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72. 고전콘서트 #27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II) - 정혜쌍수의 심법_윤홍식

Buddhastudy 2013. 10. 6. 21:14

출처 : 홍익학당

 

~ 우리는 목적이 없고 쓸모가 없으며. 목적이 없고요, 즉 이게 로고스적인 생각이 아니고요, 쓸모가 없고 무엇보다 지나친 호기심이나 그런 좋지 않은 의도에서 나온 잡념들이 이어지는 걸 막아야 된다. 여러분 마음은요, 늘 깨끗해야 되요. 리셋을 시켜서 초기화 시켜야 됩니다. 이게 우리 학당에서 말씀드린 [깨어나라]. [깨어나라]. 하는 그 질문을요, 늘 던져보세요. 내가 지금 방금 말한 이 상태가 깨어있지 못한 겁니다. 쓸데도 없고 목적도 없고 지나친 호기심이나 좋지 않은 의도로 나오는 잡념들이 마음을 덮고 있으면 안 되겠죠. 그래서 여러분의 영혼을 관리하시는데 중요한 첫째 주목하셔야 할 거는 깨어나야 된다는 겁니다.

 

왜 깨어나라는 말을 쓰느냐? 꼭 비몽사몽간 같잖아요. 그렇죠? 비몽사몽간에 여러분 뜻대로 안되시죠? 망상망상이 이어지는데 막지도 못해요. 그런데요, ~ 깰 때 꿈에서 깨면 그것들이 어디가고 없어집니다. 꿈에서 깨어나듯이 일상에서 깨어나셔야 되요. 두 번짼 제가 뭐라고 하죠? [자명하라]. 로고스에 맞아야 되요. 그다음 여러분 삶이 로고스에 맞게 돌아가야 되요. ~ 앞에 거는요, 로고스적인 삶을 살기위한 전제입니다. 잡념에 휘둘리지 마실 것. 그 다음 엔요, 지금 이 에고가 해야 될 일이에요. 영은 원래 로고스는 깨어 있잖아요. 이 에고가요, 먼저 자기마음이 따른 데, 육신과 이 세상에 휩쓸리는 걸 막아야 되고요, 두 번째는 로고스의 뜻에 따라서 자명하게 관리를 해야 됩니다. 이해되시죠? 이 그림을 놓고 한번 보세요.

 

외부에서 들어온 이 잡념들, 내부에서 여기에 호응해가지고 외적으로 들어온 그 정보에 호응해서 내적인 정보가 같이 호응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끝없이 잡념들이 일어났는데, 잡념들을 늘 정리할 줄 알아야 됩니다. 깨어나라. 그다음에 잡념만 정리한다고 끝이 아니에요. 로고스를 받아들여야죠. 내 삶에. 로고스에 맞게 생각을 해야죠. 자명하라. 이 두 가지가 여러분의 영혼을 지배한다면 요, 여러분 영혼은 매 순간순간 밝아지게 되어있습니다. ~ 그러니까 첫 번째 [깨어나라]. 이렇게 물어보라는 겁니다. 저희랑 입장이 똑같죠. 이 분도요, 똑같은 얘기를 써 놓으셔가지고 제가 당황했습니다.

 

보고 , 이거 우리 얘긴데.” 남들이 들으면 제가 이분거 보고 표절한 거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똑같아요. 진리가 같으니까. 오히려 다르면 이상하지 않나요? 저랑 너무 다른 얘기를 하면요, 또 의심이 날거에요. 이 분은 또 어떻게 철학을 하셨나? 그런데 신기하게 보세요. 먼저 잡념을 막으라는 얘기를 한 다음에 그다음에 무슨 얘기를 하나요? 그리고 누군가가 갑자기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 라고 물어봤을 때 아주 솔직하게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즉각 대답할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된다. 자명해야 겠죠. 음침한 거, 음험한 거 생각하시면 안 되고, 밝고 자명한 생각만 하고 계시니까 당신 지금 뭐 생각해?” 할 때 바로 얘기할 수 있어요.

