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소주 한 사발을 부어서 앙금이 가라앉은 뒤에 마신다.”
1837년, 술 담그는 비법을 담은 책, 양주방에 등장하는 ‘혼돈주’ 제조 비법입니다.
혼돈주란
막걸리와 소주를 섞은 조선 시대 폭탄주 격이 되겠지요.
더구나 당시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30도를 넘었다고 하니까 이 혼돈주는 오늘날의 폭탄주보다 훨씬 독한 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혼돈주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마시면 고주망태가 되어 함부로 이놈 저놈 부르게 되는 술.”
-연암 박지원 <제정석치문>
심지어 앙심을 품은 사람에게 이 술을 여러 잔 권하여 죽게 만들었다는 기록마저 남아있으니...
혼돈주란 사람을 해친 독과도 같은 술이었습니다.
술을 한 번에 들이키는 이른바 ‘원샷’ 문화 역시 유래가 오래됐습니다.
치-<<세종실록>>의 <오례> 부분에 소개된 제사용 술잔
제사용 술잔의 ‘치’의 모양이 큰데다가 또 독특해서 술을 한 번에 다 마셔버려야 했다는 해석...
“우리는 취했는데 공만 홀로 취하지 않았구려”
술잔인 ‘치’는 크기가 큰데다 모양도 독특해서...
받으면 과음을 피하기 힘들었다.
-주영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영조 임금이 주최한 잔치에 홀로 취하지 않았던 한 신하는...
결국 왕이 보는 앞에서 술 1리커 가량을 이른바 ‘원 샷’해야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들 마실까...
한국인 다섯 중 한 명은 한 달에 한 번 쓰러질 때까지 마신다는 통계마저 있다는데...
마음속 화가 응어리진 세상사 때문일까...
안 그래도 섞인 술이 마음속 화와 또 섞여서 술이 가져온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넘쳐납니다.
죄 없는 노인을 구타하고, 스무 살 청년의 꿈을 빼앗고, 함께 차에 탄 친구들의 목숨까지 빼앗았습니다.
마시면 고주망태가 되어 함부로 이놈 저놈 부르게 되는...
아니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데에도 쓰였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놈의 혼돈주...
얼마 전 한 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을 보여드리죠.
해가 넘어간 도시의 빌딩숲 사이로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는 정겨운 사람들의 풍경,
술이란... 실은 이러한 것이었겠지요.
부디 그 위로와 웃음이 도리어 해가 돼서 사람을 해치지 않기를.
첫눈 소식이 성큼 다가온 불목의 밤에 전해드린...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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