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삼국지 15 : 황건적 진압 & 여강

Buddhastudy 2023. 12. 27. 20:03

 

 

영제와 십상시의 악정에 시달린 농민들은

생활고를 못 이긴 나머지

장각을 중심으로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황건적의 난은 초기에는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황보숭과 휘하 조조, 그리고 주준과 휘하 손견의 진압으로

세력확장을 꾀하던 황건적의 세력은 한풀 꺾였습니다.

 

이어, 북중랑장 노식이 기주 방면의 진압군을 통솔하여

연전연승 끝에 장각을 광종으로 몰아넣었지만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정으로부터 파직당하게 됩니다.

 

파직된 노식의 후임은

삼국지를 넘어, 중국사에서도 손꼽히는

악인으로 여겨지는 동탁이었습니다.

 

동탁은 선임이었던 노식이나

조심성이 많은 황보숭과는 달리 거친 성정을 가졌으며

결과를 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과를 낸 후에는

수고를 한 부하들을 위해 포상에도 아낌없었기 때문에

대범한 성격을 가진 동탁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동탁은 노식을 대신하여 군대를 맡아 지휘했는데

궁지까지 몰린 본진의 황건적은 똘똘 뭉쳐

온 힘을 다해 반격에 성공하여, 동탁은 예상밖에 패배를 당했습니다.

 

광종의 황건적들은 최정예 부대가 모인데다 사지에 몰려있으니

노식이 구상했던 굶기기 작전이 아닌 이상

성급한 공격은 되려, 황건적의 독기를 더할 뿐이었던 겁니다.

 

동탁은 패전의 책임으로 처벌을 받아 자리에서 물러났고

때마침, 조정에서는 연주에서의 황건적들이

황보숭 부대에게 모두 전멸당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조정에서는 황보숭에게 조서를 내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장각, 장보, 장량을 토벌하도록

광종으로 향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황보숭은 연주에서의 전투를 끝내고 다소 지쳐있었으나

매듭을 짓기 위해 병사들과 광종으로 향하였습니다.

이어, 기존 부대와 합류하였지만

첫 전투에서는 인공장군 장량에게 패배했습니다.

 

이 무렵, 황건적에서는 난을 일으켰던 지도자

장각이 늙고 병이 들어 병사하였고

남은 황건적은 동생들인 장량과 장보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황보숭은 광종에서 첫 전투에서 패배를 당했으나

그는 전쟁에서 산전수전을 겪어온 노련한 장군이었습니다.

황보숭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며

동시에 적진에 대한 정찰병을 끊임없이 보냈습니다.

 

황건적들의 상태를 살펴보던 황보숭의 정찰병은

이윽고 그들이 손쉽게 관군들을 이기느라

자만에 빠져 있는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였고

기회를 틈타, 한밤중에 야습을 가했습니다.

 

 

 

 

긴장이 풀려있던 황건적들은 전문 군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밤중에 쳐들어온 갑작스러운 황보숭의 공격에

금세 혼란에 빠져, 전투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황보숭의 군대는 새벽에 침투하여

아침이 지나 오후가 될 때까지 일방적인 살육으로

장량을 포함한 대부분의 황건적을 말살시켰습니다.

 

여기저기서 황건적들의 시체가 쌓여갔고

강을 건너다 빠져 죽은 자들도 많았으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의 부녀자들은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사망한 장각에게는

시체에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를 행하여 수도로 보냈으며

지공장군 장보까지 추격하여 머리를 베어

대다수의 황건적을 토벌하였습니다.

 

참고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황건적과의 전투에서 대부분의 공적이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활약으로 나오지만

정사 삼국지에서는 황보숭을 중심으로 진압이 이루어졌습니다.

 

황건적을 진압한 황보숭은 조정으로부터 인정받아

좌거기장군으로 승진하였고

동시에 기주를 통치하는 기주목이 되었습니다.

 

후한 시절은 관직체계가 자주 변했는데

대략적으로는 목, , 태수 순으로 권한이 많으며

주목과 주자사의 차이점은

목은 상시적으로 군대를 운용할 수 있었지만

자사는 비상사태에서만 군사를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황보숭은 기주목 이라는 대우를 받고서

자신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미 그 전에 준비를 잘 해놓았던 노식 덕이라 보고하였고

이로 인해 노식은 상서로 복직되었습니다.