 

남 뒤통수 칠 거 이런 거 얘기하다보면 생각하고 있다 보면 뭐? “당신 뭐 생각해할 때 바로 말 못나오겠죠. 이런 것. 그래서 자명한 거 늘 생각하시라고요. 그거 하나. 이 분이 자기가 명상록 자체가 자기가 자기한테 보내는 글이에요. 쓰는 글이에요. 자기가 남보라고 쓴 게 아니고요, 원래 원 목적은 자기가 자기 보려고 쓴 글입니다. 황제하면서. 그래서 늘 너는 이걸 좀 잡념 좀 없애. 너 늘 자명한 생각만 해.”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글이라는 겁니다. 육체 영혼 이성. ~ 육체 영혼 이성. 갑자기 세 개를 얘기하고요, 육체는 감각이 속해있고, 오감이요. 오감에서 들어온 외적 정보가 이 영혼에서 온갖 또 생각을 만들어내죠. 욕망과.

영혼은 욕망이 속해있으며 이성에는 로고스, 원칙이 속해있다. 삶의 원칙. 삶의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로고스가 계발되지 않은 분이죠. 욕망대로 살아가면서 이성을 무시하는 분들, ~ 이런 분들이 큰일을 치르는 거고, 그 뭐죠? 동양고전에도 인심은 위태롭다하는 게 이거죠. 욕망은요, 욕망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잠자고 싶다. 이건 우주가요, 사람한테 심어놓은 프로그램이에요. 자라고. 배고프다. 먹으라고요, 먹어야 에너지를 얻으니까요. 또 성욕, 종족 번식하라고 성욕이 있어요. 다 이유가 있어서 있는 겁니다. 욕망도. . 또 소속욕. 무리를 짓고 살으라고 인간들한테 소속 어딘가에 속해야만 마음에 안정이 오게 만들어져 있어요. 혼자 있으면 외로워요. 이게 우주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무리를 이루라고. 이해되세요?

 

그러면서 또 지적인 호기심. 진선미에 대한 욕구가 있어요. 자아실현 욕구. 이 육체적인 삶, 물질적인 삶에서 만족하지 말고 고차원적인 거를 이해하라고. 우주가 다 심어놓은 거기 때문에 욕망 자체를 터부시하면 안 돼요. 욕망은 그래서 우리 동양 경전에도 욕망에 대해 뭐라고 했냐하면 위태롭다고 했지 악하다고는 안했어요. 위태위태하다. 욕망은 좀 위태로워요. 철없는 애 같으니까요. 뭐든지 원해버리거든요. 그게 옳은지 그른지 생각하기 전에 원해버려요. 그러니까 위태롭고, 이성은 그게 옳은지 그른지를 말해주는 영역인데, 미약하다. 이성은 미약하고, 욕망은 위태롭다. 이 말이 지금 그대로 적용되죠. 서양철학에도. 동양 서경에 나온 말입니다. 道心惟微도심유미. 도심은 미약하고 人心惟危인심유위. 인심은 위태롭다. 여기서 允執厥中윤집궐중. 중을 잘 잡아라. 이게 핵심이거든요.

 

그래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철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아실 거고, 이성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건 뭡니까? 삶의 원칙이 분명해 진다는 얘기죠. 해서 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이요, 내 영혼한테 분명해지고 강한 목소리로 천둥처럼 울릴 수 있으면 여러분도 철인이에요. 철인의 경지에 들어서신 거예요. 천둥처럼 강하게 울리기 시작하면요, 그런데 지금은 실락같이 들려요. 그러니까 무시해도 그렇게 찜찜하지 않아요. 그런데 천둥처럼 들리면 이제 무시하기 힘들어 지시겠죠. 점점 무시하시기 힘들어지다가 나중에는 성령의 인도로 어디로 갔다 처럼 어디로 끌려 다니기 시작할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엄청난 경지에 가셨다고 보시면 되요.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성령의 인도로 며느리를 배려했다. 이런 삶에 성령의 인도라는 게 가로로 삶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힘든 고부간의 갈등도 성령의 인도로 해결하고. . 이렇게 성령의 인도로 가족의 갈등을 해결하고, 성령의 인도로 어떤 친구가 뇌물을 주는데, 내가 그걸 안 받았다. 성령의 인도로 중요한 판결을 할 자리에서 양심에 맞게 치우치지 않게 했다. 삶 전반에 이게 들어가서 다 말이 되죠. 로고스의 인도로. 이게 삶의 들어가야 되요. 안 들어가고 살면요, 왔다 갔다 해요. 우리 삶을 보시면 하루도요, 위태위태할 거예요. 하루하루 겨우겨우 죄 안 짓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너무 신기하다할 정도로 위태위태하게 살아갈 수도 있어요. .

