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5)

[법륜스님의 하루] 임신 8개월에 뱃속의 아기를 사산했습니다. (2025.01.30.)

Buddhastudy 2025. 2. 4. 20:03

 

 

저는 임신 8개월에 뱃속의 아기를 사산했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날

진통처럼 배가 굉장히 아팠는데,

제가 잘 모르고 그냥 누워 있었더니 괜찮아져서

그날 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에야 태동이 없길래 병원에 가서 알게 됐어요.

아기가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책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제가 버티고 있는 것은

그나마 추후에 인연이 되면

아기가 다시 저에게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 생각이 욕심이고 집착이라면

아기는 결국 좋은 곳에 못 가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

혼란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지금 나이가 얼마나 되었죠?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서른여덟이면 육체적으로는 아직 아기를 한두 명 더 가질 수 있을 텐데요.

의학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요?

 

첫째, 아기를 또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아기를 가진 산모의 배를 누가 발로 찼다든지

전기 충격기로 충격을 주었다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든지

그래서 아이가 사산이 된 경우에는

내가 조금 부주의했구나하고 죄책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특별히 살아있는 아이를 해치는 행동을 안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회사 일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좀 받아서, 배가 좀 아픈 결과로 인해

사산이 된 경우잖아요.

본인이 자꾸 집착해서

내가 어제 배 아플 때 바로 병원에 갔으면 혹시 괜찮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꾸 미련이 생기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스트레스 정도는

작은 외적인 영향에 불과합니다.

누구라도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큰 영향이 아닌

아주 미세한 영향을 받았는데도

아기가 사산되었을 때는

뱃속 태아의 건강 상태가 굉장히 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주 미약한 외부 영향으로도 죽을 정도의 그런 약한 상태의 태아가

수술해서 겨우 살아났다고 가정할 때,

그 아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장애라든지, 심신 미약이라든지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요?

 

아기가 이미 태어났는데

신체에 장애가 있든 심신이 미약하다고 해서 죽게 내버려 두면

그것은 살인이 됩니다.

옛날에는 눈이 너무 많이 온 겨울에

산에 있는 토끼나 노루가 먹을 게 없어서

마을 가까이 오면 먹을 걸 주었습니다.

그것을 자연 보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립공원에서

일절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못 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위적인 행위이지

자연스러움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에요.

 

그것처럼 일부러 아기를 지우려고 약을 먹었다든지

누가 발로 찼다든지 하는 경우가 아닐 때는

이것을 자연스러움으로 보아야 합니다.

 

태어났는데 심신이 미약하거나 심장이 아주 약해서

곧바로 심장 수술을 하는 아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심신이 미약한 경우는

온갖 치료 행위를 해도

1년 만에 죽거나, 3년 만에 죽거나, 5년 만에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태어났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야 하지만

이미 뱃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산이 되었을 때는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것을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키고

두 번째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일은 질문자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에 해당하지 않아요.

이런 죄책감은 옛날에 남편이 죽으면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아내가 큰 죄책감을 느끼고서

죽지 못해서 산다.’ 이렇게 하소연하는 심리와 같습니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아이를 해친 게 아니잖아요.

내가 담배를 피우거나 마약을 해서 아이를 해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이런 경우는

자연스럽게 자기의 생명을 다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아이가 건강하게 생성되도록 노력하는 게 좋습니다.

 

대신 다음에 아이를 가질 때는 조금 더 유의해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의 건강에 안 좋을 수 있고

자궁 등 나의 신체적 기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임신 5개월이 지나면 휴가를 내어서

가능하면 스트레스 받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뱃속에 있는 아이를 잘 보호하는 조처를 하게 되면

이번 일은 더 큰 불행을 막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태아는 자아가 없어요.

사람의 모양은 만들어졌지만, 자아가 아직 형성이 안 됐어요.

이 아이가 다시 나에게 온다고 할 때는

자아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단지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새로운 아이가 잉태하게 되면

그 아이가 태어난 다음부터 자아가 형성되거든요.

컴퓨터로 말하면 하드웨어 기계는 만들어졌는데

아직 소프트웨어가 안 깔린 상태인 겁니다.

 

내 컴퓨터가 되려면

내가 필요로 하는 여러 프로그램이 하드웨어에 깔려야 됩니다.

그래야 내가 누르면 이것도 나오고 저것도 나오는데

프로그램이 깔리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기계일 뿐이에요.

 

기계는 매장에서

이 기계를 가져오든 저 기계를 가져오든 별 차이가 없어요.

거기에 소프트웨어를 깔아야

이건 내 컴퓨터다.’, ‘저건 네 컴퓨터다.’

이렇게 구분할 수가 있는 겁니다.

아이가 새로 태어나면

엄마와의 교감을 통해서 아이의 자아가 형성됩니다.

자아가 형성되어야 내 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사산이 된 아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세요.

몸을 추스르고 건강을 회복해서 새로운 아이를 가지면 됩니다.

 

새로운 아이가, 사산된 아이와 같은지 다른지 하는 것은

내가 혼자서 구분 짓는 것일 뿐

실제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산된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말은 다 자아를 전제로 해서 하는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