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을 공부하면서 우주와 양자역학에 대한 내용을 접했습니다.
그 내용이 신기하면서도 우주와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과
우리가 하고 있는 마음공부가 어떻게 관련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스님의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이 세상은 크게 물질세계, 생명세계, 정신세계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가 물질세계입니다.
공기나 흙 등이 모두 물질적 존재라고 할 수 있죠.
물질적 존재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정도의 지식으로도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는 원자이고
원자들이 결합해서 분자가 되고
분자들이 다시 결합을 해서 물질이 됩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모든 물질은
신이 창조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19세기에 돌턴의 원자설이 나올 무렵만 해도
사람들이 물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물질은
근본 알갱이인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돌턴의 원자설이 등장했고,
그 이후로 입자물리학이 발달하면서 처음엔 분해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원자도
더 작은 소립자의 결합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소립자들은 또다시 쿼크(quark)의 결합이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물질의 가장 근본이 되는 입자를 밝혀내고
그러한 미시 세계의 입자들이 어떤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지를 밝혀내는 학문이
양자역학입니다.
물질세계에는 이렇게 작은 입자를 다루는 미시 세계도 있고
사람에게 익숙한 현실 세계도 있고
넓은 우주를 다루는 거시 세계도 있습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거시 세계를 관장하는 물리 법칙은
소위 만유인력이라고 부르는 중력입니다.
그리고 미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원자핵 내부의 핵력입니다.
이렇게 같은 물질계라고 하더라도
미시 세계인지, 거시 세계인지에 따라 주된 힘과 성질이 다릅니다.
두 번째는 생명세계입니다.
물질적 현상에는 크게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관장하는 법칙들이
물리 법칙과 화학 법칙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생명계의 기본 작용은 신진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 현상의 원리는 물질세계에 기반하긴 하지만
물질세계의 원리와는 다른 작용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생명에 기반해서 나타나는 정신세계입니다.
정신세계는 생명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또 생명세계와는 다른 작용을 합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존재를 물질, 생명, 정신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주로 정신 작용에 대해 연구를 하셨습니다.
물론 부처님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과학자나 의사처럼 몸을 해부해서 연구를 하신 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 작용은 생명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몸에 대해서도 탐구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붓다가 탐구 끝에 발견해 낸 것이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입니다.
그런데 무아와 무상과 같은 가르침은
부처님 당시에는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에겐 영혼이 있다거나,
그 영혼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는 물질세계에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믿음이었습니다.
생명세계에서는 창조설을 믿었고
정신세계에서는 영혼불멸설 등을 믿었기 때문에,
그 당시 부처님이 설한 연기, 무상, 무아와 같은 깨달음은
가히 혁명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양자역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보다
더 파격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부분은
최근에 물질세계와 생명세계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지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 무아, 무상이
비단 정신세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물질세계와 생명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물질세계, 생명세계, 정신세계의 작용 원리가 동일하다는 거죠.
달리 말하면,
아주 미시적인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이나
거시세계를 다루는 우주론이나
생명현상을 다루는 분야나
그 기본 원리가 같다는 뜻입니다.
이건 기존의 종교와는 매우 다른 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의 믿음이나 가르침들은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자연법칙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령,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믿음은
빅뱅 이론이 나오면서 그 입지가 매우 좁아졌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믿음도
과학이 발달하면서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반면, 붓다의 가르침은
과학이 발달하고 다양한 분야가 연구되면 될수록
더 맞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런 뜻으로 불교의 과학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과학성이라는 말이
붓다가 물리학자처럼 물질을 연구하고
의사나 생물학자처럼 신체를 연구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질세계만 놓고 봐도
거시세계에 적용되는 만유인력
현실세계의 전자기력
미시세계에 적용되는 핵력
이렇게 차원에 따라 주된 법칙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통일장 이론과 같은 아이디어도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런 것처럼 물질세계, 생명세계, 정신세계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은 다르지만
그 안에 또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서양의 학문은
물질과 생명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졌는데도
아직 정신세계에 대해서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보다 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위대한 과학자라는 사람도 창조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위대한 생물학자라는 사람도 영혼설을 믿기도 합니다.
