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니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먹는 방송이라고 하거든요 그 방송을 계속 보십니다
세상이 발전해가면서 핸드폰이라든가 그런 기계화가 점점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이 옛날보다는 점점 단순화되는 거 같거든요
사회가 사람들을 좀 단순화시켜서 우민화를 시키는 게 아닌지
그런 약간 음모론적인 생각이 들어서//
자기 몇 살이오?
결혼 했어요?
자기 여자나 신경 써.
남의 여자 신경 쓰지 말고, 아버지가 알아서 할 거니까.
어머니하고 같이 있으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야.
어머니를 아버님께 가도록 해주세요.
어머니하고 같이 있으면 자기 결혼도 못 해.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야.
자기가 어머니를 사랑하면 자기 안 돼.
아버지도 불행해지고, 자기도 불행해져.
그러니까 자기 남자 친구한테 돌려보내 주라고.
본인 자리로 돌아가야 돼.
어머니가 병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와 있는 거 아니라면
당분간 와 있는 게 아니라면
자기하고 장기적으로 사는 거는
그건 올바른 인간관계가 아니야.
해탈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어머니는 자기가 20살 밑에까지 어머니가 자기를 돌봐주는 거는
보호자와 피보호자로서 일정한 서로의 역할이 있다, 이 말이야.
20살이 넘었으면 더 이상 어머니의 보호를 받으면 안 된다는 거야.
어머니를 자기가 보호하는 것도 필요가 없다고,
그건 남편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 쪽으로 돌려보내 드려야 해.
아니지. 어머니 보고 아버지 계신 대로 가라고 해야지.
가서 두 분이 뜻이 맞든 안 맞든, 지지든 볶든...
원래 서로 약속한 사람끼리 살아야지.
그게 인간의 도리야.
인생의 도리고.
자기하고 사는 건 20살까지는 도리 속에 들어가는데
20살이 넘으면 자기하고 사는 건 도리가 아니야.
그건 도리를 벗어난 행위야.
자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그걸 어머니한테 해달라면 안 돼.
20살이 넘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자기의 삶에 있어서 어떤 동반자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껴야 또 결혼도 성립하는 거야.
어머니가 그걸 다 해주면
예를 들면 두 남녀가 만나서 부부관계라든지 이런 것만 안하다 뿐이지
어머니가 그 역할을 다 해주고 있는 거야.
그러면 자기는 영원히 보호받는 어린아이기 때문에 결혼하기 어려워.
왜냐하면 누구도 어머니같이 해주는 여자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인생의 불행을 자초하는 거야.
빨리 정리가 되어야 해.
자기하고 사는데 어머니가 뭐, 그런 TV나 보고 살지 뭐 하겠어?
그건 자기가 관계를 잘못 맺고 있는 거야.
어머니가 아무리 옆에 와서 도와주겠다고 그래도
자기가 거절 해야 하는 관계야.
사람이라는 건
자기가 받아야 될 게 있고
받지 말아야 될 게 있다는 거야.
여러분들이 스님에게 뭘 드리겠다 할 때도
그게 마땅히 내가 받을 수 있는게 아니면 거절을 해야 돼.
여기 있느 어떤 여성이
“아, 스님 건강도 안 좋고 제가 스님 옆에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하겠습니다.
헌신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스님은 거절을 해야 된다.
그 마음이 나쁜 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살려면 그건 거절을 해야 되는 거야.
그건 자기가 어머니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거야.
어머니가 어떻게 살든 자기는 그건 걱정 할...
자기 본분이 아니다.
만약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게 되도
일체 어떻게 살든 관여를 안 해야 돼.
말귀를 잘 못 알아듣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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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효과 부작용이 생겼다, 생겨나고 있다
그건 뭐 진실일 수가 있어요. 사실일 수도 있고.
그러나 그것을 누군가 의도해서 그렇게 되도록 하려고 했다.
그거는 확정 지을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하는 아무런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들어난다. 그러면 되요.
자기가 한번 봐라.
우리가 옛날에 문자가 나오기 전에는 다 뭐로 했습니까? 무전으로 했죠.
그래서 팔만대장경도 다 옛날에는 뭐로 전해왔다?
구전으로 잔해 내려온 거요.
문자가 된 것은 500년 뒤에 그걸 종이에다가 쓰기 시작했다, 이거야.
그러면 기록하는 것이 나오면서
인간의 기억력이 좋아졌을까? 나빠졌을까?
그래, 인간의 기억력을 나쁘게 하려고 누가 음모론적으로 문자를 발견하고 종이를 발견했을까?
그러니까 이 속에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이 100이라면
이 바깥에다가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500이 됐다 이거야.
인간 전체로 보면 더 좋아진 거요.
생물학적으로는 유기체 안에밖에 저장을 못했는데, 이건 바깥에다가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또 지금 컴퓨터가 나오면서 더 많은 부분을 우리는 다른데 저장하고 있다.
마치 기억을 한 것을 우리가 꺼내쓰잖아.
여기 저장되어 있는 것 중에
“그거 뭐였지?” 하고 기억을 해서 여러분들이 꺼내 쓰잖아.
여기 기억해 있는 것을 꺼내쓰지 않고 검색해서 꺼내 쓰잖아.
밖에 있는 것을 컴퓨터에 누르며 검색해서 나오잖아.
