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본성과 종교 간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 할지
스님께 여쭙고자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2가지 문제가 따로 같은데 사실은 밑에 가서 뿌리가 하나인데,
예를 들어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운영해도, 여기 있는 구멍가게에 오래 다녔어. 그러다가 저 아래 슈퍼마켓이 생겨 가봤더니 물건도 좋고 값도 싸고 싱싱해. 그래서 내가 옮겼다.
그러면 내 입장에서는 어때요?
‘어, 소비자의 권리라는 걸 주장하잖아. 그래서 값싸고 물건 좋으면 나는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어때요? 배신자이지.
그래도 그거 값 조금 싸다고 20년 다니던 가게를, 인간관계를 배신하고 그 돈 몇 푼에 갔다. 기분이 나쁜 거요.
그럼 가게 주인이 누구다? 스님이나 목사나 신부는 가게 주인이란 말이오.
가게 주인은 자기 가게가 제일 좋다고 주장을 해야 되요? 안 해야 되요? 해야 돼.
그럼 거기 다니는 손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손님 중에는 가끔 꼭 이것만 좋으나? 저것도 값싼 거 있으면 사지. 이런 사람도 있기 때문에 지금 이런 문제가 발생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가 자기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해라는 거요.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되는 거요. 그래서 그 종교가 그런 배타성을 갖는 것도 하나의 속성이다. 이해하셨어요?
그 다음에 또, 그러나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다원주의, 소위 말해서 상대적이다.
각각 다 그런 주장을 하는 거다. 이렇게 볼 수가 있다.
그러니까 자기가 그 부분에 대해서 꼭 내가 절대적으로 배타적으로 갈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는 다원주의니까 그 절대적으로 주장한다고 그걸 꼭 버릴 필요도 없고,
자기 그냥 다녀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면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고 받아드리면 되고, 그게 다원주의요.
그리고 자긴 또 딴 것도 필요하면.
이 가게에서 얘기하면 집 앞에 가깝고 하니까 좀 비싸더라도 사주다가 가끔 외출했다 올 때는 안 볼 때 저리로 가서 좀 사서 오고, 이러면 되는 거요.
그러니까 산에 등산 갔을 때, 절에도 한번 가보고, 스님 유튜브도 한번 들어보고, 이러면 되요.
그러니까 그걸 너무 죄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교회 가서
“야, 베타적인 건 잘못된 거야. 스님 법문도 한번 들어봐.” 이렇게 주장할 필요도 없다.
자기가 딴 가게 가면 되지, 꼭 “전 가게 저 집 가게는 물건이 비싸고 나쁘더라.” 그러면 그 집 주인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 그러니까 그거는 안하는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두 번째는 이런 종교, 내가 힘들어서, 내가 복을 빌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믿음을 갖고 하는 건 좋은데, 그거는 불교나 기독교나 모든 종교의 기본 속성이요.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쳤냐? 안 가르쳤어. 이게 문제요.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아까 말한 종교의 기본 속성의 모순을 지적하신 분이야.
그래서 자기가 만약에 기독교 신자다 할 때, 그냥 종료로써 내 힘들 때 가서 빌고 하는 종교를 믿겠다하면 아무 관계가 없는데
진짜 예수님이 어떻게 가르쳤냐? 이렇게 파고 들어가면 이건 성격이 좀 다르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사람,
십자가에다 못 박은 그 사람을 내려다보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렇게 말했단 말이오.
그런데 그 뒷말이 더 중요해요.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했어.
‘나쁜 놈이지만 용서해주라.’ 이 말이 아니라
‘저 인간들은 자기가 지금 나쁜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그 사람들이 누구냐? 역사적으로 보면 사형집행인이에요.
그 사람이 예수를 죽인 게 아니라, 법원 판결이 낫기 때문에, 그는 십자가형을 집행한 사람밖에 아닌 거요.
그러면 예수는 이 사람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했어요? 안 했어요? 이해를 했지.
그들이 만약에 벌을 받는다면 지옥에 간다면 억울할까? 안 억울할까? 억울하지.
자기 직업 때문에 지금 처벌을 받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이해하고 온전히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면 그거를 응징하는 게 지금까지 신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용서해 주라고 하는 것은 뭘 말해요?
신보다 더 사랑이 넓다는 의미잖아. 그때까지 믿어오던 신보다도.
신이 더 넓으면 예수가 부탁할 이유가 없잖아. 신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데 그때까지 예수 이전의 신은 응징하는 신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크리스천이라면 응징하는 신을 믿어야 되겠어? 용서하는 신을 믿어야 되겠어?
그럼 자기는 자기 죽인 정도도 아니잖아.
동업하다 그만둔 정도인데, 그걸 아직도 못 잊어서 “나쁜 놈!” 그러면 자기는 크리스천은 아니야. 종교인은 맞는데, 복비는 종요인은 맞는데 크리스찬이라고 어디 가서 하면 안 된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하느님이 아니라
십자가 정신이다.
즉, 자기희생이다.
그러니까 도움을 얻기 보다는 도움을 주라.
사랑받기를 원하기 보다는 뭐하다? 사랑 하라.
이해 받기를 원하기 보다는 이해하라.
이런 가르침을 주신 분들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조금 더 불교냐? 기독교냐의 문제가 아니라, 조금 더 이왕지 신앙을 가졌으면
신앙의 본질에 가까운 부분을
조금 더 접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예수님이 배타적일까? 배타적이지 않을까? 배타적이지 않겠지.
그러나 내가 소속된 그 교회에서 배타적인 건 이해를 해야 돼.
그것이 현실이라는 거야. 삶의 현실이라는 거야.
그걸 우리가 이해하는 게 오히려 그 가르침이다.
(삶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본질적인 종교의 가르침이다.)
‘그건 나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 현실적인 이해가 걸려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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