 

그런데 앞에 모든 언행 앞에요, 생각과 언행 앞에 로고스의 인도로 라는 게 딱딱 들어갈 수 있으면 여러분은 들어가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점점 영성이 높아지시는 거고, 모든 삶의 모든 문제에 그게 다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도 성의 경지, 철인의 경지에 들어가셨다고 보시면 되요. 지금 실천적인 팁을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살아가는지 한번 관찰해 보시고요. 으흠. 저부터도 반성해야 될 부분이 그런 부분 같아요. 그래서 요거 잡념을 지금 잘 제거하고 계시나요? 이거 기본으로 돌아오시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 하시는 생각. 남한테 공표할만한 건가요? 이렇게 한 번씩 잘 따져보세요.

 

뭐가 로고스인지 여러분 다 아세요. 그러니까 남한테 이거 할 말이다. 못할 말이다. 다 아시잖아요. 다 아세요. 그러니까 남한테 못할 만은 속으로도 말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속으로 생각으로라도. 생각은 속말이잖아요. 속말로도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이렇게 관리해 가시다보면 자연스럽게 엄청난 경지 도달하실 겁니다. 사람들은 시골이나 바닷가 또는 산속의 집들, 별장이죠. 어디 별장에 좋은 은신처를 찾아요. 내가 거기 가서 좀 살다 오고, 쉬었다 오고 싶다. 황제이다 보니까 얼마나 이분은 그런 갈망이 컸을까요? 잠시, 이 궁중에서 좀 빠져나가서 나 혼자만 있다 오고 싶겠죠. 후궁들이랑 뭐 이런. 후궁들도 속 시끄럽겠죠? 아무도 없이. 미국에 어떤 대통령 한분은 딱 그랬데요. 그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휴가 때 대통령들 별장에 가서 쉬잖아요. 사위도 못 들어와요. 딸들만. 부인은 없으시고, 딸들만 그 같이 별장에 들어갈 수가 있지 사위도 못 들어 온데요. 사위만 들어와도 속이 시끄럽겠죠?^^ 가장 진짜 편한 사람 아니고는 아예 안들이고 쉴 때는 확실히 쉬는 겁니다. 그 마음 아시겠죠? 정말 나한테 불편하지 않은 사람 외에는 좀 안 만나고 쉬는 것도 감정적으로 충전이 많이 되겠죠.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많이 원할 텐데 특히 황제면 얼마나 많이 원하겠습니까? 다 자기를 가지고 다 눈빛이 좋지 않은 눈빛으로 다 황제 앞에 나타날 거 아닙니까? 모든 신하들이. 뭔가 하나씩 자기대로 꼼수를 쓰고 있는데 그걸 다 계산하자니 얼마나 머리 아프고 쉬고 쉽겠어요. 그러면 당신도 역시 이런 것들을 매우 바랄 것인데,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평번한 사람이라는 증거일 뿐이다.

 

이거 자기한테 한 얘기라는 걸 아셔야 되요. 자기한테 한다고 들어보세요. “너 솔직히 그런데 가서 쉬고 싶지?” 자기가 자기한테 한 거예요. “그런데도 그러면 넌 평범한 사람일 뿐이야.” “진짜는 그렇게 쉬는 게 아니야.”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자신 속에 운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 마음속에 휴식처가 있잖아. 자신의 영혼보다 더 고요하고 자유로운 곳은 없다는 겁니다. 좋은 장소를 찾을게 아니고, 보십시오. 에고가 좋은 장소에 나를 갖다 놓으면 충전이 되겠지 하지만, 이게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이건 평번한 사람들도 하는 거고, 진짜 철인은 에고가 참나에서 쉰다는 거. 로고스 안에서 쉴 수 있어야 된다는 거. ~ 보세요. 이 두 개가 하나로 돌아갑니다.

