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전우용의 픽, 마지막 회입니다.
사실은 이 사담을 통해서, 픽을 통해서 계속 말씀드리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나라에서 살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은 좋은 나라 만들기에 관해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올림픽 시상식 장면을 좀 유심히 지켜보신 분들이라면 특이한 점을 발견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상대 위에서 국기가 올라갈 때, 국기를 향해 서서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올리는 의례를 하는 선수들은 한국과 미국 선수들 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그냥 똑바로 서서 국기를 주시할 뿐이죠.
네, 국기에 대한 경례, 이게 왜 한국과 미국에서만 하는 일일까요?
물론 군인이나 공무원은 다른 나라에서도 합니다.
민간인의 경우, 민주주의 국가의 민간인의 경우에만 말씀 드리는 겁니다.
깃발은 본래 이게 어따 쓰는 물건이었냐 하면 방향의 세기와 방향을 측정하는 옛날에는 요즘처럼 정밀한 풍향계가 없었기 때문에
깃발이 흔들리는 방향과 흔들리는 강도를 보고 바람의 세기와 풍향을 측정했거든요.
그런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나라의 고대 신화에서는 이 깃발이 바람 신의 상징물로 이렇게 묘사가 되곤 합니다.
인류활동에서 옛날에 바람의 가장 영향을 받는 활동이 2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항해였습니다.
그래서 배는 반드시 깃발을 달아서 큰 폭풍이 몰아쳐올 조짐은 없는지, 이런 걸 측정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 되었죠.
또 한 가지는 전쟁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는 바람의 방향이라고 하는 것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었죠.
그래서 지휘관의 장막 앞에는 반드시 깃발을 꽂아놓곤 했습니다.
그런다보니까 이것이 지휘권의 상징이 되었고, 이 깃발에 지휘관의 이름이나 성, 또는 지휘관 특유의 문양을 새겨놓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 되었습니다.
군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지휘기능.
그런데 국기라고 하는 것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국민국가가 수립될 무렵, 17세기 18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일반화하게 됩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1883년에 처음 지금의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사실, 다들 알고 계시겠죠.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에서도 국기는 처음부터 국민이 인사하고 격려하는 그런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 배가 한국국적이오라고 하는 국적 표시기능만 담당했지, 그걸 통해서 애국심을 고취하거나 국가의식을 선양하는 그런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대략 1890년대 말, 대한제국이 선포된 이후에 가서야 사실 다른 나라들은 조금 더 이르거나 늦거나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마는 가서야 국기를 애국심을 배양하는 물건으로 쓰려는 의도가 표현되었고, 또 그렇게 사용되기 시작했죠.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의례, 또는 지금 현재 국민의례의 원형을 소개한 사람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 다녀와서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매일 등교할 때마다 배기창가례를 실시하는데 이것이 애국심 함양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의례를 시행하자.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몇몇 학교에서 이 의례를 도입합니다.
배기창가례란?
무슨 뜻이냐 하면, 국기를 보고 경례하고 노래 부르는 의례, 이런 뜻이었습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일찍부터 이른바 국민의례라고 하는 학생들에게 주로 의례를 만들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미국이란 나라는 미국 민족에서 출발한 나라가 아니죠, 알다시피.
이민자들의 나라였습니다.
스페인 사람이 미국인이 되었을 때, 미국인으로서는 원래부터 미국에 살던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물어볼 수밖에 없죠.
“당신, 미국과 스페인이 전쟁을 하면 어느 나라 편에 설 거요?”
독일 사람이 왔을 때도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 미국과 독일이 전쟁을 하면 어느 나라 편에 설 거요?”
그래서 이른바 국기를 통해서 비국에 대한 일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그런 의례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미국에서 민간인이 국기에 경례하기 시작한 것은 남북전쟁 직후라고 합니다.
남북전쟁 때 아시다시피 남부는 별도의 국기를 만들고, 별도의 국가를 만들어서 국군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졌죠.
그 패배한 남부의 패잔병들이 ‘국군에 복종하겠다, 앞으로는. 통합된 미국에 충성하겠다.’ 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모자를 벗어서 자기 왼쪽 가슴에 올리는 그런 의례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미국에 여러 초등학교로까지 기본 의례로서 확산되었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을 우리가 받아들였던 겁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이런 식의 의례를 그럼 어디서 따 왔느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포함한 국민의례를 우리의 경우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이게 프로테스탄트, 미국식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의 종교의례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런 상상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종교의례가 국가에 대한 의례로 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신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실 한번 생각해 보죠.
