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식과정(인지, 해석, 상, 결정, 기억) 전반에
나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는 관점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
1. 타인의 다름에 대한 스트레스가 낮아진다.
2. 자기이해의 구체적 대상 ㅡ 욕망이 파악된다.
3. 욕망이 죄우하는 현실에서 자신의 부자유를 깨닫는다.
4. 드러난 욕망은 힘이 약해진다
5.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된다.
6.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다(not demand but characteristics)//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는 일체유심조를 이렇게 이해할 때
마음공부에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일체유심조를 이렇게 우리가 해석했죠.
마음먹기 나름이다, 이런 게 아니고
세상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진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내 눈 앞에 펼쳐진 이 세계는 내가 구성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한다고 했었죠.
그러면 이것이 마음공부 혹은 자기 이해에는 어떤 도움을 주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남과 다르다는 것, 혹은 남이 나와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가 큰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틀렸다, 이렇게 생각되면서 긴장이 높아지고 불편할 수 있지 않습니까?
첫 번째 효과는
“각자마다 보이는 세상이 다르구나”
다르게 이야기하면
“비슷해 보여도 각자마다 다른 필드, 다른 장에서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치열한, 같이 생각해야 하고, 같은 판단을 해야 한다라고 하는 그런 것에 대한 요구가 좀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훨씬 스트레스가 줄어들죠.
두 번째는 자기 일을 한다, 공부를 한다고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대상이 있냐?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여기 일체유심조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자기의 구체적 대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뭐냐하면 인지과정, 해석과정, 상상하는 과정, 의사 결정하는 과정, 경험을 기억하는 과정, 이 5가지 과정 전체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 자신의 관심이 투영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정신적인 활동, 정신적인 작업의 모든 과정에서
나의 욕망과 관심사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나는 어떤 욕망의 구조를 가진 사람인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자기 자신이 순간순간의 어떤 기준을 갖고 행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가장 구체적인 자기 이해의 대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 말을 좀 뒤집으면
내가 어떤 욕망의 구조로 되어 있고,
그것이 나의 모든 인지와 해석과 상상과 결정과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표현으로 쓸 수도 있지만
또 다르게는
“나는 이런 것에, 이런 욕망과 관심에 붙잡혀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부자유하구나, 내가 자유롭지 않구나”라고 하는 인식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즉, 나는 인식 과정의 산물이다. 그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죠.
“아, 이것은 오히려 부자유를 의미하는 거다.
그러면 내가 자유로워지겠다라고 하는 의지가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의 이점이고요.
네 번째는 이 과정에서 나의 욕망이 체계적이든 산만하든 나의 욕망과 관심사가 드러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것은 힘이 좀 약해집니다.
즉, 다르게 이야기하면 이 욕망이 나를 너무 쉽게 뒤흔들지는 못하는 것이죠.
나도 이 욕망을 알만큼 아니까
파악된 것은 다룰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섯 번째로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욕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비로소 여기서 주객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거죠.
우리가 나이 좀 먹은 어른이지만 아이들 보면 그때그때 바라는 게 있으면 온몸으로 떼를 쓰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느끼잖아요.
“쟤는 지금 욕망이 쟤를 집어삼켰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우리도 그러고 살고 있겠죠.
그런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시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욕망의 주인이 되어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로 이런 과정을 통하면
욕망의 눈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욕망의 눈으로 본다는 것을 영어로 표현하면 not demand
있는 그대로 but characteristics 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심리학에서 평정심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느냐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이
“욕망, 욕구의 눈으로 보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특성들만 보자.”
판단은 조금 있다가 해도 된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과정의 자기 이해과정의 마지막에는
세상을 욕망의 눈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특성들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바둑이나 장기, 남한테 훈수 둘 때는 1~2급 더 올라간다면서요.
자기가 당사자일 때와 이해관계를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볼 때는
훨씬 보이는 게 넓고 깊어지는 것이죠.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그냥 “마음 먹기다” “마음 먹기 달렸다” 이런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나는 나의 욕망의 투영으로써 세상을 만들어 내고 세상을 본다”라고 해석하면
그것에 기준이 되는 자기의 욕망들을 잘 이해함으로써
이런 6가지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이 점차 자라난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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