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금 그림이랑 좀 연결해서 이해해보시면 좋겠죠. 참나는 공이에요. 왜냐? 에고의 세계에서 볼 때 공이에요. 참나가 뭐 없어서 공이 아니라,참나는 실존하죠. 그런데 우리가 아는 현상계. 생각감정오감과 시간과 공간과 나와 남이 갈라진 세계에서 볼 땐 없어요. 참나가. 지금 작용이 보이지 않아요. 그건 우리 차원에서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2차원에선 3차원이 안보이겠죠. 우리 차원에는 참나가 없다고 공. 허공이라는 공을 빌려다가 표현한 겁니다. 없는 존재 같다. 이 현상계에선 참나의 작용이 안 보인다. 라고 해서 공 그러는 것뿐입니다. 그 자체가 없어서 공은 어닙니다. 실존하는 존재고 오히려 우주를 굴리는 존재인데 현상계에서 보이지를 않아요. 작용이 보이지를 않아요.
이해되시죠? 뭐가 와서 뭐가 있어서 이 물건을 자꾸 떨어뜨리는지 보이지를 않아요. 과학적으로 못 풀어요. 중력하나도 과학이 못 풉니다. 명쾌하게 못 풀어요. 왜 이 현상이 일어나는지. 다 공에, 불교식으로 하면 공에서 그냥 공이 아니죠. 그래서 진공묘유라 그러죠? 진짜 공같은데 거기 묘한 게 있다. 왜냐? 우주가 그 법계대로, 그 공에 원리대로 우주가 돌아가거든요. 그 공에 아무것도 없으면, 이 참나가 텅 빈 존재이면 에고를 어떻게 경영합니까? 봄이 오게 하고 가을이 오게 하고 겨울 오게 하고, 이런 일정한 법칙들이 다 이게 여기서 나와요. 그래서 만법, 만법이 다 공에서 나왔다 하는 겁니다.
공이 그냥 없는 게 아니라서 그래요. 여러분이 만약에 공 생각 할 때 텅 빈 뭔가를 생각했다면 그건 상이에요. 참나가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냥 그 공이라는 생각일 뿐이지 그 공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진짜 공은요, 여러분이 감지할 수 없는 더 초월적인 영역을 말합니다. 그 영역에 있는 정보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실험을 해봐야 알아요. 이걸 자꾸 떨어뜨려봐야 “공에는 만유인력이 들어있구나.” 하는 걸 알아요. 또 우리가 사랑을 펼쳐봐야 “아~ 공에는 남을 사랑하라는 원리가 들어있구나.” 또 정의를 구현했을 때 우리는 “공에는 정의가 옳다고 하는 그런 법칙이 들어있구나.” 이렇게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공을 이해합니다.
즉 에고가 없다면요, 공도 무의미해집니다. 이런 초월적인 영역이 에고를 만남으로서 우리가 사는 인생이 만들어져요. 이 2세계가 안 만나면 인생이란 뭐 없어요. 공만 있다면요, 공만 있다면 여러분과 제가 어떤 경험을 할 수가 없죠. 예. 그런데 에고가 있기 때문에 각자가 각자대로 공을 경험하면서 거기에 대한 수많은 글을 남기고, 또 그걸 가지고 뭔가 작품을 만들고, 표현하고 하면서 이 우주사가 펼쳐집니다. 우주사가 돌아가려면 시공이 돌아가야 되는데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에고가 있어야 되요. 에고가 있을 때 에고와 이 공의 만남이 우리 인생에 사실은 전부죠. 이 만남을 아름답게 몰고 갔을 때는 성인이 되는 거고, 아름답지 않게 몰고 갔을 때는 아주 악인이 되는 거구요.
이런 식으로 이해해보시면 공이 그냥 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공이 알아차리고 있어요. 무서운 건, 이 공이 알아차리고 있고, 알아차리고만 아니에요. 공이 우리를 끌고 가요. 그런데 에고가 무지와 아집이 심하면요, 이 공을 못 느끼고 삽니다. 안 보이는 거니까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막 살아봐요. 막사시면 일정한 인과가 계속 발생합니다. 만약에 공이 그냥 터빈 존재라면요, 내가 남한테 아무리 욕을 해도 나한테 그 과보가 돌아오지 않아야 되잖아요. 그냥 공이라면요, 그렇지 않아요. 그 카르마 법칙이 공이 집행하는 무서운 법칙이 있습니다. 텅 빈 거 같지만, 카르마 법칙을 냉정히 집행하기 때문에 에고가 벌인 일에 대해서 청구서가 그래도 날아온다는 겁니다.
