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식이 부모를 원망한다 할 때 자식이 왜 부모를 원망할까. 사실은 이 세상에서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사람은 부모밖에 없단 말이오. 그런데 고마워 하지는 못할지언정 미워해서는 안 되요. 왜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느냐? 이것은 내가 바라는 게 커서 그래요. 이웃집 부모하고 비교해서 제는 엄마가 이리해주던데, 제는 아빠가 이리해주던데, 또는 같은 식구중에 왜 오빠한테는 이리 해주고 나한테는 이리 안 해주느냐? 동생한테는 이렇게 하고 나한테는 왜 이렇게 하느냐? 비교해서 생기는 거요. 다시 말하면 부모가 자식은 손해 끼치는 사람은 없어요. 다 뭔가를 도와줘요. 그런데 내가 100을 원하는데 부모가 50밖에 안 해주면 원망이 생긴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면 첫째는 그것이 도리에 맞지가 않고. 즉, 은혜를 입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되니까 배은망덕한 사람이죠. 이게 이치에 맞지 않다. 두 번째는 부모를 원망하게 되면 어떠냐? 원망한다는 건 부모가 나쁜 사람이란 얘기거든. 그러며 그 나쁜 사람의 자식이란 말이다. 내가. 그러니까 내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없어져요. 이것은 생각으로는 안 그러지만 무의식세계로 마음에서 이미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없어진다. 열등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것은 자신을 헤치는 행위다 이런 얘기요. 그리고 이제 나이가 들었더라도 아직도 부모에게 옛날의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옛날에는 상처는 내가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랬다. 내 나이 들어 보니 ‘아 내가 몰라서 그랬구나.’ 이래서 그 부모의 은혜를 알면 상처가 치유된단 말이오.
그런데 나이가 든 지금도 부모를 원망한다 하는 것은 지금도 부모에게 바라는 게 있다는 거요. 그 바라는 게 첫째 재산가은거를 바라는 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금 질문하는 사람처럼 말을 좀 살갑게 해 줘라. 어떻게 좀 해줘라. 어릴 때 맞은 것만 해도 억울한데 지금 내가 이렇게 다 컸는데 지금도 야단치고 그러나. 아까도 말하는 속에 옛날에 성질대로 살더니 늙어서도 아직도 성질대로 산다. 이런 거란 말이오. 그런데 스님이 늘 얘기하잖아요. 이 사물에는 성질이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죠. 그러니까 댐을 위에 막고 우리가 밑에 살면 저절로 집에 물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 수가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까. 그런데 내가 위에 살고 물이 아래에 있을 때는 저절로 올 수가 없다. 그때는 끌어 올리는 수고를 해야 된다. 이게 물에 따른 원리란 말이오.
왜 저 집에는 물이 가만이 나오는데 우리는 끌어 올려야 되느냐? 이거는 물의 성질을 모르는 거다. 그럼 어른의 성질이 뭐냐? 어른이 되면 몸이든 마음이든 자꾸 굳어져요. 몸도 굳어지고 생각도 굳어져요. 그래서 잘 바뀌질 않아. 그런데 지금 이제 늙었으면 성질 그만 부리고 좀 살갑게 대해주면 어떻겠냐? 라는 건 뭐요? 누가 변하라는 거요? 부모보고 변해라 이 얘기요. 내가 변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부모보고 변해라. 아직도 안 변하나? 이런 생각을 한단 말이오. 그런데 이건 불가능 한 거요. 불가능 한 거를 내가 요구하면 결국 내 요구 되로 안되니까 내가 괴로워 지고. 이것이 다시 또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이것은 부모가 안 변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고. 내가 엉뚱한걸 바라는 데서 생긴 문제요.
그러니까 부모가 고함을 지대로 성질을 내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내가 볼 때, ‘아이고 옛날에도 성질 내더니 늙어서도 성질 안 죽고 아직도 내네. 아이고 지겹다.’ 이래 볼 수도 있고. 옛날 같으면 성질 내고 뺨따귀 때리는 게 왔는데 ‘아이고 우리 부모 늙어 성질 내는 목소리도 적어졌다. 힘이 빠지시네. 성질만 내지 이제 뺨도 못 때리시네. 쯧쯧쯧. 아이고 안됐다.’ 옛날에 왜 이런 얘기 있잖아요. 부모가 자식을 종아리를 때리는데 젊을 때 때리는 매의 힘하고 늙어서 때리는 매의 힘이 약하니까 때리는걸 문제 삼는 게 아니고 아이고 우리 부모님이 늙어가시는구나 하고 안쓰러워했다. 이런 얘기 들어 보셨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이거야.
