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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종 밀교수행강좌] 제4강 불교의 가르침은 생활속에 있다 (41:36)

Buddhastudy 2011. 8. 14. 06:43

  방송 보기: 불교TV

그러면 모든 일도 순조롭게 풀리는데. 이제 말씀드린 데로 자연의 어떤 현상이나 나의 현상이나 똑같다는 걸 지금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자연에도 몸이 있고, 언어가 있고, 생각이 있고. 나도 몸이 있고, 언어가 있고, 생각이 있는 거예요. 맞죠. 그리고 이 세상에는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62년 전에 딱 태어날 때 나는 아마 그랬을 겁니다. 아이고 많이 기다렸제. 내 맞이한다고. 왜 그러냐 하면은 이 대한민국이 나 맞이한다고 다 기다리고 있더라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그때 나 맞이한다고 먼저 태어난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주인공이니까. 그걸 조금 더 유식한 말로 하니까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랬던 겁니다. 싯달태자가. 사실은 내가 그거에요. 내가 어느 곳에 딱 가면 그러잖아요. 어떤 분이 그런다잖아요. 울릉도에 들어가면 군수가 그러잖아요. 몇 천 년 만에 내가 여기에 이때까지 나 올 때까지 잘 지켜줘서 고맙다 울릉도야. 그러잖아요. 내 하나 맞이하려고 지금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 방송국도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이 시간에 나를 맞이하려고 다 갖춰진 거예요. 그래 내가 뭡니까? 주인공이라서. 그런데 주인공이라고 자부하면 안 돼요. 그게 바로 자연이고 부처님 가르침이에요. ~ 내가 주인공이니지만 자연이 뭡니까? 부처잖아요. 그럼 나는 자연 앞에 어떻게 되요? 고개를 숙여야죠. 숙여야죠.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해요? 고맙게 생각해요. 기다려 줘서 고맙다고. 내 편히 살도록 옷 짜줘서 고맙고. 농사지어줘서 고맙고. 그렇죠? 집 지어 줘서 고맙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먼저 태어나서 나 맞이하려고 준비해줘서 고맙고. 몇 년쯤 됐겠습니까?

 

만약 우리 아버지 40에 내가 낳았으면 40년 동안 준비 했잖아요. 나 맞이하려고. 여러분 무슨 행사하려면 잔치한번 하려면은 준비하죠.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했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내 하나 맞이하려고. 내가 주인공이니까. 그런데 거기에 교만심을 부리는 게 아니라 고맙습니다. 저것이 내 모습이구나. 왜그러냐하면 나와 맞는 음식, 나와 맞는 집, 나와 맞는 옷, 나와 맞는 교육, 나와 맞는 모든 것이 지금 만들어져 있으니까. 나하고 안 맞으면 나는 여기에 안 태어납니다. 나는 대한민국 말이 맞으니까 대한민국 말하는데. 한글하는데 태어난 거예요.

 

내가 만약에 에이비씨가 맞았다면 어디에 태어났겠어요? 영구이나 미국에 태어났겠지. 그러니까 결국은 나를 맞이하려고 대한미국에 600년 전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거예요. 나중에 600년 뒤에 혜정 니 와서 이거 봐라. 이러려고. 그러니까 세종대왕이 고마운 거예요. . 이제 잘 봅니다. 이제 눈감고 가시오. 잘 봤으니까.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 모습을 보고 아~ 이게 내 본보기구나. 좋게 보면 그렇지만 나쁘게 보면 어떻겠어요? 나쁜 것들이 다 나타날 때 아~ 저게 내 업보구나. 업보로다. 저걸 내가 해탈시켜야 되겠다. 그거 해탈하는 날 누가 해탈해요? 내가 해탈하는 겁니다. 그게 자비에요.

 

자 일체 중생이 지금 고통으로 병을 앓고 있다 이거죠. 그럼 병 앓고 있는 그게 누구 모습입니까? 내 모습이에요. ? 병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으니까. 앞에 말씀드렸지만, 한글을 지어서 나을 맞이한 게 아니라 모진 병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책임을 지고 주인공이니까. 책임을 지고 그 병고와 싸우는 사람을 해탈시켰다. 그게 내가 할 사명이에요. 여러분도 역시 마찬가지에요.

