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정견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2-3 수행은 나에 대한 공부다.

Buddhastudy 2024. 10. 10. 19:32

 

 

2, 수행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3) 수행은 나에 대한 공부다.

 

우리가 수행하는 데 있어서

참으로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진짜 제대로 된 공부나 수행이란

결국은 자기가 바뀌고, 자기가 변하는

자기에 대한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수많은 공부 속에 자랍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공부를 자기가 해서 자기가 가지는 것이라는

소유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세상의 대다수 모든 교육은

거의 모두 먹고 사는 데 대한 정보의 습득 교육이므로

그에 필요한 지식의 전달과 축적에 그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교육 기관들은 거의가 다

이미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고

사람을 진정 거듭나게 바꾸는 참교육에는

그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와 궁극적인 진리를 찾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그런 세상의 공부 습관이 이 공부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되게 해야 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사찰을 다니며 기도하고 수행하지만

수십 년 그런 삶 속에 산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이

전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아는 것][되는 것]의 차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해 머리로 알려고만 할 뿐

그리고 잠시 그 맛만 보려고 할 뿐

그 지식과 그 감동에 의해서

자기가 진정으로 변하고 거듭나는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아는 것과 되는 것 사이에 있는 중간 계단인 자각

즉 깨어있음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깨어 있지 못하며

자기 영혼에 대하여 혼미한 상태에서

아직 어두운 가운데 졸거나 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 중에 아주 중요한 사건들은

그 날짜와 그때 그 시간의 구체적 상황들을 다 기억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다른 날들은 하얗게 다 잊어버리지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유독 내 인생에 중요했던 그 사건에 대해서만

깨어 있었단 말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깨어 있었다면

우리는 전생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흐리멍텅하게 살아왔고

아무런 변화도 없이

지금도 그런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몇십 년을 한 방법으로 열심히 수행했다는 사람들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행을 했으면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보다 더 온유하고, 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진 사람,

보다 더 현명하며, 보다 더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으로

변해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가 자신에 대해 깨어 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세상의 일반 수행자들은

자기가 변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그래서 남에게 과시하거나 내놓을 수 있는

어떤 상태나 경질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변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깨달음을 가지려고 하며

신의 은총을 마치 은행에 저금한 예금인 양

자기가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한계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이나

그에 대한 정서적 완고함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가 아닌 어떠한 체험 체계나 수행 이론을 가지고

이런 경지 저런 경지에 채점을 매기며 분별을 합니다.

 

나는 진리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으니

난 당신과 가까이 할 수가 없어라고 선언합니다.

심지어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저주하거나 공격까지 합니다.

 

이게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생각이나 가치관 등을 소유한 것으로

상대를 판단하겠다는 태도이며

상대가 누구인지는 관심이 없고

그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적지 않은 훌륭한 성각자분들을

그분들이 살아계셨을 때 직접 만났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느낀 것은

큰 영혼을 가진 존재들은

상대가 무엇을 가졌냐,

혹은 무슨 생각이나 그에 따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냐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상대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릇이 작은 수행자가 아상과 법상이 높기 마련입니다.

 

진정한 수행은 바로 다름 아닌 나에 대한 공부입니다.

많은 분들이 깨달으면

뭐 대단한 신통을 얻거나

이 세상에 모르는 게 없이

뭐든지 다 알게 되는 것으로 착각들을 하십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비로소 참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 것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 수행단체나 종교단체들이

이렇게 하면 깨달음을 얻는다

혹은 이것이 천국 가는 길이다라고 주장들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기발한 공부 방법을 하기 이전에

내가 뿌리째 진정으로 비워지고 바뀌어야

참으로 깨달을 수 있으며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람이 아직도 자기 업습 속의 추한 냄새가 나면서

아는 것만 바뀌었다고

그가 깨닫거나 거듭난 것은 아니라고 말이죠.

 

왜 이런 말 있지 않습니까?

도를 하기 전에

먼저 기본적인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