 

내 마음의 은신처 안에 숨어있다는 행위가 단순히요. 요즘 하는 명상식으로요, 현실도피해가지고 참나 자리에서 쉬자. 이런 게 아니라는 것도 아셔야 되요. 참나자리는 로고스 자리이기 때문에 동시에 자명한 생각의 자리이기도 해요. 자명한 생각, 오해여지가 있네. 생각이전의 자리지만, 자명한 어떤 원리들, 질서들의 자리라는 거 아시겠죠? 자명한 생각을 일으키는 그런 자리. 즉 그러니까 뭡니까? 여러분이 쉬고 있을 때는 진리에서만 쉴 수 있다는 것도 내포되어 있어요. 철학자들한테 이 은신처라는 건요, 마음의 고요와 평안이라는 건요, 단순히 잡념 없음만을 말하지 않는다고요. 진리에 안주하고 있음이라는 뜻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진리와 하나 되어 있을 때 우리가 쉬기 때문에 이 분이 만약에 진리를 모른다면 진정한 휴시도 없어요..

 

내안에 있는 로고스를 받아들이고 인정했을 때 일체 다른 생각 안하고 쉴 때도 정신이 자명한 겁니다. 진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자명한 거지, 진리를 모른 체로 명상만하고 있으면요, 자명하지 않은 부분이 또 있다는 거예요. 이거 이해하시겠습니까? 쉬는데 뭔가 쉰 거 같지 않은 휴식이 되고, 진리를 자명하게 알면서 [몰라]. 하고 계시면요, 진짜 자명한 참나랑 하나가 된다는 거. 뭐로 아냐 하면요, 진짜 자명한 진리 속에 쉬고 있다면요, 누가 와서 여러분을 건드렸을 때 고로스에 맞는 삶이 나올 거고, 진리의 자명함을 모른 체 그냥 고요함만 알고 쉬고 계시다면 누가 와서 건드렸을 때 로고스에 맞지 않는 말들이 나올 겁니다. 속에 자명함이 없었기 때문에. 이해되세요? 드러나 봐야 알지만, 드러나기 전이라도 그 자명함이 충만하다는 거는요, 진리와 하나 되어있다.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 진리를 생각으로 이미 알고 있어야 되요. 그래야 생각을 내려 놨을 때도 그 진리 안에서 쉴 수가 있어요. 그 생각 속에 있는 자명한 것들을 인정한 만큼 내 안의 로고스가 드러나 있거든요? 그 로고스 속에서 쉬기 때문에. 생각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속은 이미 자명해요. 이 느낌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말로 하시기전에 이미 알아요. 여러분이. “그건 아니지.” 라는 말 이전에 이미 알고 계시니까 아니지라는 말이 나오는 거니까. 알고계시는 상태에서 쉬어야지 진짜 자명한 거라는 겁니다. “난 잘 모르겠어.” 하는 상태에서 명상을 아무리해도요, 몰라요. 계속. 이해되십니까? 영원히 모르기 힘들겠지만, 이게 자명한 생각을 하고 로고스에 맞게 사실 때 여러분 내면이 진짜 자명하게 드러날 거라는 것도 아시고 이 글을 읽어보세요.

 

왜냐하면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자신 속에 은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보다 더 고요하고 자유로운 곳은 없다. 특히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면 즉각 완벽한 평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평온이란 정신이 자명하게 정리된 상태이다. 특히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면 즉각 완벽한 평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거죠. 최고의 안식처라는 거죠. 자신의 내면이. 그런데 그 평온이란. 단순히 고요함만이 아니라는 게 여기서 나옵니다. 정신이 자명하게 정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즉 이미 자명한 생각이 전제되어 있어야 되요. 그래야 그런 생각을 내려놓고 있는 동안에도 로고스가 드러나 있기 때문에 내면이 자명해요. 이런 미묘한 상태인데 이거 해봐야만 알거든요. 그러면 이 황제가 이런 얘기를 썼다는 건요, 이분은 안다는 얘기죠. 이 맛을 아니까 이 말을 써 놓은 겁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알 수 있어요. 이 맛을 모르곤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으면요, 우리가 알 수 있죠. 이 분은 이렇게 하는 분이었구나. 이 분은 일하다 지치시면 아마 안으로 들어갔겠죠. 다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서 쉬면 쉴수록 더 자명해져서 뭔 말이 나왔을까요? 명상에서 나올 때는? . 선은 하고 악은 하지 말자라는 신념이 더욱 커져서 나왔겠죠. 명상에서. 그런데 이걸 모르는 명상, 반쪽짜리 명상은 들어가면 편안하고 나오면 힘들어요. 들어가면 편하고 나오면 힘들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계속 이렇게 되요. 산에 가면 편안하고 내려오면 또 힘들고 다시 들어가고, “왜 삶은 이럴까?” 하는데 진짜 명상하면 뭐죠? 산에 가면 충전돼서 내려오면 더 자명해지고 들어가면 더 고요하고 내려오면 더 자명해지고. 이 두 가지가 아주 선순환을 일으켰을 때 우리 안은 진짜 밝아집니다.

