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곳엔 아무것도 없네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것도 없네.
그곳은 텅 비었고
인적 없는 평지가 되었고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출퇴근하는 도심 속 대로변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 2711개
‘살해당한 유럽의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비’
도심 한복판에 만든 빽빽한 검은 공간
약700만 명 유대인 희생자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들
자신들이 학살의 가해자였을 기억하는 사람들
“그것은 일어난 일이다.
그러므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 기념비 지하 박물관에 적힌 작가 ‘프리모 레비’의 말
뉴욕 맨해튼 한복판
“더 많은 사람이 이곳을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희생자를 기리고, 참혹한 비극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 9.11 테러로 아들을 잃은 유족
2001년 9월 11일
테러에 의해 산산조각 났던 세계 무역센터
그 자리
2983명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 둔 그 자리
(1993년 지하주차장 폭탄 테러, 2001년 9.11테러 희생자 수)
그리고
“우리는 기억한다 (We remember)”
9.11 추모박물관 내
그 날의 기억을 인터뷰 한 264개국 400여 명의 이야기
“시간이 지나도 결코 그대들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리”
-
로마 시인 버질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기억
도심 한 가운데 세워 둔 기억
그리고
서울의 ‘기억’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있었던 그 자리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던 그 자리
2009년 용산 참사가 있었던 그 자리
지금 그곳엔 아무것도 없네.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것도 없네.
그곳은 텅 비었고
인적 없는 평지가 되었고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
- 용산참사 희생자 추보시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심보선 작 중에서>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한 여성의 죽음 앞에 놓이는 작은 종이 한 장
‘다시 태어났을 땐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게
언니가 최선을 다할게. 나와 만 하루차이로
그곳에 있었던 널 잊지 않을게.’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어린 노동자의 죽음 앞에 놓이는 작은 종이 한 장
‘이 곳에서 열심히 일했던 19살 청년이 죽었습니다.
이 청년의 죽음을 잊지 말아 주세요.’
도심 한가운데서 일어난
참혹한 사건
그 자리
그 순간
그 사람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해
‘나지막한 돌 하나’를 남기는
품격있는 도시
도시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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