 

영제가 어린 시절, 관료와 환관의 대립 속에

환관들이 사대부 세력을 탄압한 사건이었던

2차 당고의 금 이후부터, 조정은 줄곧 환관들의 세상.

그중에서도 십상시는 세상에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안위는 안중에 없었던 십상시의 횡포로 인해

가난에 굶주리던 백성들은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고

평소 사대부들과 가깝게 지내던 장수들이 반란을 진압하면서

조정에서는 사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했던 일등공신 황보숭은

영제에게 과거 당고의 금에 묶인 인재들을 해금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영제는 환관 중 한 명인 여강과 의논했습니다.

 

당시, 환관들은 대다수가 뇌물과 권력에 눈이 어두웠는데 반해

여강은 평소 행실이 남달라, 청렴하기로 소문난 자였습니다.

그는 평소 영제가 재물도 많이 밝히며 부를 축적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담은 상소를 올리곤 했습니다.

 

황제가 여강에게 황보숭의 요청에 대해 의견을 묻자

여강은 당고 인사들을 사면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원통은, 남은 잔여 황건적 무리와 힘을 합칠 것이고

뿐만 아니라, 욕심 많은 환관들을 골라내 숙청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영제는 여강의 직언을 듣고서

또다시 황건적 같은 무리가 반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 여겨

당인들에 대해 대사면을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여강의 추가적인 당부였던 환관 제거에 있어서

영제가 행동하기 쉽지 않았던 것은

어린 시절, 외척에게 힘을 잃어 꼭두각시 황제였던 그에게

십상시는 천군만마가 되어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십상시 중 한 명이었던 봉서가

그동안 황건적과 내통하고 있었던 사실을 빌미로

영제는 환관들에게 주었던 권력을

잠시 박탈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십상시를 불러 그들이 주장했던

사대부들이 모반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은 억측이라 몰아붙이고

되려, 십상시 중 한 명이 장각과 내통까지 했으니

이제는 너희들을 다 참해야 될 것이냐고 질책했습니다.

 

환관들은 영제의 태도에 납작 엎드려서 사죄하였고

이제 궁궐에서 모두가 물러나겠다고 사직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영제는 지금의 권력 중심인 환관들을 내쳤다가는

이번에는 십상시 추종 세력들에게 원성을 살까 두려워

환관들의 사직을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환관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여겨

그동안 수도에 거주하면서 온갖 이익을 누려왔던

일가친척들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영제는 황건적 진압 때

대장군으로 임명했던 하진을 중심으로

환관 세력이 아닌 또 다른 친위세력을 형성했습니다.

하진은 영제의 둘째 부인 하태후의 오빠로

청류파를 대표하는 젊은 장수, 원소의 상사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여강의 충언으로 인해 영제로부터 책망받은 십상시는

여강을 그대로 놔둘 수 없었습니다.

십상시 중, 조충과 하운은 여강을 몰아내기 위해 꾀를 냈는데

이참에 처절하게 짓밟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조충과 하운은 영제를 찾아가

요 근래 들어, 여강과 그의 무리들이

곽광전(霍光傳)’이라는 책을 두고

수차례 읽으며, 몰두하고 있다고 일렀습니다.

 

영제는 깜짝 놀라 여강을 당장 잡아들이라 명했는데

곽광은 중국 전한 시대 소제와 선제를 거쳐

중국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신하였습니다.

 

곽광은 한무제가 죽은 뒤, 8세에 즉위한 소제를 보필하여

백성들에게는 선정을 베풀고 기울어져 가는 한나라를 바로 세운 인물입니다.

후세에, 훌륭한 위정자로 평가받은 곽광은

영제 시절보다 200년 정도 앞선 권신이었습니다.

 

영제가 여강이 곽광전을 찾아본다는 소식에 크게 놀란 이유는

곽광은 황제가 폭정을 일삼는다 싶으면 왕을 갈아치우기까지 했는데

후세에는 되려,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평소, 여강 또한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던 터라

영제는 자신 또한 쿠데타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 걱정했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15번째 시간으로

황보숭이 황건적을 진압한 과정과

진압 이후, 여강을 둘러싼 십상시의 모함을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