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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종 밀교수행강좌] 제4강 불교의 가르침은 생활속에 있다 (21:59)

Buddhastudy 2011. 8. 14. 06:42

  방송 보기: 불교TV

안녕하십니까? 오늘 밀교수행강좌 시간에는 불교는 생활 속에 그 가르침이 있다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우리는 불교를 특별한 어떤 신비로운 또 불가사의한 어떤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데. 실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상생활 속에 그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 지난번에는 우리 일상생활 속에 자연 그 속이다. 우리의 부처님의 몸이다라고 제가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성불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해탈에 목적이 있다는 것도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해탈 할 수 있는 그 가르침. 그것이 뭔가를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 들어가는 게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님 가르침은 이렇게 무슨 어려운 한문으로 돼 있다든가, 산스크리스트어로 되어 있다든가. 이런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에 나오는 데로 비바람, 혹은 봄여름가을겨울, 이런 것 속에서 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는 겁니다. 다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항상 뭔가 특별한 걸 찾기를 좋아해요. 그리고 중생은 특별하기를 좋아해요.

보통사람인데 뭐 그리 특별한 걸 자꾸 찾는지. 남이 안가진걸 내가 하나 갖고 싶다. 물론 그것이 경제가 발전하고 인류가 발전하는 원동력은 됩니다. 왜? 남이 안가진걸 어떤 특별한 걸 내가 하나 만들어봐야겠다. 가져봐야겠다. 이 자체가 경제발전 시키는 거고 인류가 계속 발전해 가는 어떤 그런 거지만. 실지로 그것이 또 마음은 엄청나게 상하게 하는 겁니다. 만약에 그렇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면서 마음까지도 동반해서 수행을 한 상태에서 만들어 낸다면 그게 극락세계에요.

그런데 마음은 접어 놔두고 오로지 물질로만 어떤 특별한 것. 그러면은 세상은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흔히들 자연환경이라는 보호 캠페인도 하고 보호하자 이런데. 자연환경을 누가 보호를 해야 되겠습니까? 인간이 보호를 하자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중생이 실지로는 자연 환경을 보호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좀 보호를 해야 되겠어. 자연은 가만 놔 두면은 진짜 아름답습니다. 인간이 그것을 뭔가를 자꾸 파괴를 시키는 거요. 자연이 얼마나 싫어하겠어요? 그래놓고는 자연을 보호하자고.

자연은 그럴 겁니다. 보호해주지 말라고. 너나 보호해. 이럴 겁니다. 거꾸로 생각해 봐요. 자연이 안 그러겠습니까? 너나 보호해. 뭐 나를 보호한다고 그러냐고. 바로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우리를 보호를 해야 되요. 우리 어떤걸 보호합니까? 눈귀코입을 보호하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보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혹사를 시켜야 되. 뭣 때문에? 내 마음을 보호하는데 문지기로서 혹사시켜야 되. 아끼지 말라 이 말입니다. 우리는 눈을 아끼잖아요. 코도 아끼고. 귀도 아끼고. 눈을 공주로 만들고 코를 공주로 만들잖아요.

그러니까 눈이 안 좋으면은 공주로 만들려고 이쁘게 수술도 하고 코가 안 좋으면 공주로 만들려고 이쁘게 수술하고 그러다 눈귀코를 공주로 만드는 거지 마음을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니에요. 이게 문제가 있다 이거죠. 그러니까 자연 자연 보호한다 보호한다 하기 이전에 자신이나 좀 보호해줬으면 좋겠어. 무엇을? 마음을. 또 자신을 보호하라 그러니까 눈귀코입손발을 보호하라 그러면 게을러지니까. 칠하고 다니고 모양만 내고 다니면 안 되잖아요. 자신을 보호하라는 말은 눈귀코입 오장육부가 아니고 여러분의 본성, 마음을 보호하라는 뜻이에요. 이것이 굉장히 황폐돼 있어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올 때는 언제쯤 나오냐 하면은 물질은 풍부한데, 살기는 좋은데, 과학은 발달돼 있는데. 마음이 황폐할 때 부처님이 나와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올 때는 아주 자연스러울 때는 안 나옵니다. 과학이 발달될 때, 당시로 봐서는 물질이 최고조로 올랐을 때, 모든 게 전부다 원만했을 때 현실적으로. 그때에 부처님이 나오는 이유는 반대로 마음은 황망해 있기 때문에. 마음이 거칠어 져 있기 때문에. 2500년 전에 인도를 한번 보세요. 인도의 문화가 얼마나 발달 되 있는데 그 당시에. 그 당시에 벌써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런 아파트는 유도 아니에요. 이런 편리한 정도는 유도 아니에요. 그 당시에. 그 당시로 봐서는 대단히 편리합니다.