 

여러분도 한 가정에 가면은 제비새끼가 어미가 물어다 주는 아빠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기다리고 있듯이. 여러분 가정에 가면은 여러분 자녀들이 성장하지 못한 자녀들이 혼자 단독으로 하지 못한 자녀들이 그죠? 자수성가 못한 자녀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책임을 져야 되. 어설프게 하면 안 돼요. 이왕 해주려면 화끈하게 해 줘야 되. 그러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내가 화끈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되. 여러분 왜 수행합니까? 그 화끈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고.

 

내 이웃에 이웃이 곧 내 몸이니까. 그 이웃의 아픈 사람을 없애기 위해서 내가 염송하는 겁니다. 그래서 종주님은 그 법을 뭐라 합니까? 대중강도?라 그러잖아. 그걸 우리는 알아야 되. 내가 주인공이면은 내가 사는 모든 나라와 내 주인은 평온해야 되요. 여러분이 주인공이라고 자부하려면 여러분 주위가 다 평온해야 되.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면은 그 순간부터 어떻게 되요? 모든 사람이 다 평온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게 부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간 겁니다. 2500년 전에.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뭐겠습니까? 역시 마찬가지에요. 적을 두지 말고, 다 평온하게 하셔야 되. 내 마음속에 적이 있으니 적이 생기는 거예요. 그걸 풀으셔야 되. 그래야 만이 여기 나온 데로 불교는 생활 속에 가르침이 있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겁니다. 생활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게 생활이잖아요. 주고받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죠? 아니 일상생활이 뭡니까사람끼리 서로가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게 일상생활 아니에요? 그러다 물건 있으면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는 게 일상생활 아니에요. 만들었다가 부셨다가 만들었다가 부셨다 하는 게 일상생활이잖아요. 그렇죠?

 

심었다가 베었다가 심었다가 베었다가 하는 게 일상생활이잖아요. ~ 봄에 심고 가을되면 또 베고, 또 봄에 심고 가을되면 또 베고. 그게 일상생활이에요. 그 생활 속에서 될 수 있으면 고통 받는 사람이 적어야 되. ? 내가 있는 한은 왜 부처님의 가르침이 자연 속에 있고 생활 속에 있다 가르치냐 하면은 그렇게 알으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베풀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문중은 자비문중이라 그러잖아요.

 

저는 어느 때 말씀 한 적 있습니다만은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이성적인 것이잖아요. 그건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고 제가 그랬습니다. 자비를 이야기하는 것은 부모와 자식지간이에요. 그건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는 겁니다. 불교는 곧 자비를 이야기 하는 부모와 형제, 그러니까 믿는 형제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다른 종교는 뭡니까? 사랑을 이야기하면은 이성적인 거니까 언제든지 헤어질 수가 있어요.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것이 이 땅에 판을 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혼율이 높아지겠죠. 모르니까. 부모와 자식. 우습게 생각하겠죠. 다 양노원에 집어넣고 어디어디 집어넣고, 같이 안사는 거지 뭐. 요즘은 그게 편하다고 그러잖아요.

 

옛날에는 누가 편했냐고 물으니까 옛날에는 시부모와 며느리와 같이 살면은 옛날에는 며느리가 불편했는데 요즘은 시어머니가 불편하다 그래. 세상이 우외 된 거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왜 불편할까요? 참 시절도 많이 변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겁니다. 우리가 환경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우리가 부처님가르침을 그렇게 되도록 만든 겁니다. 왜 좋게 못 만드냐 이거죠. 그거는 왜 그렇게 했냐 하면은 너무 어려운 어려운 용어를 쓰다보니까 벌써 발빨리 간 사랑이라는 어떤 그게 이렇게 만든 거예요.