 

 

그래서 자주 이 은신처를 활용하여 스스로를 쇄신시켜라. 마음을 리셋 하라는 뜻도 있고, 자명해지라는 뜻도 있습니다. 또한 원칙들은 간결하면서도 근본적인 것이어야 된다. 그런 자명함에서 나오는 원칙들, 그리고 내가 그런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삶의 원칙들은 간결해야 되요. 그랬을 때 우리가 평온한 안식처에서 쉴 때 더욱 그 자명함이 커집니다. 제가 그 하나 힌트로 드린 겁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자.] 이정도의 간결한 걸 가지고 명확히 그걸 이해하시고 내면의 안식처에서 쉬셔보세요. 자명함이 더 커져있습니다. 로고스 힘이 더 커져서 나오실 거예요. 그렇게 되면요, 당신이 그 원칙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영혼은 깨끗이 정화될 것이며. 나중에는요, 그런 자명함에서 온 원칙들만 붙잡아도 고요까지 같이 온다는 겁니다.

 

마음이 정화되어 버려요. 진리만 떠올려도 내면이 고요해지고 정화 돼 버립니다. 아무런 불만이 없이 당신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질 것이다. 이 자신의 삶에서 아주 만족하고 살아간다는 얘긴데, 요게요, 이게 뭐라고 할까요? 불교에 정혜쌍수라는 게 이런 겁니다. 선정에 드는 거랑 자명한 지혜를 얻는 거랑 이 두 가지가 선정은 고요고, 지혜는 자명이거든요? 자명한 개념까지를 포함해요. 그런데 정혜쌍수는 뭐냐 하면요, 고요한 명상에 들면 오히려 생각이 자명해지더라는 겁니다. 지금처럼. 이 정혜쌍수를 아주 설명 잘 해 놓은 거예요. 그리고요, 자명한 지혜를 붙잡으면 저절로 선정까지 따라오더라는 겁니다. 진리에는요, 마음의 안정이 와요. 진리가 아닌 말에는 마음이 흡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찜찜해지는데, 진리 자명한 얘기를 하면 여러분들의 내면도 고요해져요.

 

왜냐? 왜 그러겠어요? 자명하다는 거는 의심할 수가 없는 거기 때문에 내면이 고요해져요. 더 할 말이 없고 수긍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계속 해보세요. 내면이 정말 고요해집니다. 그래서 제가 힘든 분들한텐 구구단을 권해요. 2x2=4 얼마나 자명합니까? 2x3=6 이러고 구구단을 구단까지 외우다보면 견성하실 겁니다. 차분하게 마음을 내서 해보세요. 몇 단까지 가다 견성하시는지 체크해보세요. 그래서 옛날에 "부처가 뭡니까" 할 때 선사들이 "3x3=9." "세 밤을 세 밤 자면 뭐가 된다는 건가?" 엉뚱한 생각을 하시죠? "9일만 기다리면 큰 돈벼락을 만나 내가?" 엉뚱한 욕심을 표현해드는데 3x3=9 이게 진리에요. 3x3=9. 3x3=9, 할 말 있으세요?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으세요?