우리처럼 전기가 있고 이렇게 편리한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굉장히 편리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문화가 굉장히 발달돼 있었어요. 그런데 마음은 그 반대로 굉장히 황폐돼 있어. 그러다 보니까 워낙 발달하다 보니까 뭐가 생겼어요? 사성계급제도가 생긴게 아니에요. 워낙 발달하다 보면은. 그럴 때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서 무엇을 가르치냐 하면은 자연을 개발하라. 자연을 아름답게 가꿔라. 이런 말을 안 해요. 즉 우리의 황망해진 우리 마음을 주인공을 찾고 다스려 나가라. 이렇게 설명하는 겁니다.

지금 이 시대에 여러분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마음이 그래도 부드럽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 그래도 범죄자가 적고 사악한 사람이 적고 부드럽습니까? 아니면 반대로 물질이 풍부한 만큼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러면서 생각도 못한 악랄한 범죄자가 생기고. 감히 꿈도 못 꾸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그런 어떤 흉악범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어요. 왜 그러겠습니까? 마음이 황망해서. 그거는 누구의 허물이냐 하면은 우리의 허물이에요. 남의 허물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진각 성종께서는 상대자의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다. 그러는 겁니다. 왜? 부처님의 가르침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자연 속에 있다 했으니까 자연 속에 주인공은 누구겠습니까? 자연 중에 가장 큰 자연은 인간이에요. 저 나무, 돌, 뿌리. 이런 게 아니고 진짜 자연 속에 가장 큰 자연은 인간이에요. 그리고 이 자연 속에 가장 소중한 자연은 누구겠습니까? 인간이에요.

근본적으로 소중한 게 아니고. 뭐 봄여름가을겨울 삼천초목 금수강산 이런 것이 소중한 것이 아니고 결국 자연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큰 것도 인간이고, 가장 소중한 것도 인간이고, 자연에 가장 중심에 있는 것도 우리 인간이에요. 우리다 이 말이에요. 우린데 우리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이 말이요.

그래서 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이제 상대의 허물을 보고 깨우쳐야 되기 때문에 내 마음이 내 주인공이고 내 육체가 상대입니다. 우리는 상대라 그러니까 무슨 부부지간에 상대하니까 남편은 부인, 부인은 남편, 부모는 자식, 자식은 부모, 형은 아우. 아우는 이렇게만 계산하는데. 그것도 다 ?? 이에요. 실지로는 여러분 마음이 주인이고, 여러분 육체가 객입니다. 육체가 객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마음이 객처럼 살고, 육체를 주인처럼 사는 거예요. 다 주인처럼 갖고 있는 거예요.

마음 가꾸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기 때문에 진각성종께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육체를 가꾸지 말고 마음부터 가꾸라고 어떻게 해요? 청송을 먼저 시키잖아요. 안 그러면은 세수하고 화장하고 와서 염송해야 되는데. 그거 안하잖아요. 그거 중요한 거 아니다 이거죠. 아 눈곱 좀 붙으면 어때요?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눈에 보이는 눈곱만 더럽습니까? 눈물은, 아니 여러분 죄송합니다만은 여러분 흔히들 그래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게 뭐냐 하면은 가죽푸대라, 죄송합니다. 그 가죽푸대 속에 뭘 담고 있습니까? 마음 빼놓고 도대체 뭘 그렇게 가득 담고 있어요?

