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98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인류가 알고 있던 태양계 행성들 중에서
우주선이 가보지 못한 곳은 딱 한 곳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당히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 지위를 누리던 곳
바로 명왕성입니다.
명왕성은 어느새 미개척지의 상징이자 도전을 의미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나사의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 호였습니다.
뉴호라이즌스 호는 길고 순탄치 않았던 탄생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네, 오늘은 뉴호라이즌스 호의 명왕성 탐사 여정을 한번 따라가보겠습니다.
--뉴호라이즌스 호 계획
보이저 호의 여행이 끝을 향해 달려갈 무렵
신세대 과학자들은 하나 남은 미개척 행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앨런 스턴을 비롯한 행성학자 천여 명은
뜻을 모아서 명왕성 탐사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NASA는 학계의 관심에 주목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탐사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예산이었습니다.
나사의 예산은 1980년대부터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그래서 보이저호처럼 돈이 많이 드는 태양계 탐사 프로젝트는 채택될 가망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세등등하던 명왕성 프로젝트는 갈수록 한물간 아이디어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후 명왕성 프로젝트의 운명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습니다.
그동안 가정으로만 존재하던 카이퍼대에서
실제로 천체들이 발견되자 명왕성 계획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NASA는 비용 초과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명왕성 계획을 공식적으로 중단해버렸습니다.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린 쪽은 명왕성 지지자들이었습니다.
행성 협회와 시민들이 NASA와 의회에 수천 통의 항의 편지를 쓰고
언론도 NASA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덕분에 명왕성 탐사 계획은 극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대신 NASA는 계획 전체를 경쟁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우주선 설계부터 제작, 시험, 비행에 이르는 모든 비용을
보이저호 프로젝트의 5분의 1 수준으로 맞추는 팀에게 최종 승인을 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경연 참가 팀은 총 5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팀은 전통의 명문 JPL과 신흥 강호 APL이었습니다.
우승의 영광은 APL에게 돌아갔습니다.
앨런 스턴이 포함된 APL팀이 혁신적인 비용 절감안을 여럿 고안해냈기 때문입니다.
APL팀의 혁신안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동면입니다.
우주선이 시스템을 끈 상태로 여행하는 동면은
이전에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방법이었습니다.
동면을 하면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우주선을 최대한 젊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고
*지상 제어 팀을 최소한의 인원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동면 기간 동안 지상 제어팀은 보이저팀의 10분의 1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앨런 스턴은 프로젝트 이름을 뉴호라이즌스로 지었습니다.
최초 제안부터 경연 우승까지 무려 12년
이제 명왕성으로 날아갈 뉴호라이즌스 호를 실제로 만드는 일만 남았습니다.
--뉴호라이즌스 호 제작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NASA의 요구대로 2020년 전까지 명왕성에 도달하려면
늦어도 2006년 1월에는 발사를 해야 했습니다.
우주선이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명왕성까지 가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목성과 명왕성이 일직선으로 늘어서는 때를 틈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선을 빨리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우주선이 빨리 명왕성에 도착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명왕성은 1989년에 태양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 도달한 뒤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명왕성에 가까이 가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최대한 빨리 명성에 도달하려면
가벼운 우주선과 강력한 로켓이 필요합니다.
APL팀은 2천500명이 넘는 사람들로
뉴호라이즌스 팀을 구성해 가장 빠른 우주선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강력한 로켓으로 낙점된 것은 록히드마틴 사의 아틀라스V,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551모델이었습니다.
이 괴물 로켓의 1단과 다섯 개의 부스터는
우주선을 시속 16,000km까지 끌어올려 줄 겁니다.
그리고 2단 로켓 센토는 다시 시속 28,800km까지 속도를 올려줍니다.
어마어마한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명왕성까지 내달릴 속도에는 못 미칩니다.
설계팀은 3단 로켓으로 보잉에서 주문 제작한 스타48을 추가했습니다.
스타 48은 고체 연료를 연소하면서 뉴호라이즌스 호를 중력가속도 14G까지 올려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총알의 스무 배 속도에 달하는 초음속 우주선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려면 우주선이 가벼워야 합니다.
설계팀은 뉴호라이즌스 호의 무게를 보이저호의 절반 수준인 435kg까지 낮추었습니다.
초경량에 역대급 저비용 우주선이 되겠지만 관측 장비만큼은 최신식입니다.
예를 들어 보이저호의 지도 작성 분광계는 적외선 화소가 한 개뿐이어서
방향을 계속 바꿔가며 지도를 작성했지만
뉴호라이즌스 호의 지도 작성 분광계는 적외선 화소 64,000개로
목표 지역을 그물처럼 뒤덮어 동시에 지도 를 작성합니다.
나머지 관측 장비들도 보이저호에 비하면 몇 광년이나 앞선 기술들입니다.
그래도 동력원만큼은 보이저 호 때와 같은 플루토늄을 사용합니다.
플루토늄을 싣고 플루토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명왕성을 발견한 클라이드 톰보의 유해 일부도 명왕성으로 가게 됩니다.
--뉴호라이즌스 호 발사
2006년 1월 19일 드디어 우주 탐사 역사상
가장 먼 곳을 향한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로켓들이 점화되었고 예정된 속도에 우주선이 도달했습니다.
발사 아홉 시간 후, 뉴 호라이즌스 호는
인류가 발사한 어떤 우주선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공간을 날아갔습니다.
우주선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면
지상통제팀은 우주에서 발생할지 모를 각종 비상상황에 대비합니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은 우주가 아니라 지구에서 벌어졌습니다.