 

우리는 다시 자비문중으로 들어가서 진짜 들리는 새소리 하나, 구슬픈 소리 같으면 그걸 듣고 저 새가 처량하구나. 어떻겠구나. 저 새를 어떻게 편안하게 해 줄까? 이런 마음까지도 내셔야 되. 여러분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물론 그 중심은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육체부터 먼저 화합을 시키라 그랬죠? 육체부터 먼저 화합을 시켜야 되요. 그래놓고 난 다음에. 이제 나아가서 가족을, 그 다음에 사회를 끌어나가는데. 그 자체가 따로 찾지 마시고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잘 때 까지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이 다 부처님 말씀이로다. 나한테 지금 계속 설법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그래서 좋고 나쁨이 들릴 때마다 저것이 바로 내 업보로다. 내가 이 땅에 사는 한은 내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에게 알려주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면은 참회가 저절로 나와요. 그래서 종주님은 참회를 기초를 내 걸은 이유가 그겁니다. 저절로 참회가 나오는 거예요. 무슨 살생한 참회, 무슨 도둑질한 참회. 거짓말 한 참회. 이거는 참회도 아니야. 그 참회는 너무 현실적이고 그런 참회 말고, 여러분 몸과 여러분의 마음이 서로가 밸런스가 안 맞으면 그걸 참회를 해야 되.

 

여러분 마음은 편안히 있고 싶어 하지만 몸이 사치스러워, 여러분 마음은 부지런하고 싶지만 몸이 게으르고, 여러분 마음은 참고 싶지만 몸이 말을 안 들어 주먹 나오고 발길 나가고. 이럴 수가 있어요. 안 그러면 마음은 참는데 입이 방정맞아서 먼저 나가. 말 해놓고 봐 일단. 그리고 또 돌아오면 마음이 그래요. 얼마나 후회하는지 몰라. 입은 절대 후회 안 해요. 눈과 입과 코와 귀는 절대 후회 하지 않습니다. 후회는 마음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입은 말하면 그거로 끝이야. 입이 지가 후회할 줄 알면 안하지. 입 다물고. 눈이 지가 후회할 줄 알면 안보지. 절대로 안이비설신이는 후회할 줄 몰라요. 안이비설신의가 저질러 놓은걸 후회는 마음이 하는 겁니다. 자연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는 인간이 하는 겁니다. 거기에 보면은 자연은 오로지 부처일 뿐이에요. 안이비설신의는 부처일 뿐이에요. 우리에게 뭔가 잘못을 가르쳐 줄 뿐이지 거기에 대해서 이러고 저러고는 안 해요.

 

그리고 몸의 고통을 받더라도 후회 안 해요. 눈이 아파도 후회 안 해요. 눈이 아파서 눈이 후회하는 거 아니에요. 마음이 후회하는 거예요. 귀가 아파서 귀가 후회하는 거 절대 아닙니다. 귀가 후회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옛날에 여우 이야기 안들었습니까? 여우가 사냥꾼들한테 들켜서 도망을 가는데 사냥꾼한데 도망을 가는데. 헐레벌떡 헐레벌떡 이 산 넘고 저 산 넘고 계속 도망가 여우 굴속에 들어가 숨었기라. 숨고보니까 얼마나 숨이 턱에 찼는기라. 턱에 찼는데 가만 있으니 사냥꾼이 없잖아요.

 

앉아서 심심하니까. 야 눈 니는 뭐했노? 니 눈 데리고 다니느라 다리가 힘들었다. 나는 포수가 사냥꾼이 오는지 두루 살펴봤지. 니는 됐다. 니는 눈값을 했네. , 너는 뭐했냐? ~ 나는 소리를 들었다. 어는 쪽으로 오는지. 귀 너도 귀값을 했네. 다리 아파도 괜찮다 이 말이에요. 다음으로 꼬리 니 뭐했노? 붙어왔다. 니는 꼬리 값을 못했네. ~ 이것 때문에 내가 더 숨이 더 찼다 이거죠. 그래서 꼬리를 굴밖에 내놔. 그런데 꼬리만 갑니까? 몸체로. 그거 다 여러분 다 배운 거 아니에요? 이야기 들은 거 아닙니까? 바로 그런 겁니다.