그 무거운 걸 50몇 키로, 60몇 키로, 왜 그리 담고 다닙니까? 그 중에 좋은 것만 있는 건 절대 아니에요. 내 아침마다 어디 가서 갔다 버리고, 또 시간만 되면 갖다 버리는 거 냄새도 맡기 싫잖아요. 그거 전부다 넣어놓고 다니잖아요. 안에 있는 줄도 몰라. 바깥에만 쳐 발라. 바른다고 뭐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바로 그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은 결국은 자연을 파손시키는 것도 나고, 결국은 내 마음이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뭘 파손시킵니까? 나의 안이비설신의와 오장육부를 누가 파손시켜요? 내 마음이 파손시킵니다.

그래놓고는 오장이 어디가 다쳤네. 안이비설신이가 말 듣네 안 듣네. 사대육신이 뭐 어쩌네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 근본은 마음에 있는데. 그걸 마음으로 돌려서 찾으라는 겁니다. 그게 밀교수행이에요. 그러니까 무슨 뭐 어려운 낱말, 어려운 한문으로 된 거 줄줄줄 외우고. 이거 필요 없는 겁니다. 그거 다 접어 놔 두고, 막바로 여러분이 거울 딱 쳐다보고 여러분의 코 귀 입. 아~ 이게 내 환경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되요. 환경오염이 됐나? 안됐나? 잘 봐요. 그 오염은 누가 시켰는가? 밖에서 시킨 게 아니고 여러분 마음이 시킨 겁니다. 마음이 금생만 시킨 게 아니라 과거 속세로부터 여러분 그렇게 만들었어요.

눈은 짝눈으로 만들자. 업을 그리 지은 겁니다. 눈은 단추 구멍으로 만들자. 업을 지은 겁니다. 나같이 키는 요렇게 만들자. 내가 지은 거거든요? 뭐가? 마음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머리카락을 없애자. 이렇게 내가 만들었다니까. 누가 만들어줬겠어요? 그런데 간혹 가다가 그 핑계를 갖다 대. 우리 집에 누가 대머리가 있는가? 아 조상을 왜 나무래? 조상이야 대머리가 있던가 없던가? 옛날에는 다 상투 꽂았는데 무슨 대머리가 있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지 않아요?

만약에 옛날 우리 유교시대 500년대 상투 꽂고 살 때 대머리 있었으면 야~ 상투를 어떻게 틀었겠어요?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사람 대머리가 없는 겁니다. 근래에 생긴 거예요. 나 같은 사람이. 업을 잘못지어가지고. 이렇게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남 나무랄 꺼 하나도 없다니까. 유전유존 그러지만 그것도 나무랄 필요가 없어요. 결국은 내 몸속에 모든 게 다 있다. 자연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 자연을 이제 내 몸으로 비유하지 말고 바깥으로 한 번 비유해 봅시다. 바깥은 뭡니까?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뭐로?

하나는 보이는 물체, 하나는 그 물체가 지니고 있는 소리, 어떤 소리가 날거 아닙니까? 그죠? 새는 새소리, 물은 물소리. 그리고 하나는 그 물체가 지니고 있는 중심 마음. 이 자연이 그리 세 가지를 지니고 있잖아요. 그걸 우리한테 가져오면 우린 소우주라 그러잖아요. 우리도 뭡니까? 몸뚱아리. 신, 그 다음에 언어, 사람이 언어를 지녔어요. 그리고 세 번째가 뭐에요? 우리의 마음. 똑같잖아요. 자연이 몸과 소리와 즉 몸과 언어와 생각을 가졌듯이 나 역시 몸과 언어와 생각을 갖고 있잖아요. 똑같잖아요. 그러면은 이 똑같기 때문에 안 같으면 안 살죠. 유유상종이라 그랬잖아요.

내 몸과 내 언어와 내 생각이 지금 대한민국 좀 넓혀서 이 지구촌에 살도록 맞춰놓은 거예요. 내 몸과 언어와 생각을 저 불보살이 살도록 맞춰놓으면 내가 여기 태어나겠어요? 안 태어나겠어요? 안 태어나죠. 결국 여러분은 여러분 마음이 여기에 딱 생활하기 좋도록 다 맞춰서 태어난 거예요 .그것도 대한민국에 태어나면은 대한민국 금수강산하고 다 맞도록 태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김치된장을 먹고 살아야 되. 빠다 기름을 못 먹는 거예요. 맞춰놨기 때문에. 빠다 먹는데 가서 한 달만 살다 오면 내 김치생각해요. 김치 김치. 왜? 중독이 되 있거든.