그러니까 그 두 쪽에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도 좋은데 전자로 받아 들이면 내가 괴롭고. 후자로 받아들이면 부모님 성질 내는 건 똑같은데 내 마음이 편안하다 이거야. 부모를 위해서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해라. 나를 위해서. 그러니까 어릴 때 젊을 때 키워줘서 고맙다. 성질을 부리더라도 키워줬어 안 키워줬어? 뺨따귀를 좀 때리더라도 키워줬어 안 키워줬어? 예. 이웃사람은 뺨따귀도 안때렸지만은 키워주지도 안했어. 그럼 몇 대 맞고 10년 키워 주는 게 나아. 부모한테 몇 대 맞고 집에 사는 게 나. 안 맞고 고아원가서 사는 게 나아? 그리고 나도 애 키워보니까 애들 말안들으면 성질이 나요 안나요? 요즘 때리지 마라 해서 안 때리지. 성질대로 하면 북 패듯이 뚜드려 패주고 싶잖아. 거 조만하게 말 안 듣고 아 성질 나잖아 그죠?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거는 그냥 일반적인 문화요. 아주 특수한 사람 빼고 자랄 때 부모한테 안 뚜드려 맞은 사람 있어? 다 뚜드려 맞았어. 그런데 부모한테 맞은걸 갖고 원한을 삼으면 안돼. 부모한테 맞은 거 하고 스승한테 맞은 거를 원한으로 삼는 거는 어리석은 사람이오. 그러니까 그런데 어릴 때는 그게 문제 삼을 수가 있어요. 왜? 어린 거는 철이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나이 들어서 살아보니까. 아이고 우리 부모도 내 나이 때 그랬겠다. 아이고 엄마가 어떻게 애를 때리나 그랬는데. 나도 그 나이되 보니 엄마라는 게 별게 아니잖아 그죠? 그렇게 해서 요즘 보다 살기 어려운 시절에 애들 데리고 살려니 힘드니까.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어리석어서 몰랐지마는 지금 철들고 보니 부모마음을 이해하게 되니까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을 내라.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내 마음에 부모에 대한 자긍심이 생긴다. 이 부모에 대해서 감사해하고 내가 자긍심이 생기면 지금 부모가 성질을 내도 그 목소리가 옛날보다 못한 것을 그 힘이 옛날보다 못한 것을 오히려 안쓰러워 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다. 이렇게 부모하고의 관계를 내가 받아들이면 누구한테 좋다? 그러면 나한테 좋은 데로 하지, 꼭 나한테 손해날 짓을 뭣 때문에 해요. 어차피 부모하고 관계를 맺어야 되는데 이렇게 관계를 맺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돌아가신 뒤에도 누구한테 좋다? 나한테 좋은데. 부모하고 원망하고 싸우다가 돌아가시면 돌아가신 뒤에는 또 후회가 되요. 안 되요? 후회가 되요. 밉거든 돌아가신 뒤에도 가지도 말아야 되. 왜 살아있을 때 좋게 지내고 돌아가신 뒤에도 좋고 이렇게 안하고. 살아있을 때는 싸우고 돌아가신 뒤에는 후회하고 또 울고. 왜 이런 두 가지 이런 일을 하느냐 이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낳아주셔서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릴 때 내가 철이 없어가지고 은혜를 몰랐는데 이제 나도 나이 들어보니까 부모의 심정을 알겠습니다. 이렇게 첫째 기도를 하고. 지금도 악을 쓰고 악을 쓰고 하는 거는 노인은 그 성격이 변하는 게 아니다. 그 성격이 내가 변하기를 바라면 부모가 죽는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저게 천성이 변하는 거 보니까 죽을 때가 다 되가네. 이렇게 얘기 하잖아 그죠? 그러니까 천성이 변하고 빨리 죽는 게 나아요. 그냥 그 성질 가지고 좀 더 사는 게 나아요? 아이고 어머니 그 성질 가지시고 조금 더 건강하게 사세요. 이런 마음을 내세요. 이렇게 마음을 내면 지금 당장 좋아져. 이걸 뭐 애를 쓰고 노력해야 좋아지는 게 아니고. 생각을 탁 바꾸면 금방 좋아져요. 그러나 무의식세계에 상처가 있기 때문에 그 하시는 고함지대는 소리를 탁 들으면 순간적으로는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그럴 때 내가 탁 보면서 ‘어 내가 또 옛날 습관대로 돌아가려고 하는구나’ 알아차리고 내려 놓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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