 

눈귀코입은 몰라요. 결국은 마음이 죄를 지어서 눈을 내 놓고, 내 놓고 나니까 마음이 아프고, 코를 내 놓고 나니까 마음이 아프고. 다 지가 아프니까. 꼬리 내 놓고 잡히는 거나 똑같에요. 여러분은 지금 그러고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냐 하면 너무 현실적으로 찾아서 법문으로 보라 그러니까 현실에 잘 사는 것만, 잘 보이는 것만 자꾸 채우려고 그래. 현실적인 명예만 채우려고 그래. 내가 언제 명예 채우라고 그랬어요?

 

여러분이 부처님 앞에 원하는 게 뭡니까? 그저 현실적으로 잘 되는 그 것만 원하죠? 마음 닦는 거는 절대 원하지 않아. 그거는 여기 와서 마음 닦으라고 그러면 마음 닦을 여가가 어디 있어. 지금 급한 게 발등에 불 떨어졌는데. 발등에 불 떨어진 이유가 마음인데. 발등에 불 떨어졌다고 안 해요? 사실은 떨어진 이유가 마음이 결국은 잘못돼서, 안이비설신의를 혹사를 한 거에요.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안이비설신의는 행한 것뿐이에요. 이 점을 여러분 안다면은 진짜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 저 삼라만상은 죄 지을 줄도 모르고, 지어도 지은 줄도 모르고 할 줄도 모르고 다 몰라. 누가 알아요? 내가 아는 거라.

 

내가 주인공이 돼서 옮겼다가 넣었다고 뺐다가 꽂았다가 이러는 거예요. 꽃이 나한테 뭐라 그럽니까? 안 말도 안 해. 그런데 괜히 꺾었다가 난리야 난리. 여기도 누가 꽃갖다 꺾어 놨어요. 살아있는 거 갖다 놓으면 좀 안 돼요? 아니 불교가 생명을 살리는 거지만. 여기 지금 오늘이 요거 윤기 나죠. 내 가고 나면 이거 어떻게 되요? 그러니까 내가 꽃한테 참회를 해야 되. 그런 겁니다. 자연을 누가 파괴했냐 하면 벌써 시들고 있네. 그런 겁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이제 우리는 전부다 어떻게 되요? 믿는 형제구나. 내가 주인공이니까 나 때문에 여러분들이 다 모였구나. 갖춰져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거꾸로 아까 보살님이 그래요. ~ 내 오니까 정사님 법하는구나. 이러면 되요. ~ 나 때문에 이 정사님 땀을 뻘뻘 흘리면서 법하는구나. 이러면 되요. 나 역시 내 쪽에서 생각하면 어떻게 되요? 나 때문에 멀리서 왔구나. 여러분 여러분대로 개개인이 참 나 때문에 정사 저 사람 많이 배워와서 저렇게 법하느라 애 많이 쓴다.

 

이러 면은 그 마음이 무척 무슨 마음이에요? 부처님 마음이에요. 그렇게 했을 때 여러분은 내가 뭡니까? 부처지. 나는 여러분이 부처지. 그러면 나는 뭐보고 생활합니까? 여러분 때문에 생활하는 거지. 여러분은 나 때문에 생활하는 거지. 그러니까 불교가 그거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얼마나 쉽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사람이야기 했지만 여러분 몸을 담는 신발 옷, 모두가 다 부처에요. 그것 때문에, 나 때문에 지금 다 옷이 이렇게 만들어졌잖아요. 나아니면 뭐하러 만들겠어요?

 

이렇게 생각하면은 아~ 불교가 그런 거구나. 그러면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2500년 전에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불교는 어떻게 해요? 존재합니다. 그게 밀교에요. 꼭 석가모니 부처님이 와야만이 불교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류가 있으면 불교가 있는 거예요. 만물이 뭐가 있으면은 불교가 있는 겁니다. 만물 자체가 불교고 부처니까.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 부처니까. 만물이 성장하는 게 가르침이니까. 만물이 성장해도 시드는 것 도 가르침이니까. 생사가 다 가르침이니까.