 

조금 전까지 있던 번뇌도 잠잠해져요. 자명한 얘기를 들으면 고요해집니다. 이게 정혜쌍수에요. 고요해지면 자명한 생각이 나고요, 자명한 생각을 하면 고요해져야 되요. 이분은요, 정혜쌍수를 알고 계시 다니까요. 설명이 정말 잘된 거예요. 정혜쌍수에 대한 설명이. 이거 보면 재미있지 않습니까? 서양 철학자 글에서 정혜쌍수의 심법 노하우를 듣는다는 거는? 당신의 의견을 버려라. 그러면 내가 피해를 당했다는 불평도 없어질 것이다. 내가 피해를 당했다는 불평을 버려라. 그 피해도 사라질 것이다. 이런 말 너무 오해하지 마시고요. 피해당한 사람한테 가서 이런 얘기 하지 마십시오. 절대. 그래서 조언을 구할 때만 으흠. 그 마음을 한번 내려놔보지 그러니?”이 정도의 얘기에요. 대게 피해를 당하고 오셔서 쓰신 걸 같지 않으세요? 이분이 어딘가에서 험한 꼴 당하고 오셔가지고 불평하지 말자. 그러면 난 날 해칠 수 없다. 그 일이 날 해칠 수 없다. 이런 걸 지금 써 놓은 거예요.”

 

잘 읽으셔야 되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억울한 일 당했다고 했을 때도 이미 일어났다는 건 최소한 받아들여야 되지 않나요? 받아들이고 좀 내려놓는 그 힘이 있어야 마음이 냉정해지고 더 자명한 선의 판단을 하시겠죠. 선한 판단을 하시라고 지금 이런 걸 내려놓으시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뭔가 우리 억울한 일 당했어도 문제가 그거 아닌가요? 억울한 일을 곱씹고 있잖아요. 우리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분노가 불이 안 꺼지죠. . 계속 장작을 던져주니까. 그럼 일단 좀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정리를 좀 해야 선악이 선명하게 다시 떠오르겠죠. 그래서 이 구름에 태양이 가린 격이니까. 태양을 일단 다시 뜨게 해야 뭔 선악을 판단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미 분노로 불타고 있으니까 고걸 좀 내려놔라. 그러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들 한번 내려놔봐라. 그리고 냉정히 봐라. 이 정도로만 이해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당신은 이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그걸 사용하지 않는가? 만약 이성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면 더 이상 뭘 바랄 것인가? 이거를 벽에 써 놓고 한 번씩 보세요. 매일 봐도 좋은 말 아닙니까? “너 로고스, 이성이 있잖아. 왜 안 쓰는 거야?” 그러면 항변하겠죠. “나 이성대로 했어.” “그럼 뭘 바라는 거냐? 따로? 따로 또 뭘 바라는 거야? 로고스대로 했으면 됐지.” 이거에요. 이해되세요? 왜 이성을 안 쓰는가? 우리 식으로 얘기해 볼까요? 자명하십니까? 자명하면 됐지 뭘 바라십니까? 자명하십니까? ~ 자명하긴 한데, 자명한데 뭘 바라십니까? 달리 뭘 더 바라십니까? 신의 명령은 자명함속에 있어요.

 

나는 과거 어떻게 살았고, 업이 업장이 많고, 그래서 뭐~ 무슨 욕망도 세고, 뭔 욕망이 세서 삶이 힘들다고 정리해 내려놓으시면 절대 그 삶에서 못 벗어나시겠죠? 그런 건 지금 이 순간 내려놓으세요. 과거에 뭔 일이 있었 건 내려놓으시고, 지금 이 순간 자명하십니까? 자명해서 하면 이게 업력을 다 리셋 시켜요. 자명해서 하시면 신의 명령 그대로 하신거기 때문에 업하고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자명하십니까? 한번 물어보시고요, 자명한건 하고 자명하지 않은 건 안하는 연습만 하시면 과거에 어마어마한 업이 쌓여 있고, 내가 엄청난 잘못을 했더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 조금씩 이제 빚을 갚아가기 시작하는 거구요. 자명함을 따르지 않으시면요, 고통은 빚이 더 불기 쉽습니다. 움직일수록 더 커져요.

