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책낭독] 이미 안다는 확신을 살짝 내려놓으면 내면의 지혜가 들린다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Buddhastudy 2024. 3. 5. 19:38

 

 

스웨덴에서 대학을 나와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26살에 임원으로 지명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홀연히 그 자리를 포기하고 사직서를 내고

태국의 어느 사원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지요.

사원에는 자극적인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냅킨처럼 빼 쓰는 휴지를 담는

헬로키티 휴지용기가 보였다고 해요.

여기서부터 이야기해드릴게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옮긴이 박미경, 출판사는 다산초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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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밝은 노란색과 선명한 분홍색으로

헬로키티를 그려놓은 용기를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좀처럼 자극거리가 없다 보니

휴지를 담는 통조차 제 관심을 잡아끌었던 것이지요.

혹시 뭐라고 쓰여 있지는 않나

자세히 보려고 통을 집어 들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이 아침 식탁에서

우유갑 뒷면의 글까지 모조리 읽던 때와 같은 행동이었죠.

용기 밑면에 영어로 몇 마디가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글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휴지를 담는 알록달록한 통 바닥에 적힌 글귀에서

시간을 초월하는 지혜를 발견하다니.

 

글귀는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매달리면

어떤 경험이나 배움도 우리에게 스며들 수 없게 되어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

 

더 높은 지혜에 도달하고 싶다면

신념과 확신을 살짝 내려놓고

우리가 실은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합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 모른다는 점을 알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는 일이 좀체 없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매달리며 살아간다면

어떻게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지혜를 배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 내면을 확장하고, 다른 방법을 고안하고,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아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셋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면의 지혜에 귀를 닫고서

자기 생각에만 매몰되어 확신이 가득한 사람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영국의 지혜가 담긴 명작 동화

<곰돌이 푸>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푸와 피글렛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푸와 분홍색 수영복을 입은 피글렛이

눈앞에 선하지 않나요?

두 친구는 토끼네 집에 잠시 들렀다가 나오는 길입니다.

푸가 말했습니다.

토끼는 참 영리해.”

맞아, 토끼는 참 영리해.”

피글렛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게다가 토끼는 머리가 똑똑해.”

푸가 칭찬을 계속했습니다.

맞아, 토끼는 머리가 좋아.”

피글렛이 다시 맞장구를 쳤습니다.

둘 사이에 한참 침묵이 이어지더니, 푸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토끼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나 봐.”

 

누구든 공감할 이야기일 겁니다.

자기 생각의 안개에 갇힌 사람들은

현재에 관심을 온전히 쏟지 못하지요.

 

생각은 이리저리 뻗어나갈지언정

그들의 시야는 극히 좁습니다.

토끼는 머리가 좋고 영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토끼나 곰돌이 푸 중에서 누구로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제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 내면의 곰돌이 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푸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각과 마음을 깨우고

매 순간의 새로움을 알아차리며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만 매달리는

토끼 같은 사람과 대화할 때면

별로 즐겁지 않습니다.

그런 이들은 바로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제 말에 좀체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요.

마치 제 말이 끝나자마자 뭐라고 대답할지 궁리하느라 바빠

정작 내용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든 보고서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평가하고 검토하고는

그들의 세계관에 들어맞는 생각이나 관점만을 인정해 주지요.

 

그런 관계에서는 전혀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달리 말해서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따분하기 그지없지요.

 

반대로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을 땐 얼마나 좋은지요.

잠시라도 제 입장에서 생각하고 뒤를 받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합니다.

 

그와 같은 경청은

그 자체로 치유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지요.

 

, 나 좀 봐.

그동안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믿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말하고 설명하고 공유하고 있잖아!’

 

아무런 편견이나 판단 없이 귀를 기울이면

다른 사람은 둘째치고라도

먼저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언젠가 필요할 날이 올 테니까요.

 

 

지금쯤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옛날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어디서 유래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들려주고 싶군요.

 

어느 날 어떤 남자가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턱쯤 올라간 남자의 눈에는

앞으로 닥칠 절벽이 얼마나 가파른지가 잘 보였습니다.

유일하게 있는 길은 비좁고 비에 젖어 미끌미끌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길 한가운데 유난히 둥글고 반들거리는 돌이 있었지요.

하지만 남자는 그 돌을 미처 못 보고 그만 밟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남자는 절벽 쪽으로 미끄러져 떨어졌습니다.

남자는 뭐라도 붙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두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천만다행으로 절벽 바위틈에서 수평으로 자란 작은 나무를 가까스로 붙잡았습니다.

남자는 나무를 꽉 잡고 버텼습니다.

남자는 지금껏 영혼이나 내생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막연한 종교적인 믿음조차 가진 적이 없었지요.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나무를 꼭 붙잡은 남자의 두팔에서 천천히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두 팔은 이제 조금씩 떨리고 있었죠.

발아래로는 500미터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침내 남자는 더 버티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겁이 덜컥 난 남자는

하늘을 쳐다보며 확신 없이 머뭇머뭇 말했습니다.

저기요, 하느님! 내 말 들리세요?

당신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나를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잠시 뒤, 하늘에서 깊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를 불렀느냐.

널 도와줄 수 있다만

반드시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남자가 말했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세요!”

 

하느님이 답했지요.

손을 놓아라.”

남자는 몇 초 동안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습니다.

... 거기 누구 다른 분은 없나요?”

 

저는 이 남자에게서 저 자신을 봅니다.

저 역시 확신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딱 저렇게 행동하거든요.

절대 이 생각을 내려놓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게 옳으니까.’

 

누구나 이러한 논리에 빠지곤 합니다.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는

더욱 특정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이 우리를 얼마나 해칠 수 있는지,

또 해로운 생각을 믿을 때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을 자초할 수 있는지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런 사실을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도

다음 순간 우리는 고개를 젓지요.

그래, 뭐 그럴듯하게 들리네.

하지만 이 생각은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거야.

이게 사실이니까. 이게 옳으니까.’

 

그 순간 이미 좁아져 버린 자신의 관점에선

그게 사실입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옳아요.

 

하지만 그 확신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내려놓기는 어쩌면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 겁니다.

 

내려놓기의 지혜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얻는 것은 끝이 없지요.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부르는 생각들은

내려놓는 순간 힘을 잃습니다.

설사 그 생각이 옳다하더라도요.

 

물론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