옛날 사람들은 천재지변, 큰 사고, 개인적 불행, 이런 모든 것들을 하늘의 탓, 신의 탓, 신을 잘못 섬긴 탓, 전생에 죄를 많은 탓,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응했습니다.
그래서 원망을 해도 하늘을 원망했죠.
그런데 현대인들은 어떤가요?
이런 모든 일들, 집단적, 사회적, 개인적 불행이 생기면 어떻게든 그것이 국가 탓이라고 하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합니다.
국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 미래에 대한 우려, 걱정, 불안, 이런 것들도 국가가 해결해주기를 바랍니다.
이제 과거 신이 맡았던 일들 대부분, 의료서비스, 교육서비스, 복지 서비스,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일상에 들어와 있습니다.
근대이후의 국가는 옛날에 중세시대 또는 고대, 신이 담당했던 일들을 떠맡은 그런 실체입니다.
그래서 좀 더 능력이 강한 국가를 사람들이 기대하게 된 거죠.
민주주의국가는 그 주권자가 국민인 나라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모든 언론이 한결같은 기사를 내죠.
국민은 현명했다.
국민은 위대하다.
매번 반복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국민은 위대하고 현명하다’ 라고 칭송합니다.
신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그런 칭송의 언어가 집단으로서의 국민에게 향하는 거죠.
국민의 뜻, 이라고 하는 말은
또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하는 말은
오늘날 신의 뜻, 신의 명령과 완전히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 개인으로서 개인개인은 오류도 있을 수 있고, 잘못도 범할 수 있지만
전체로서의 국민은 절대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 무오류의 존재 지고지순한 존재로 취급되는 거죠.
대다수 종교가 천당과 지옥이라고 하는 사후세계를 설정하고, 이렇게 가르칩니다.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가고, 나쁜짓 많이 하면 지옥에 간다.
네, 천국과 지옥을 분리시키는 것이죠.
그런데 어떨까요?
천국의 법은 어떤 법일까요?
지옥이란 어떤 사회일까요?
착한 일 하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이 죽어서 가면 거기는 전부 착한 사람만 있지 않겠어요?
천국이 따로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냥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이 됩니다.
나쁜짓만 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지옥이라면
거기는 모두가 나쁜 사람이니까, 무슨 따로 염라대왕의 부하들이 괴롭히지 않아도 사는 것 자체가 지옥일 겁니다.
국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광화문 앞 광장, 넓은 길에 세종로라고 하는 이름을 붙인 것은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를 편 임금이 세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종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백성들을 아끼고, 백성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참고보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대가 왕조시대에는 가장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융성한 시대로 기억되는 곳이죠.
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나빴던 정치, 가장 나쁜 정치를 펼친 임금은 누구였든가요?
놀기 좋아하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자신의 탐욕을 시행하기 위해서 남의 권리를 짓밟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임금, 희대의 폭군 연산군 시대였죠.
중세에는 중세국가시대에는 주권자 왕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그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었다가 나쁜 나라가 되었다가 했죠.
그런데 지금 훨씬 더 국가의 힘이 커진 오늘날, 주권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국가의 성격이 바뀌지 않을까요?
보통의 국민들이 세종처럼 항상 공부하고,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 생각하고, 누군가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서 하고, 이러면 천국같은 나라가 되겠죠.
그런데 연산군처럼 놀기나 하고, 노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자기 탐욕을 실현하기 위해서 남의 권리를 짓밟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이 평균적 국민이 된다면 나라는 연산군의 나라, 지옥같은 나라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네, 좋은 나라 만들기
저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국가가 신과 같은 권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신과 같은 권능을 어떻게 줄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 평균적 국민들이다.
우리 스스로의 수준을, 그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 지적수준이나 경제적 수준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겠죠.
마음 씀씀이를 세종같이 갖고자 늘 노력하는 것, 그것이 좋은 나라 만드는 첩경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네, 전우용의 픽
마지막 회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시청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회차들도 KTV 유튜브로 계속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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