여러분은 이미 대한민국에 탁 맞도록 다 중독 돼 있어요? 뭐에? 대한민국에 나는 곡식에 중독 돼 있고, 김치에 중독 돼 있고, 다 중독 돼 있어요. 된장에 중독 돼 있고. 그거 못 먹으면 안 되잖아요. 입이 근질근질하고 속이 미식거리고 난리요. 난리. 아편중독자와 다를 바가 뭐가 있어요? 그게 그거지. 그런데 아무도 밥에 김치에 된장에 중독됐다 소리를 안 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습니까? 기껏해 봤자 술에 중독되고, 담배에 중독되고, 요렇게만 해. 그 보다 더 큰데 중독 돼 있으면서. 그렇게 여러분은 속세로부터 만들어 놓은 겁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현재 여러분 받는 거 감수하세요. 그대로 받으세요. 그거다 받으셔야 되. 피할 생각 하지 마세요. 그걸 받아야 소멸이 됩니다. 안 받고는 소멸이 안 돼요. 가난한 거 병든 거, 불안한 거, 예를 들어서 못난 거 잘난 거 부모덕 없는 거, 자식덕 없는 거. 뭐가 있거들랑 그거 다 감수하고 받으세요. 피할 생각 하지 마세요. 못난 자식 둬도 할 수 없고, 잘난 남편 만나도 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어요. 그거 다 여러분이 언제 지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 땅에 이 환경 속에 태어난 거예요.

태어났기 때문에 이 환경은 여러분에게 항상 설법을 해요. 너는 요렇게 생겼다. 요렇게 생겼따. 이렇게 설법을 해요. 그걸 정종님이 뭐라 그랬습니까? 당체법문이라 그래요. 이 설법을 내 해요. 이 당체법문이 다른 법이 아니라. 자연 자체가 여러분에 맞도록 살았기 때문에, 맞기 때문에 설법을 해 주는 거예요. 부처는 부처의 말을 알아듣고, 보살은 보살의 말을 알아듣고, 중생은 중생의 말을 알아듣고, 사람은 사람끼리 말을 알아듣잖아요. 개는 개끼리 말 알아듣고, 소는 소끼리 말 알아듣고. 서로가 끼리끼리 다 말 알아듣죠.

그럼 크게 보면은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땅덩어리 금수강산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금수강산의 말을 여러분이 알아듣는 거예요. 나 역시 금수강산의 말이 통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금수강산에 있는 모든 것이 내 입으로 들어와도 소화를 다 시키는 거예요. 이게 안 맞으면 소화를 못시킵니다. 합일이 되면은 되는 거거든요. 그러면 금수강산이 뭐겠습니까? 나의 그림자죠. 나의 그림자에요. 나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환경이에요. 환경, 환경은 나의 그림자입니다. 그거는 나를 닮은 거예요.

내가 만약에 강을 등지로 살 팔자 같으면은 강남에 살고, 강을 안고 살 팔자 같으면 강북에 사는 거예요. 알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강을 등지고 살 팔자가 어떻게 강북에 살겠어요? 강남에 살아야지. 강을 안고 사는 사람이 그런 팔자인데 어떻게 강남에 사냐 이거죠. 강북에 살아야 한강을 안고 살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다 여러분이 만들어진 거고 자연은 그림자일 뿐이에요.

그래서 이제 불교는 생활 속에 있다는 말은 딴 데가서 찾을 생각 하지 말고, 아침에 딱 일어나면은 그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여러분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동반자가 되어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동반자죠. 그러면서 서로가 뭘 주고 받습니까? 인과 과를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인연결과를 내 주고받고, 주고받고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을 알고 싶거들랑 거울 쳐다보고, 여러분 쳐다보지 말고. 그거는 백날 봐도 콧구멍 둘 눈 두 개, 그거는 바꾸려야 바꿀 수 없으니까. 그것 말고 아침에 일어나서 자연 속에 들려오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비바람 혹은 문 열고 나갔을 때 떠오르는 모든 것, 이런 것들이 다 여러분의 모습이란 말이에요.

