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회에 나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담당자 님이 정화조 청소를 해야 한다며 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황당했습니다.
어리둥절 공양을 마치고 정화조 청소를 하는데
지시를 내린 담당자님은 홀연히 어디에도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라 말씀드립니다.
어디를 가나 이런 사람 꼭 있으니
‘끼 있는 분이시다' 하고 3명이 정화조 청소를 하는데
4명은 족히 있어야 청소가 수월히 진행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모든 일에 몸을 사리지 않고 성실히 임하는 저에게는
그분은 입으로만 일하는 얄미운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현재까지도 여기저기 아프다 핑계만 늘어놓고는
벌이는 일은 많은데 정작 지시만 하고 갑자기 사라졌다가
끝날 때쯤 나타나서 칭찬인지 모르는 말로
저한테 ‘뭘 먹고 살길래 힘이 그렇게 좋냐?’ 하며 너스레를 떱니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 하고 넘어가다가 이제는 그분이 도깨비로 보입니다.
이런 분을 제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며
수행을 해야할지 궁금합니다//
오늘 질문을 잘하셨어요 얘기라도 하고 나니까 속이 좀 후련하죠?
그런데 그 사람의 수행이 제대로 안 됐다는 것은
내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문제잖아요.
수행자는 항상 자기를 봐야 합니다.
정화조 청소를 예로 든다면
어쩌면 그 사람은 점심 먹기 전에 정화조 청소를 하자고 한 이유가
점심 먹기 전에는 자기가 시간이 있었는데
점심 먹고는 다른 일이 있어서 못 하게 된 게 아닐까요?
첫째, 그 사람이 점심 먹기 전에 하자고 자꾸 고집했을 수도 있고,
점심 먹고 나니까 다른 일이 있어서 가버렸을 수도 있는 거예요.
사실이 그런 지는 모르지만요.
자꾸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자신의 사정을 다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점심 먹고 하면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면 좋겠습니다’
혹은 ‘그러면 점심먹고 하시려면 하세요.
대신 저는 참석을 못 합니다’
이렇게 말을 해주면 되는데,
그걸 말하지 않은 겁니다.
다른 의도가 따로 없다면
그 사람이 설명이 좀 짧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둘째,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정화조 청소 책임자라면
‘정화조 청소하세요’ 하고 알림을 하는 역할만 그 사람이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 역할을 그 사람이 안 하면
내가 정화조 청소도 해야 하고, 또 알리는 역할도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알리는 역할이라도 해주니까
우리는 역할을 받아서 청소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이 잘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역할을 누군가가 해야 하므로
그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같이 일하다 보면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 하고
자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 사람이 사무실에 있으면 전화는 잘 받나요?' 하고 물어봅니다.
전화는 잘 받는다고 하면
‘그러면 됐다. 그 사람이 없으면 전화까지 네가 받아야 하는데,
전화만 받아줘도 괜찮지 않느냐’ 하고 말해 줍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져보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내가 그 사람을 고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토회가 수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내 마음에 들 수는 없습니다.
셋째.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정토회를 만나 수행하면서
예전보다 좋아진 상태가 그런 모습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 기준에서 보면 좀 부족하니까
자꾸 ‘수행자가 뭐 저러나?’, ‘스님 법문은 안 듣나?'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같이 정토회 회원일 때가
제일 같이 활동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상대편에게 수행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스님 법문도 안 듣나?‘ ’수행자가 왜 그래?’
이렇게 자꾸 상대를 시비 분별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정토회에 안 나올 때 자기 수행이 제대로 되는 거예요.
나는 수행자이고 상대는 수행자가 아니니까
무조건 내가 그 사람한테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이 수행을 하면
상대도 수행자라는 생각 때문에 자꾸 시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토회 다니기 전과 똑같이 돼버려요.
부부가 같이 수행해도
내가 상대에게 맞추는 게 수행입니다.
상대에 대해서는 논하지 말고
‘그 역할만 해줘도 고맙다' 하고 바라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수행입니다.
그래서 우선 내가 기분이 나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못 견디거나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의 이런 행동이 정토회에서 봉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이 되면,
담당 법사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돼요.
‘제 수행 부족이긴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자원봉사 모임에 이런 사람이 있으니까
정토회 이미지에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법사님께서 한번 지켜보시고
상담해 보시고, 조정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에 법사님이 상담해 보니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제가 분별심이 심해서 생긴 문제라면 저한테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더 이상 그 사람을 문제 삼지 않고
그냥 제 공부로 삼겠습니다.’
그런데 담당 법사님이 보기에도
그 사람이 인력 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그 사람의 역할 배치를 조정해서 개선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 수행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내가 적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적응 못 하는 건 나의 수행 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위해서 개선하는 것이 좋겠다면
우리는 제안을 해야 합니다.
그냥 무조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다 문제 삼아도 안 됩니다.
내가 걸리는 건 내 수행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이건 좀 문제가 있겠다고 생각될 때는
개선을 제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판단이 잘 안되면
법사님에게 여쭤보고
‘제삼자의 관점에서 한번 보시고 평가를 내려주십시오' 하고
제안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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