그만큼 정신세계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에 형성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불교를 공부하는 여러분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장점은
여러분이 선택한 불교는 적어도 허황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고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붓다의 가르침 중에는 모순이라고 밝혀질 내용들이 거의 없어요.
불교가 아닌 윤회설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죽어서 개가 되고 소가 되어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데
이런 믿음은 앞으로 생명에 대한 연구가 발달하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위험이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는 것도
결국 과학이 발달하면서 밝혀졌잖아요.
그런 것처럼 사람의 정신력과 개의 정신력이 정말로 호환이 되는지는
앞으로 과학 분야에서 점점 밝혀지게 되겠죠.
요즘 나오는 전자칩들은 과거에 쓰였던 기계와는 호환이 안 됩니다.
서로 작동하는 원리나 체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처럼 언젠가는
사람의 의식과 동물의 의식이 호환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뤄질 겁니다.
그러니 불교가 아닌 것을 자꾸 불교라고 이야기하면
나중에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종교적인 믿음을 부정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는 것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붓다의 가르침은 아니라는 구분을 분명하게 할 줄 알아야 해요.
왜냐하면 자칫 불교가 아닌 것을 불교인 줄 착각하고 있으면
과학이 발달하면서 거짓인 것으로 드러나면
‘사실이 아닌 걸 잘못 믿었네’ 하는 혼란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장점은
불교 공부로 인해
과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불교는 정신세계에 대해 많은 연구가 되어있습니다.
물질, 생물, 정신의 근본 원리에는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불교를 공부하면
과학이나 생물학의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과학은 이미 밝혀진 내용들입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을 연구해 나가려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걸 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는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세계적인 기업들에서는
모범생이 아니라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한 사람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보던 것과는
다른 시선에서 뭔가를 볼 수 있어야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말하더라도,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해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죠.
모두가 양반과 상놈이 따로 있고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고 말하는 속에서
남들과는 다르게 볼 수 있어야
신분의 높고 낮음이 따로 없고,
남녀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지면
그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수가 있겠죠.
뭔가 새로운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보다는
조금 다르게 보는 사람이 유리합니다.
배운 그대로 사고가 굳은 사람은 모방하는 데는 필요하지만
새로운 걸 창조하는 데는 크게 효용이 없습니다.
애플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도 그렇고
전기 자동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론 머스크를 봐도
일반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다들 특이한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들 예의라는 범주를 따르고
주변 사람들과 비슷하게 말과 행동을 하는데
이 사람들은 말과 행동도 특이하고 엉뚱한 생각들을 하죠.
불교 공부를 하게 되면
고정관념을 버리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또 사물을 옳고 그름이나 맞고 틀림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 공부를 하면
비교적 창조적 사고를 하기가 쉽습니다.
다른 종교에서처럼 무조건 믿고 따르는 방식의 사고는
앞으로 미래 사회에는 조금 덜 맞지 않을까 싶어요.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답을 정해놓고 배우는 교육은 창조적인 일을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믿음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믿고 따랐는데
나중에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기분이 나빠지죠.
믿음이 부정당하면 괜히 속은 것 같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자기가 절대로 옳다고 믿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꿈속의 허황된 이야기더라 하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이 됩니까.
그래서 모든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는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불교는
믿음의 측면에서도, 이해의 측면에서도, 미래에 창조성을 갖는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합니다.
어떤 논리를 초월하는 건 괜찮지만
그렇다고 허황된 이야기는
나중에 오히려 속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을 때이니까
무상과 무아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고등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무상과 무아를 물질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하는 겁니다.
이렇게 무상과 무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영혼불멸설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앞으로 운전을 자동으로 하는 자율주행차가 나온다고 해도
자동차 안에 무슨 실체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저 기계 부품들을 조립해서 거기에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깔면
그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가는 것뿐이지
거기에 무슨 영혼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것처럼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것도
까르마라고 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것뿐입니다.
인간의 정신세계가
까르마에 의해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건 다른 이야기예요.
이 옷이 누구의 것이 아니라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쓸 수가 있고 더욱 소중하게 아껴야 합니다.
자동차에 영혼이 없다고 해서
자동차를 함부로 대하거나 부숴도 된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이용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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