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대학생입니다.
입학 이후 학교에 가지 않아 학사 경고를 받은 것을 알게 되어 야단쳤습니다.
중2때 부터 학교생활이 원만하지 않았고, 가출을 두 번 하였고,
보호관찰도 받고 심리 상담도 받았으나
SNS로만 친구들을 만나고 모든 생활을 거짓으로 살고 있습니다.
현재 가출한 지 3주가 되어 갑니다.
화가 났다가 울기도 하고 걱정과 불안으로 힘이 듭니다.
뭐가 그리 답답한 건지도 모르겠고
다 내려놓고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건지
집으로 돌아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대학에 들어갔으면 성인 아니에요?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이제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미성년자일 때는
최종적인 결정을 보호자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호자의 대부분이 부모이고,
부모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보호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성인이 되면 자유인입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간섭할 수가 없어요.
사회생활은 모든 것이 다 계약 관계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계약 관계입니다.
‘월급을 얼마만큼 줄 테니 너는 이런 업무를 해라.
대신에 이런 사항은 지시 받아야 한다’ 이렇게 전부 계약 관계를 맺은 다음
마음에 안 들면 계약을 해지합니다.
계약을 위반하면 회사에서도 나가라고 할 수 있고
나도 그만둘 수가 있어요.
대학에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 가든 안 가든 성인은 자유예요.
내가 학교에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돼요.
아이는 이제 성인이기 때문에
대학을 안 가겠다고 하면 학비를 안 대주면 되지
아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야단을 치게 되는 것은
아직 질문자가 성인인 아이를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자녀가 성인이 되면
계약 관계로 봐야 합니다.
‘내가 학비를 댈 테니 너는 학교에 다닐래?’ 하고 물어보고
동의하면 학비를 대 주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고,
‘나는 형편이 안 되니 학교를 다니든 말든 너 알아서 해라’ 하고
학비를 못 대주면
아이는 돈이 없어 안 다니든지
자기가 벌어서 다니든지 하면 됩니다.
엄마가 학비를 대 주겠다고 해도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싫다면 안 다녀도 되는 거예요.
자식이 집을 나갔으니 걱정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심정을 갖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질문자가 자식에게 집착하고 있으면 괴롭기만 합니다.
자식이 집을 나가도 괴롭고,
다시 집에 들어와도 괴로운 거예요.
집을 나가면 걱정이 되어서 괴롭고,
집에 들어오면 공부 안 하고 맨날 SNS만 보는 것이 괴로워요.
아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미성년자이니까
아무리 속을 썩여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 성인이 됐으니 ‘죽든지 살든지 너 알아서 해라’ 하고
단호한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한테 어떤 요구가 있으면
성인과의 계약 관계이니 엄마의 요구 조건을 이야기해야 해요.
집을 나가서 살겠다고 하면
‘너 알아서 해라’ 하고 말하면 되고
방을 구해 달라고 하면
‘내가 돈을 빌려 줄 테니 너는 어떤 식으로 돈을 갚을래?’ 하고 물어보면 됩니다.
그렇게 계약해서 지내면 돼요.
‘나는 돈을 못 주겠다.
집에 방이 하나 있는데 이 방을 무료로 쓰면 되지
뭣 때문에 밖에 가서 돈을 쓰냐?
네가 벌어서 네가 쓰면 다행이고, 없으면 그만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아이가 그렇게 집을 나가면 이성을 만날 수가 있죠.
성인이면 누구나 다 이성을 만날 자유가 있습니다.
부모라도 간섭할 수가 없어요.
스무 살이 넘은 딸이 집을 나와서
60대 남자와 결혼을 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어요.
법적으로도 부모의 승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마음에 안 들면 결혼 축하를 안 해 준다든지,
결혼식에 안 간다든지,
결혼 자금을 안 준다든지,
그런 건 부모가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간섭은 할 수 없어요.
옛날에는 성인이 되면 성인식을 했습니다.
성인식을 하면 다음 날부터 어른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성인을 대할 때는 모든 것을 명령식으로 하면 안 되고
계약 관계로 보고 합의점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부모도 자식 때문에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질 필요도 없고
자식도 부모 때문에 구속 받을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계약 관계를 맺게 되면 구속되는 부분이 생깁니다.
회사의 직원이 되면 회사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기 때문에
구속이 되는 것과 같아요.
아이가 대학을 가겠다고 하면 학비를 대주는 대신에
공부는 어느 정도 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가 있습니다.
공부를 안 하면 학비를 끊겠다고 하면 되지
학교를 안 갔다고 아이를 야단치는 것은
아직 자식을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집에서 아이가 누워 자든지, 밥을 안 먹든지.
