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정견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3 - 일상은 그자리에서 펼쳐지는 그림같은 동영상

Buddhastudy 2024. 12. 12. 19:18

 

 

우리의 일상은

이미 그 자리 위에서 펼쳐지는

그림같은 동영상입니다//

 

 

깨닫고 나면

번뇌가 곧 보리(진리)라고 말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에

그 활동작용 그대로가

곧 진리의 활동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분별을 하니까

이건 번뇌이고, 저건 진리에 부합하다, 할 뿐이지

실제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분별과 나눔이 없으니

그냥 이 마음을 한바탕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있는 그대로 여법한 활동이요, 움직임입니다.

 

법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이래야 하는데 아직 아니니까 도가 덜 됐다 등등

당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한

지금 여기에 이미 완전히 열려 있는 이 공간에

스스로 베일을 치고 가리는

무지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참된 본성의 자리는

3차원을 품은 4차원적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없습니다.

 

그것이 있다고 착각함은

우리가 자기 몸을 나라고 여기는 착각에서 시작되는

정신적 상상력의 소산입니다.

 

깨달음은 항상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스스로 활짝 열려 있지 아니한 채

깨달음을 자꾸 단계화하고

지금은 부족하지만, 후에 완성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망상입니다.

 

왜 평상심을 도라고 했을까요?

평상심이란

우리 모두가 이미 두루 갖추어 쓰고 있는

이 마음 그대로를 말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 정견 함으로써

결판을 내야 합니다.

 

자꾸 수행 발전하는

나란 아성을 만들면 안 됩니다.

 

지금 나란 육체가 존재한다는 경험

생각과 감정, 감각, 느낌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경험들

모든 것이 다 어떤 배경 위에 생멸하는 것입니까?

 

그 배경이 되는 무한히 열린 공간

그 공간조차도 경험하는 미지의 존재

그것을 자각하고

그것으로서 존재하십시오.

 

마치 캠퍼스 위에 그림을 그리고

스크린 위에 동영상이 투사되어 비춰지듯

우리들의 일상은

이미 그 자리 위에서 펼쳐지는 그림 같은 동영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을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일상적인 자리가

단지 그 이름이 일상이고

지금 여기임을 정견하셔야 합니다.

 

그러할 때

깨달음이

홀연히 당신을 찾아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