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0)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67회] 현대사회에 알아야 할 것이 많아 스트레스입니다

Buddhastudy 2020. 1. 20. 20:45


현대사회를 살면서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알려고 하니까 스트레스 받고

이걸 안 하자니 좀 너무 뒤처지는 것 같고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그 욕심이 쉽게 안 버려져서...//

 

 

알아야 할 건 욕심이 아니에요.

글쎄.. 그게 왜 욕심이에요.

지식을 그냥 자기 알고 싶은 거 계속 연구해서 알면 돼요.

 

그래, 아는 거 ..

나도 그렇게 알아야 되고,

나도 지금도 과학도 공부하고, 자연지리도 공부하고

전 세계로 다니면서 공부하고,

 

아까 여기 잠시 부지사님 뵙고도 또 전라남도의 인구가 얼마인지 그 얘기 나오다 보니

우리나라 도에 규모가 어느 게 제일 크냐? 경상남도가 340만이다,

그다음에 두 번째 큰 게 경상북도가 250만이다,

세 번째는 충청남도가 214만이다,

몰라서 물어서 알고... 아시겠어요?

 

그러면 그게 모르는 게 흉이 아니라,

대화를 하다가 아는 기회가 생긴다. 이런 얘기에요.

전라남도는 지금 190만이고, 전라북도는 185만이고,

전주가 있어서 전라북도가 더 큰가 했더니 전라남도가 인구가 10만 더 많구나.

이거 하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아.

 

안 받아, 스트레스를 왜 받는지를 얘기해 봐.

공부하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아.

 

핵심이

공부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공부는 하기 싫고, 합격은 하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요.

좀 본질을 꿰뚫어 봐야지...

 

한마디로 얘기하면

노력은 안 하고 공짜로 많이 알고 싶다. 이 얘기 아니오.

 

복은 짓기 싫고, 복은 받고 싶고

죄는 지어놓고 벌은 받기 싫고

공부는 하기 싫고 좋은 대학엔 가고 싶고

 

이게 노력은 하기 싫고 지식은 많이 갖고 싶고

그런 심리 때문에 생기는 거요.

 

공부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운전은 하기 싫고 면허증은 따고 싶고

그런데 운전 조금 연습해서 면허증은 받고 싶고

하느님한테 빌어서 부처님한테 빌어서 면허증 주는 게, 나한테 좋으나? 안 좋으나?

죽을 짓이야. 위험한 거야.

 

그러니까 면허증 합격을 하느님이 와서

, 너 면허증 합격시켜줄까?
아닙니다. 그건 하느님이 관여할 일이 아니고 제가 연습을 더 해서 할 일입니다.“

다섯 번 떨어지면 여섯 번 하고, 이렇게 해야 할 일이다 하는데...

그게 왜 괴로워.

 

돈은 빌리고 갚기는 싫고

그러니까 괴롭지.

그러니까 빌 일이 있지.

무슨 빌 일이 있어.

 

공부해서 시험을 치는 건 내가 할 일이오? 하느님이 할 일이오?

그럼 내 마누라, 내 남편을 누구로 정할 건지는 내가 할 일이오? 하느님이 할 일이오?

그런데 그런 거를 다 하느님한테 자꾸 부탁해?

 

내가 할 일은 하느님한테 부탁하고

그럼 내가 언제 죽을지, 우리 엄마가 언제 죽을지

이런 죽고 살 일은 하느님이 할 일이오? 내가 할 일이오?

그런데 왜 그건 또 자기가 한다고 그래?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이런 게 엉터리라는 거요.

이런 게 아까 내가 얘기하는 데로 거꾸로 사는 거다.

뒤비쪼는 거다 이 말이오.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하고,

하느님이 할 일은 따로 있다니까.

만약에 기독교 신앙이라면...

 

지식을 알고 싶으면 내가 해야 될 일이지, 지식을 아는 데 왜 힘이 드느냐 이 말이야.

기술을 익히면 내가 익히면 되지 왜 힘이 드냐 이거야.

 

과정은 싫고 결과만 얻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힘이 드는 거다.

그러니까 그 욕심을 버려야 된다. 이 말이오.

그건 지식 자체에 힘이 드는 건 아니에요.

 

농사는 짓기 싫고 수확은 하고 싶다, 이 얘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하면...