방 안에서 SNS를 하든지, 질문자가 야단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부모 자식 관계를 생각해서
‘엄마가 보기에는 그런 행동이 시간 낭비 같은데 어때?’ 하고 조언을 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말도 잔소리라고 여겨서 듣기 싫어하면 안 해야 합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을 나가면 ‘알아서 잘 살겠지’ 하면 되고,
집에 들어오면 옛날 인연이 있으니까 받아주면 돼요.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이 싫으면 조건을 내걸면 됩니다.
‘집에 들어오려면 이런 약속은 지켜라.
안 그러면 들어오지 마라’ 이렇게 이야기하면 돼요.
질문자가 그런 조건을 안 붙이고 싶으면
모든 걸 무료로 제공해도 됩니다.
그러나 무료로 제공했다고 해서 간섭할 권리는 없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을 가지면
아이가 집에 들어와도 아무 문제가 없고,
집을 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좀 직설적으로 말해서
아이가 내일 죽었다고 연락이 와도
질문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장례식을 치러 주는 일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을 딱 가져야
자식이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안 됩니다.
‘부모인데 어떻게 자식을 그렇게 둡니까?’ 이렇게 말하려면
저한테 묻지 말고
그냥 본인이 알아서 하세요.
그것은 자연의 원리도 아니고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집착을 못 놓는다고 하면 방법이 없어요.
성인을 어린아이로 취급하기 때문에
집에 들어와도 고뇌이고,
집을 나가도 고뇌가 되는 겁니다.
관점을 딱 바꾸면 집에 들어와도 아무 문제가 없고
집을 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성인은 본인이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
내버려 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새가 다 크면 둥지를 박차고 나가야 하는 겁니다.
아이가 사고를 치든 치지 않든 그것은 질문자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는
사고를 치면 그 책임이 부모에게 있지만,
성년이 되었으면 부모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어요.
아이가 스스로 변상을 하든지
변상을 하지 못하면 감옥에 가든지 하면 될 일입니다.
질문자는 아이가 감옥에 가는 게 안타까워서
변상을 해주고 싶어 하는데
그래도 되지만
그것은 성인이 된 아이의 인생에 간섭하는 것일 뿐입니다.
아이에게 답답한 것을 못 견디는 성질이 있었다면
그것은 정신 질환입니다.
아이에게 정신 질환이 있다면 그에 맞게 관계를 맺어야 해요.
아이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속이 답답해서 못 견디기 때문에
부모가 잔소리를 하면 뛰쳐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아이가 병원 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그것은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요즘 아이들은 약간의 정신 질환이 있으면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합니다.
부모마저 아이를 존중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출하거나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이해해야 합니다.
학교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을 수 있어요.
그러나 부모라면 그것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건강하면 됐다. 공부가 뭐 그리 중요하냐.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부모가 탁 트여 있어야 합니다.
질문자와 같은 성격이라면
앞으로 다른 자녀들과도 갈등이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자녀가 성인이 되었으면 자유롭게 살도록 하고
더 이상 관여하지 말아야 해요.
자녀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는 대신 너는 무엇을 하겠니?' 하고
자녀의 의사를 물어봐야 합니다.
서로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해요.
누구나 한 번은 실수할 수 있어요.
그러나 두 번은 실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사람과는 관계를 잘못 맺을 수 있지만, 두 사람 내지 세 사람과 관계를 잘못 맺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제 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 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정신을 차려서
이번에 한 실수를 다음에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이 없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어떤 일이 생기든 거기에 구애 받지 않고
내 마음의 자유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해탈이에요.
...
그런 아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그런 아이를 둔 부모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가 집을 나갔는데 부모가 어떻게 발을 뻗고 사느냐’ 하고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고뇌하다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집을 나갔더라도 미성년자가 아니라면 부모의 책임이 아니에요.
미성년자라면 경찰에 신고했을 때 찾아주지만
성인이면 신고해도 찾아주지 않습니다.
사고가 일어났다든지 아니면 납치가 됐다든지 하는 특수한 경우에만 찾아줄 뿐,
본인이 선택해서 집을 나갔는데
부모가 애걸복걸한다고 해서 경찰이 찾아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인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어려움을 겪을까 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아이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매정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방법이 없는 것을 자꾸 궁리하면
점쟁이에게 점을 치러 가거나, 굿을 하거나
절에 가서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어요.
돈이 들 일만 자꾸 생길 뿐이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살든 죽든 그것을 선택할 권리가
아이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자녀가 스무 살이 넘으면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라' 하고
남은 인생을 내 배우자와 만끽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여성들이
주로 남편을 버리고 애들에게만 관심을 갖고 살아요.
그것은 인생을 잘못 선택하는 겁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남자와 여자가 있어요.
내 남편을 챙겨야지
남의 아내가 되거나 남의 남편이 될 사람을 챙기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그렇게 집착을 해서 아이를 키우면
사회에 장애를 일으키는 사람을 만들기가 쉽습니다.
아이들을 조금 자유롭게 키우면 좋겠습니다.
애완용 동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사람으로 키운다는 관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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