우주선이 발사된 지 7개월 뒤, 국제천문연맹이
명왕성을 행성에서 왜소행성으로 재분류해버린 것입니다.
행성탐사팀으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운 소식이었지만
그래도 덤덤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로부터 약 4억km 떨어진 우주공간에는
자기가 행성 탐사선인지, 왜소행성 탐사선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우주선이 신나게 날고 있었습니다.
뉴호라이즌스 호의 첫 임무는 목성 플라이바이입니다.
플라이바이, 혹은 스윙바이는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우주선의 추진력을 얻는 방법입니다.
우주선을 행성과 거의 충돌할 뻔한 궤도로 쏘아 보내면
행성의 중력이 우주선을 끌어당겼다가 다음 목표를 향해 고속으로 튕겨 냅니다.
최초의 플라이바이는
매리너 10호가 수성에 가기 위해 금성의 중력을 이용했을 때였습니다.
그 뒤로 플라이바이는 태양계 여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재치있는 요령이 되었습니다.
목성 플라이바이를 성공적으로 마친 뉴호라이즌스 호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진로를 잡았습니다.
명왕성까지 앞으로 8년, 우주선이 만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뉴호라이즌스 호는 시스템을 끄고 동면에 들어갔습니다.
첫 번째 동면은 일주일 동안, 다음은 몇 주 동안, 다시 10주 동안, 4개월 동안,
이런 식으로 최장 7개월까지 동면 기간이 늘어났습니다.
--뉴호라이즌스 호 명왕성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2014년 12월 6일, 뉴호라이즌스 호가 마지막 동면에서 깨어났습니다.
명왕성까지 겨우 7개월을 남겨둔 시점이었습니다.
잠자던 아이가 깨어나자 지구의 부모들도 바빠졌습니다.
나사의 지상팀은 우주선의 상태를 점검하고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비상 상황에 대배했습니다.
명왕성은 아직 작은 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동면이 끝나고 한 달 뒤에는 명왕성과 명왕성의 위성 카론이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스윙 댄스를 추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다시 3개월 뒤에는 댄스 파트너들의 컬러 사진이 찍혔습니다.
그리고 근접비행을 하루 앞둔 7월 13일
그동안 희미하게만 보였던 명왕성의 밝고 넓은 지역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NASA의 홍보담담자 로리 캔틸로가 그 지역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밝은 지역이 하트 모양 같지 않아요?”
캔틸로가 그렇게 말하자 정말 모두의 눈에도 그 지역이 하트처럼 보였습니다.
왜소행성으로 강등된 전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받는데 하트만큼 완벽한 소재가 또 있을까요?
다음날 인터넷 공간은 온통 하트로 가득 찼습니다.
명왕성 하트 검색어 순위가 치솟고
NASA의 홈페이지는 10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전세계 쇼핑몰에는 명왕성 하트 관련 상품들이 쏟아졌습니다.
분위기는 달아올랐습니다.
총 9년 반을 날아온 우주선이 명왕성에서 우주쇼를 펼치기까지 단 하루가 남았습니다.
--
명왕성은 놀랍고 멋졌습니다.
얼음 산맥과 매끈한 평원, 그 위로 층층이 겹쳐진 안개가 피어올랐습니다.
명왕성의 구성 성분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질소와 메탄을 비롯해 다양한 분자의 얼음이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명왕성은 구성 성분뿐만 아니라 표면의 지형들도 다양했습니다.
명왕성 아래쪽 부분은 충돌 구덩이가 많은 오래된 지역이고
위쪽은 밝고 매끈한 젊은 지역이었습니다.
원래 명왕성처럼 작은 행성은
이미 오래 전에 차갑게 식어서 표면의 지질 활동도 그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뉴호라이즌스 호는 명왕성이 오래된 전체이면서도 표면은 아직 젊고 지질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하트 모양의 평원에는 점점이 흩어진 구멍들이 있었습니다.
크기가 킬로미터 단위인 이 구멍들은 분명 질소 얼음이 승화하는 과정에서 생겼을 것입니다.
질소 얼음이 승화하면서 하트의 왼쪽에 지질학적 세포 무늬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명왕성과 스윙 댄스를 추던 카론도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구덩이로 뒤덮인 오래된 지형만 있을 줄 알았던 위성에
깊은 협곡, 골짜기, 절벽,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지역들이 있었습니다.
카론과 함께 네 개의 작은 위성들도 포착되었습니다.
뉴호라이즌스 호는 근접비행을 마치면서 명왕성의 뒷모습을 찍었습니다.
뒤에서 본 명왕성은 지구처럼 아름다운 파란색 하늘이 둘러져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명왕성의 뒤편까지 날아가지 않았다면 절대 찍을 수 없는 멋진 사진이었습니다.
뉴호라이즌스 호는 명왕성 표면에서 1만3000km 상공을 지나가면서
도서관 하나를 다 채울 만큼 무시무시한 양의 데이터를 주워 담았습니다.
지구로 전송하는 데에만 16개월이 걸릴 분량이었습니다.
명왕성 탐사를 마친 뉴호라이즌스 호는
현재 태양계 바깥쪽 탐사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주선의 임무는 2021년에 끝날 예정입니다.
어쩌면 남은 동력으로 10년 뒤까지 탐사를 계속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는 우리 은하의 떠돌이 주민이 되겠죠.
뉴호라이즌스 호의 명왕성 탐사는
여러 면에서 21세기를 대표하는 우주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이저호 때와는 달리 소셜 미디어를 갖춘 지구인들이
48억km나 떨어진 곳에서 펼쳐진 우주쇼를 동시에 공유했으니까요.
태양계 밖 왜소한 친구가 펼친 거대한 우주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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