 

여러분이 움직일수록 사체 끌어다 쓰시는 거랑 비슷해요. 빌려다 쓸수록 더 빚이 커져요. 자명합니까? 하는 건요, 조금씩 조금씩 갚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명합니까? 이것만 봐야지 달리 뭐~ 한방에 뭐가 해결 되는 거 바라지 마시고요. 자명하십니까? 지금 하시는 생각이? 그러면 그걸 하세요. 뭔 일 때문에 나는 뭐가 그 욕망이 많아서 뭔 이렇게 죄가 많아서 이런 말은요, 입에서 올리지 마세요. 다 알잖아요. 또 애기할 필요가 없어요. 자명한지만 하세요. 지금 자명한지만 거기만 따라가면요, 아무리 캄캄한 굴속에 있어도 자명이라는 건 빛입니다. 그 실락 같은 빛이 보여도 그리 자꾸 가시다보면요, 나중에 태양을 만나서 굴을 빠져나오시고, “아이고 어두워서 어두워서하면요 빛이 안보여요, 굴에서 나올 방법이 없어요. 어둠이 더 짙어집니다.

 

그래서 어두운거는 누구나 다 어두워요. 과거에 뭔 짓을 했는지 우린 다 모릅니다. 다만, 지금 어떻게 사시는지 이것만 명확히 체크하시면 되요. 무의식 뭐~ 최면을 걸어서라도 무의식에 들어있는 전생의 기억, 뭔 기억을 다 해야 해결되는 거 아닙니까? 그럴 필요도 없어요. 전생의 또 전생은요, 어떤 일 하나가 일어나는 데도요, 우주적인 인과가 작용해요. 우주가 다 협조하지 않으면 어떤 작은 미세한 티끌하나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원인 다 캐고 있다간 아무 일도 못해요? 지금 자명한가? 그게 신의 명령이에요. 우주슈퍼컴퓨터가 다 굴려서 지금 해야 옳은 행위는 자명하다는 빛을 주고 옳지 않은 행위는 자명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뿐이에요. 이 느낌만 따라가시면 됩니다.

 

지금 요 거 하나 여러분이 볼 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게 존재하려면 우주가 존재해야 되요. 지구가 있어야 되죠. 우주가 빛이 받혀주고 위에서 비춰줘야죠. 이거 만든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요, 또 인류가 존재해야죠. 이걸 발명하기 위해서는 또 수많은 발명품이 이어져야 될 겁니다. 이거 하나가 그냥 오신 거 같으세요? 그럼 이거 원인을 달 알아야 얘를 어떻게 우리가 제대로 쓸 줄 알까요? 자명하게요, 이거 쓰다가 시커멓게 되면 버리면 그만이고. 자명하게 엄한데 쓰지 마시고, 이거 닦을 때만 쓰시고, 자명한 거만 생각하시는 게 이런 거예요. 아무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과거 과거를 자꾸 캐면요,

 

여러분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자꾸 들쑤시고 다니실 염려가 있어요. 여러분 수준에서 지금 알아야 할 건요, 지금 여러분이 아시는 것만으로 충분히 삶이 힘드실 텐데 왜? 더 캐고 다니시려고 합니까?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그 누구나 힘드신 게 있을 거예요. 자명한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시다보면 힘이 생기실거에요. 더 엄청난 일이 와도 난 자명하나 믿고 해결 해 나갈 수 있겠다. 이 힘을 갖추는 게 급하지 그 내가 과거를 다 몰라서 내 업을 다 못 지워서 나는 그 철학적인 삶, 진리에 맞는 삶, 못살겠다. 나는 번뇌가 너무 커서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이런 생각하시지 마라는 겁니다. 동굴에서 빠져나오시고 싶으면 무조건 빛만 찾으세요. .

 

조금이라도 더 환한 데로 가셔야죠. 조금이라도 더 자명한데로 자꾸 옮겨다니시다보면요, 언젠가 여러분 그 밖에 나와 계실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렇게 이해하시면. 제가 예전에 업력과 도력 이렇게 쓴 글도 있는데 핵심은 이거에요. 자명함만 따라시면 그건 도력이에요. 이성의 힘. 로고스의 힘, 로고스의 은총으로 여러분 마음에 뭐가 자명한지. 뭐가 자명하지 않은지 알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이 힘을 못 쓰시면요, 도력인데 이걸 못쓰시면요 업력, 내 욕망대로 내 집착대로 내가 두려워한 거 피해 다니고, 내가 욕망하는 것 쫓아다니다가 삶이 점점 더 그 빚이 늘어나면서 삶이 더 힘들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 빛을 따라가시면 그런데서 자유로워지실 거라는 거, . 이것만 명확히 하시고 오늘 강의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