그걸 쳐다보는 순간 환희의 마음이 딱 들거들랑 오늘일 잘 되겠구나. 그러면 되요. 그런데 신발장에 신을 딱 놓은데 딱 뒤집어 져버렸다. 누가 뒤집었습니까? 본인이 뒤집었잖아요. 본인이 잘못 놨으니까 신이 뒤집어 졌지. 그럼 결국은 무슨 뜻입니까? 오늘 신발 뒤집어져 법문 하는게 아니고 이미 나는 집 나왔을 때 오늘은 별로 좋은 일이 없다. 그걸 마침 신발이 알려주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조심해야지. 이제 열군데 갈 것 다섯 군데로 줄이고. 될 수 있으면 어느 곳에 가서, 그러니까 어느 구름 속에 비가 들어있는지 모르니까. 분명이 내가 발걸음을 줄이라는 소리니까. 어느 발걸음을 줄여야 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탁 생각해 보는 겁니다.

요거는 필요 없고, 요거는 필요 없고. 어지간하면 집에서 낮잠 자지 뭐. 그게 훨씬 나아. 그런데 그것도 마찬가지라. 낮잠 자려고 딱 누우니까 베개를 내는데 어이다가 잘못 하면 베개 닛하고 베개 속하고 빠져버렸다. 아~ 이거 눕지도 말란 소리구나. 누우면 안 돼. 그러니까 낮잠도 못자 그때는. 이런 게 다 법문이야. 그렇지 않아요. 하필이면 그때가 그러냐 이거죠. 이때까지 잘 들고 놀다가. 놓고 놓고 하는데 왜 그게 알통만 쏙 빠지냐 이거죠? 그러면 눕지도 말라 소리 아니에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러면 이때는 염송하는 수밖에 없다. 분명이 오늘 나가는 것부터 이거부터 다 안 맞으니까. 이제 남은 일은 뭐에요?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보호는 어디 있습니까? 내 마음의 보호입니다. 왜 내 마음의 보호냐 하면은. 여러분이 부르는 옴마니반메훔은 본심진언이라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본심의 보호를 받아야 되는데. 그냥 진언을 안 부르면 이래 불러야 되요. 내 마음, 내 마음. 나, 나. 이래야 되는데 그게 안 되잖아요. 안되니까 말을 하나 집어넣어 준겁니다. 옴마니반메훔. 이렇게. 사실은 나, 나, 나, 나. 이렇게 해야 되는데 남들이 나, 나, 나, 나 그러면 이상하잖아요. 그래도 뭔가 이상한 주문을 외워야 신비롭게 보이잖아요. 2038

사실은 그게 나, 나, 나 소리에요. 그렇잖아요. 내가 누구다. 내가 누구다. 만약 저 같으면 뭔지 압니까? 지금은 옴마니반메훔 부르지만 실상은 혜정, 혜정, 혜정, 혜정부처, 혜정부처. 이러는 거예요. 나보고 내 본심 속에 부처가 있으니까 혜정불, 혜정불, 혜정불. 지금 내 육체가 고통을 받고 있고 육체가 위험에 속했으니까 sos를 청한 겁니다. 혜정불, 혜정불 나와라 오바. 혜정불 나와라. 이러는 거예요. 그게 진언을 부르는 겁니다. 그 생각 안하고 그 속에 뭐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즉 그것은 나를 부르는 거예요. 나를. 내가 뭐를 부르느냐 하면은 본심을 부르는 거예요.

왜 부르느냐? 자연이 나한테 설명을 했다 이거야. 설법을. 어떻게 될 것이라고 설법을 했다 이거죠. 남이 설법한 것도 아니고 그걸 알아듣고 나는 그걸 대처해 나가야 되잖아요. 그러려면 나에게 힘을 실어야 되. 보니까 불가학력의 힘이 있어. 어떤. 과거에 지은 악업 때문에 불가항력의 힘이 밀려오는 거예요. 어느 때 지은건진 모르지만 밀려오는 겁니다. 밀려오니까 그걸 내가 힘을 실어가지고 대처를 해야 되. 그래서 진언이 필요하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먼저 힘부터 실으라고 진언을 외우는 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