 

봄에 밭 갈기는 싫고

꽃놀이 가야지 언제 밭 갈고 씨 뿌리노...

여름에 더운데 언제 김 매노 놀아야지.

그런데 가을 들녘에 가서 낫 가지고 나도 남처럼 추수하겠다

그런데 내게 없으니까 불평하는 거 하고 똑같단 말이오.

 

그러니까 봄에 밭 갈고 씨 뿌릴 때는 밭 갈고 씨 뿌려야 되고

여름에 김 맬 때는 더워도 김매야 되고

그래야 가을 들녘에서 수확할 게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을 힘들게 생각하면 안 돼.

과정을 힘들게 한다는 건 결과만 하고 싶다.

이거 부처님 경전에는 이런 어리석음을 어떻게 비유했느냐.

 

어떤 장자가 어디 가서 3층 누각을 보고

, 멋있다, 나도 하나 지어줘라이랬어.

한참 있다 갔더니 집을 짓고 있는데 1층하고 2층을 짓고 있는 거요.

그래서 야단을 쳤어.

내가 3층을 지어서 달랬지 언제 1, 2층 지어 달라고 했냐?

1, 2층 안 짓고 어떻게 3층을 지어.

이런 얘기하고 똑같다 이거야.

이거 어리석음의 비유에요.

 

네 ㅎㅎㅎ

 

 

--

어떤 청년이 저한테 이런 질문 했어요.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면 참~~~~ 온갖 경우에 지혜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저도 스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었어. 제 대답이

고생을 진창하면 된다. 한번 해 볼래? “

아니오

 

고생을 해야 지혜가 생기는 거요.

고생을 해야, 어려움에 처해야 지혜가 생기는 거요.

그래서 성경에 기독교에서는 뭐다?

고통 속에 하나님이 음성이 들린다이런 말이 있어요.

 

실패를 해야 성공이 가능한 거요.

실패를 해야 연구를 할 거 아니오.

되면 연구할 게 없잖아. 안 되니

, 왜 안 되지? 이래 볼까?“ 또 안 돼.

, 이것도 안 되네? 이래 볼까? 이래 볼까?“

이러다 보니 되는 쪽으로 가잖아요.

 

자전거 타려면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타지는 결과에 가는 거요.

안 넘어지고 타려면 그건 욕심이에요.

 

아이 둘 보고 자전거 타라고 그랬어.

1시간 있다가 내가 물었어.

너 몇 번 넘어졌니?“

저는 한 번도 안 넘어졌습니다

너는?“

”8번 넘어졌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누가 더 빨리 탈까?

여러 번 넘어진 애는 연습을 많이 했다는 얘기고

한 번도 안 넘어졌다는 애는 자전거 안 탔다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실패를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거요.

뭐가 안 돼야 연구를 할 거 아니에요.

 

그럼 스님이 이런 거 저런 거에 대해서 조금 지혜가 있다 그러면

인생 내내 뭐 되는 게 없었다. 이 얘기에요.

아시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획된 게 되는 게 별로 없었어요.

, 전투에는 계속 패했다 이 말이오.‘

그런데 끊임없이 연구해서 가기 때문에 결과로 보면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투는 매번 패 해.

 

주식투자를 하는데 주식투자해서 패가망신했다 그러면

이 사람 주식투자 처음 할 때 돈을 벌었을까? 땄을까? 벌었어.

처음에 딱 해서 벌었어. 두 번째 딱 해서 벌었어.

그러면 이 사람 패가망신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유는?

자꾸 하면 잃게 되는데, 잃을 때 멈추지를 못해요. ?

옛날에 벌었던 그 미련 때문에.

 

그런데 처음에 투자해서 실패했어.

두 번째 투자해서 실패했어.

이 사람은 주식 투자해서 돈 잃을 위험은 별로 없습니다.

이 사람은 그만두든지, 이후에도 돈을 따도 조심하면서 할까 막할까?

조심하면서 합니다.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실패가 나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욕심으로

운전할 줄도 모르면서 운전면허증 따고 싶은 그런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이 자꾸 피곤한 거요.

 

인생이 피곤할 일이 뭐가 있어요?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사는데...

 

그런데 뭔가 이치에 안 맞게 인생을 살기 때문에

인생이 지금 피곤한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