그렇게 되니까 이 안에서 기억력이 감퇴할 수밖에 없지.
그걸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없으니까.
그러면 우리 학습이 전부 바뀌지.
지금까지는 이걸 다 기억해서 여기서 꺼내쓰는데, 여기 얼마나 많이 저장되어 있나,
이게 사람의 능력이라면
그걸 10년 20년 배웠단 말이오.
그런데 그걸 배울 수가 없어. 거기 저장되어있는 걸 꺼내쓸 줄 아는 기억하면 되는 거요.
그래서 터치만 하면 돼. 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옛날에는 숫자를 다 암기를 하고, 주산을 하고 암산을 했는데
이제는 여기다가 누르기만 하면 된단 말이오.
누르면 딱 나온단 말이오. 그러니 당연히 암산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
네이게이션 나오고부터 길 잘 알아요? 몰라요? 모르지.
전에는 다 지도보고 어디로 가서 어디로 가는지 이거 다 기억했잖아.
요즘 네비게이션 틀어놓고 그거따라 로봇처럼 움직이잖아.
멍청해졌지 뭐.
내비게이션에 누가 조작을 해서 방향을 바꿔놓으면 이 사람이 알까? 모를까? 몰라.
그만한 위험이 있지.
앞으로 전쟁할 때, 전파를 이용해서 네비게이션에 혼란을 일으켜 놓으면
우리는 가는 줄 알고 가는 거지.
그러니까 그거는 무슨 음모가 아니고 당연히 그렇게 있는 거요.
사람의 눈도 마찬가지오.
사람의 시각이 발달하니까 청각이나 후각이 우리가 개보다 나아요? 못해요?
못하잖아.
그럼 우리 청각과 후각이 개보다 못하게 만들어졌냐?
아니에요.
우리가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오감중에 시각이 거의 90%를 차지해버리니까
후각청각이 별로 필요가 없는 거요.
꼭 후각 청각이 아닌 것만 빼고는 고것만 남고 나머진 다 없어졌어.
그러니까 원시인일수록 어때요?
현대인보다 우리 인디언들 보면 알잖아요.
귀를 땅에 대면 말발굽 소리를 듣고 지금 몇 명이 오는지 알잖아.
개는 발자국 소리 들어보면 주인 발자국인지 누구 발자국인지 다 안단 말이오.
그럼 개가 그게 뛰어냤냐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런 재능이 원래 있었는데, 더 나은데
시각 때문에 그런 기능이 감퇴한다.
왜냐하면 안 쓰니까, 오래 안 쓰니까 그게 점점 감퇴하는 그런 현상이...
그래서 아무 문제는 없어.
그러나 그런 부작용을 굳이 말한다면 부작용이 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
그거야 자기 가치관이지 뭐.
나는 이렇게 해서 나중에 네비게이션 없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멍청한 인간이 안되겠다.
그래서 나는 네비게이션이 아주 필요할 때 아니면 일상적으론 안 쓰겠다.
이렇게 자기가 정하는 거지.
그걸 어떻게 해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어.
그건 자기가 정하는 거지.
활을 쏘다가 총이 나오면 활이 필요하나? 안 하나?
안하겠지.
활 쏘는 솜씨가 자꾸 감퇴하지.
그러니까 나는 활쏘는 솜씨가 꼭 필요하다.
영화에도 나오잖아. 최후병기 활, 이런 거 있잖아.
활이 꼭 필요한데 활 쏘는 능력은 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활을 잘 쏘는 민족이잖아.
우리 민족은 이렇게 민족성을 버리면 되나? 이래서
자기는 총도 쏘지만 늘 틈나는대로 뭐다? 활을 쏘는 능력을 보존하겠다 그러면 연습하면 돼.
그렇지만 버리고 총만 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비행기 타고 가다 조난을 당했다. 그러면 총 없는데 총을 지금 만들 수 있나? 없나?
없지.
그러면 화를 늘 쏜 사람은 아마존에 불시착햇다 하더라도 나무를 꺾거나 뭘 해서 활을 만들 수 있지.
그러니까 문명이 갑자기 전기가 없어지거나 쇠퇴하게 되면
이런 원시적인 사람일수록 생존력이 높은 거야.
시골아이들은 산에 가서 길을 잃었다하면 5 10일 버티는 것은 문제없는데
도시아이들은 3일을 못 버티지.
왜냐하면 개구리도 잡아먹고 뭐고 하도 하는 이런 능력이 있지만
여긴 그런 능력이 없잖아.
여러분하고 저하고 여기서 사는데는 똑같고, 여러분이 컴퓨터도 잘하고 뭐도 잘하니 나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나.
그러나 만약에 아주 산골 시골에 가서 이런 컴퓨터 이런 거 못쓰는데 같이 농사짓고 살면 누가 나을까?
여러분들은 아는 게 없어.
그걸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어.
그건 인생의 선택이야.
현대문명은 그만큼 위험하지.
만약에 기후변화가 오든지, 현대문명은 전기만 딱 끊어져도 빛이 없는 불빛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게 올스톱 되지.
은행도 안 되지.
뭐든 기계가 다 작동이 멈추지.
그만큼 편리한 반면에 그만큼 위험 부담이 있는 거요.
그건 선택하는 거지,
아까도 얘기했지만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건 누구의 음모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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