 

우리도 그걸 보고 나도 언젠가는 죽겠구나. 그럼 이왕이면은 잘 가꾼 꽃은 더 아름답죠? 그렇잖아요. 거름을 더 많이 주고 더 가꾼 곡식은 더 충실하잖아요. 그럼 나도 그래야 될 거 아닙니까? 나도 내 마음을 잘 가꾸면 어떻게 되겠어요? 윤택하고 뛰어나겠죠. 뭔가 잘 되겠죠. 그러다가 금생을 마치면은 어떻게 되요?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겠죠. 해탈이 아니라 한 계단 높여서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겠죠. 그 열반의 경지에 머물러 있다가 비로서 나중에 어디로 가냐 하면은 성불의 경지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말씀드린 데로 우리는 자연 속에서 자연이 가르쳐준 거. 그 자연을 자연으로 보지 말고 부처님으로 봐 달라는 겁니다. 옛날에도 이미 이와 같은 당체법문은 있었습니다. 종주님께서 만든 당체법문 이야기 한 건 절대 아니에요. ? 옛날에 흔히들 그러잖아요. 아 침에 일어나니까 동쪽 가지에 까치가 짖었다. 이거죠. 그럼 옛날 어른들이 뭐라 그래요? 좋은 일이 있겠다. 반가운 소식 있겠다. 그러잖아요. 그게 당체법문이에요. 또 반대로 저녁에 까마귀가 까악까악 하고 지나갔다 이거죠. 그럼 뭐라 그래요? 이 동네 초상이 날라나? 그잖아요. 그게 다 당체 법문이잖아요. 알려준다 이거죠. 알려줘. 미리.

 

그런데 그걸 밝게 알아야 되. 옛날 어른들은 그걸 그냥 까치가 짖는걸 보고 아~ 반가운 손님이 소식이 이랬는데. 조금 더 깊이 알면은, 염송을 왜 하느냐? 그거 안 해도 알거니까. 좀 더 깊이 알면 소식인가 사람인가도 알아요. ~ 까치가 짖었는데 소식이 온다는 뜻인가?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뜻인가? 아는 거예요. ~ 소식이 온다고 알면은 집안 청소 할 필요 없죠. 집에서 기다릴 필요도 없어. 논에 나가서 일하면 되요. 그런데 반가운 손님 온다고 하면 오늘 일을 좀 멈추고 집청소도 좀 하고, 음식 준비 좀 하고 그래야 될 거 아닙니까? 그거까지 우린 알아야 되. 고거는 옛날 분이 몰랐어요.

 

그래서 종교가 필요한 거예요. 다 당체법문이 있는데 우리는 반갑고 좋게만 아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손님인가? 소식인가? 또 남자인가 여자인가? 아침인가? 오후인가? 다 알아요. 그런데 까치가 울 때는 그걸 다 가르쳐줘요. 나무가 있는데 동쪽에 있는 나무가 있는데 동쪽 가지인지, 남쪽 가지인지, 서쪽가지인지, 꼭대기인지, 아래인지 뭔가 있을 거 아니에요. 잘만 살펴보면 알아. 그걸 어예 말하겠어요. 그냥. 그때 가서 느낌으로 딱 들어야 되지. 그게 깨달음이야. 깨달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느낌을 딱 받는 순간 아~ 이거구나. ~ 오후에 온다네. 오후에 한 2시쯤 온다네. 오전엔 실컷 일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언제 올지 모르니까 아침부터 하루 종일 기다려. 나 일도 못하고. 그런데 오기는 왔는데 반갑기는 뭐가 반가워. 조금 반가워. 안반가운 사람이오. 그것도 또 재미없잖아요. 이런 걸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게 그게 바로 자연을 부처로 똑바로만 알면은 자연이 설명한 법을 내가 확실히 읽을 수가 있어요. 그 법을 확실히 읽기 위해서 내 자신마음을 자성을 찾고 수행을 하는 겁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육자진언 수행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