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술 마시는 가족들한테 폭행하는 남편이 있다면
스님께서는 그런 남편에게도 참회의 기도를 올리라고 즉문즉설 하셨었습니다.
나 같은 여자를 만나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매일 두들겨 패냐고 기도하라고 하셨었는데요
수행자적인 관점에서는 약간 이해가 되는데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면인데요.
분명히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는 경우에도 나를 탓하고 나를 참회하는 것은 만약에 그 사람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을 경우 나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면 홀가분함을 얻기 위해서인가요?//
법문을 반만 들었어요.
법문을 이렇게 듣기 때문에 법문에 부작용이 있고
또 스님에게 악성 댓글이 수도없이 달리고
이런 일이 발생하거든요.
그러니까 남편이 술먹고 폭행하는데 참회해라.
스님이 무슨 멍청이거나 또라이가 아닌 이상, 왜 법문을 이렇게 하겠어요.
남편이 술먹고 폭행을 하면
폭행을 하면 스님이 어떻게 하라고 그럽니까?
파출소에 바로 신고를 해라, 이렇게 가르치죠.
가정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가정 폭력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얘기이고요.
뭐 이게 한두 번 해보고 안 되면 스님은 두 번째 뭐예요?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헤어져라.
요즘 같은 세상에 남편한테 폭행당하면서 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게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헤어질 수가 없다는 거예요, 어떤 이유든.
그 남편이 좋든, 애들 때문에 그렇든, 경제적인 이유든
헤어질 수가 없다.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여자분이 헤어질 수 없는 조건이 있는 거를 고려 안하고
자꾸 여성운동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라, 어떻게 해라 하거든요.
이분은 그런 환경에서 헤어질 수가 없다. 그래도 헤어질 수가 없다.
헤어질 수가 없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많은데 그걸 안하고 자기는 사는 선택을 하겠다 그러면
이왕지 사는데 맞고 사는 게 좋겠냐? 안 맞고 사는 게 좋겠냐?
안 맞고 사는 게 좋다.
그러면 상대가 화를 내고 할 때는 왜 그럴까?
바로 서로 말을 하다가
말에 상대가 남편이 지니까 화를 내는 거요.
남편이 말하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러는데
화내고 두들겨 패고 이런 건 정신병자이지.
말에 져버리면 된다는 거요.
어떤 말을 하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살려면 이 말이에요.
폭행 안 당하고 살려면 말로 지면 된다.
이게 수행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헤어지는 방법도 있고 사는 방법도 있는데
헤어지는 방법 사는 방법, 사는 방법 중에 계속 이렇게 폭행을 당하고 사는 방법, 폭행을 안 당하고 사는 방법이 있다면
이분이 사는 방법을 선택했다면 폭행을 안 당하고 사는 게 유리하지 않냐.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든지
“알겠습니다.” 이렇게 오히려 내가 숙이면
폭행을 안 당하고 살 수가 있다, 이 얘기이고.
또 술을 먹는다 이럴 때, 헤어지면 되는데
같이 살려면.
그러니까 그 같이 사는 이유를 우리가 옆에서 말할 수가 없겠죠.
술 안 먹을 때 워낙 잘해주기 때문에 같이 사는 건지
경제적 문제 때문에 사는 건지
이혼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같이 사는 건지
아이 때문에 같이 사는 건지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본인이 그런 경우에도 살겠다 그러면
결국은 그 남편은 술먹는 이유가 뭔가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먹지 않겠냐.
그러면 술을 안 먹으면 그게 폭발할 텐데
그래도 술을 먹고 밖에 가서 해소를 하고 들어오니까 그래도 이나마 생명을 유지하고 사니까
술이 일반적인 게 아니라 그 사람한테는 술이 보약이다,
그 사람이 술을 먹으니까 그래도 술먹고 스트레스를 풀고 명을 이어가니까
“우리 남편에게 있어서 술은 보약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남편이 술먹고 올 때
“왜 술먹었냐? 왜 술 처먹었냐?” 이런 얘기 안 한다.
“아이고, 오늘 늦게 들어오셨네요. 한 잔 하셨네요.
부족하면 술상 더 볼까요?”
이렇게 하는데 물건을 집어 던지고 두드려 패고 이럴 일은 없잖아요.
이렇게 하면 누가 좋으냐?
내가 좋다. 이거야.
그 사람이야 술을 먹고 죽든지 알코올 중독 되든지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고
그런 인간과 사는, 살 수밖에 없다면
나는 그런 가운데서도 나를 행복하게 유지하는 게 수행이다.
그러니 자기가 생각해보니 어때요?
법문을 제대로 들은 거 같아요? 엉터리로 들은 거 같아요?
...
안 살아도 돼. 스님이
“결혼했으니까 살아라”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 아니잖아.
어차피 인생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사는데
살다보면 남이 볼 때는 그럼 안 살면 되지 이러지만
사는 상황에서는 그 일도 괴롭지만 또 살 수밖에 없는 어떤 인연이 있을 거 아니겠어요.
거기 사람들은 안 보고 그냥 막 객관적으로만 얘기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하니까 그 선택은 존중하고
그러면 그 가운데서도 차선책을 찾아야 되지 않느냐.
수행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이 있을 때
거기에 적응하는 방법도 있고
그것을 개선하는 방법도 있고
그것을 피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떤 방법을 쓰던 그런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가꿔 나가야 한다.
남 탓하고
자기를 불행하게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이런 얘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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