접 이야기를 하면 화가 나서 주체를 못 할 것 같으니까

질문자를 위해서 말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남편이 화가 나면 그릇을 깨잖아요.

그릇을 깨는 것만 보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아내를 차마 때리지는 못해서입니다.

아내를 때리지 못하니까 대신에 그릇을 깨는 거예요.

그러니 남편이 그릇을 깨면 엎드려 절을 하면서 고맙다고 해야 돼요.

나를 때리는 대신에 그릇을 깨는 것이니까요.

 

여보, 차마 나를 안 때리고 그릇을 깨 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웃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그릇이 무슨 문제가 있어?

왜 그릇을 깨! 때리려면 나를 때려야지

이렇게 말대꾸를 하면

정말로 두들겨 맞는 일이 벌어져요.

그릇만 깬 것에 대해 고마워했으면

절대로 두들겨 맞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심정을 모르고 대부분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죠.

 

그것처럼 남편은 질문자에게 직접 이야기하면

화를 주체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한 다리 걸쳐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모습을 오히려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도 불편하니까

당신 마음은 충분히 알겠는데,

여행을 다닐 때만큼은 말을 트자하고 제안을 해보세요.

남편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면

알았다. 여행 다닐 때 좀 불편하지만

그냥 지금처럼 지내자

이렇게 얘기하고 여행을 가세요.

남편이 말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