이게 그냥 공이라고 봤을 때는 이해가 안 되죠. 그리고 이 공만 있다고 했을 때도 의미가 없죠. 에고가 있기 때문에 이 공도 작용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지금 우리 실존이에요. 제가 그래서 이런 그림도 그려드려요. 여러분이 그냥 나라고 하지만요, 나. 똑같은 난데, 여러분의 나의 한쪽 면은 공의 영역이에요. 한쪽은 우리가 불공이라고 그래요. 불공의 영역. 두 영역을 다 갖고 있어요. 나라고 할 때 공의 영역의 나는 절대계죠. 여기에서는 시공간이 없어요. 시공이 없고 오직 존재하고 오직 알아차릴 뿐인데, 이 불공의 영역. 현상계의 영역. 공하지 않은 현상계 영역에 들어오면 이 나는 생각하는 나고, 감정을 갖고 울고 웃는 나고, 오감 작용을 보고 듣고 만지고 하는 나에요.
현상계 시간공간속에서 작동하는 나와 시공을 떠나있는 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걸 이해하시기 쉽게 이 나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나는 아바타에요. 여러분이 어떤 게임에 접속에서 그 게임 속에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서 게임을 하시죠? 그 게임 옷도 사 입히고, 뭐~다 합니다. 이게 나에요. 지금 여러분 옷 입고 계신 게요, 여러분 아드님이 집에서 게임 캐릭터 키우고 있는 거와 똑같은 겁니다. 자기는 못 먹으면서도 막 캐릭터는 휘황찬란한 거 입혀놓고 뿌듯해 하는, 그렇게 아바타랑 동일시하고 있죠. 자기를. 예. 여러분도 그냥 에고인줄 알고 살아가시는데, 한번 자각해 보세요.
나는 게임 속에 나는 나의 아바타지 나의 참나는 아니다 하는 걸 자각할 수 있으면 되요. 지금 이걸 살아서 자각하시면 깨어서 자각하시면 생시에 여러분이 깨어났다고 하는 겁니다. 지금 이 몸과 마음과 이 감정과 생각이 참나의 작용이라는 거, 참나의 아바타라는 걸 아셔야 되요. 참나는 훨씬 심오한 영역이라는 걸아시면, 나의 근원적인 영역은 우주의 신하고 맞닿아있는 대게 심오한 영역이다. 이걸 자각하실 때 우리가 깨어있다고 하는 겁니다. 견성했다. 이걸 알 때 견성했다. 이걸 알고 살아갈 때 우리가 견성자라고 합니다. 確哲大悟확철대오했다. 견성, 이런 건 가능하겠죠.
어쩌다가 한번 나라는 게요, 생각감정오감을 일으키고, 게임 안에서 열심히 돌다보면 그 세계에 심취해서 그게 전부인줄 알고 살아요. 그러다가“아~ 나는 캐릭터가 아니지” 하고 한번 자각하듯이 아~ 나는 생각감정오감을 내려놓고 이걸 [몰라]해버리면요, 탁~ 나의 본질이 들어나요. “나는 이런 현상계 안에서 오염된 존재가 아니고, 나는 청정한 존재지.”라고 일시적으로 한번 자각을 하면 우리가 참나를 일별했다고 그럽니다. 일견했다. 일별했다. 그런데 이걸로는 안 돼요. 늘 나를 자각하고 게임을 할 수 없으면요, 게임 하다가 잊어버리는 거잖아요. 또 내가 그 게임 속에 내가 난지 알고 또 게임을 하고 계시면, 여전히 지금 정신을 못 차리시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자꾸 돌아보는 연습을 하다가 나중에 확철대오는 뭐냐 하면요, 선불교에서 안 잊어버려요. 게임을 하면서도 나와 이 아바타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에고를 쓰고 사시면서도 나의 근원이 본래 공하다는 걸 알고 사신 다면요, 이거를 머리로 아는 게 아닙니다.머리로 알면 여러분 계속 잊어버리실 거예요. 아~ 그렇지. 공이지. 아~ 그렇지. 공이지. 이렇게 하시는 게 아니고, 나라는 존재감 자체가 본래 그 참나. 공의 영역이라는 걸아시고, 지금 내가 존재한다는 거 느끼시면서 제 얘기 듣고 계신가요? 아님 제 얘기에 그냥 빠져 계신가요? 제 얘기를 듣는 자신에 빠져계십니까?
아니면 제 얘기를 듣는 자신 너머에 있는 나라는 순수한 존재감을 느끼십니까? 같이 느끼십니까? 같이 안 느끼시면요, 아직 계속 연습을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공과 에고를 같이 굴리실 수 있을 때 여러분이 완벽한 경지도 아니에요. 이제 참나를 좀 알았다. 하는 경지입니다. 이제 게임을 제대로 할 좀 자질이 갖추어졌다. 그다음에 본격적인 게임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에고가 참나의 안에 있는 무한한 공하지 않은 무한한 좋은 능력들을 잠재력을 계속 해서 에고가 구현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의 인격이 계속 변하고, 여러분의 재능이 더 계발될 때 여러분은 이제 게임을 잘 한다.
인생이라는 게임을 정말 잘 수행하고 있고, 그랬을 때만, 여러분이요, 훌륭한 인생을 사시지 않는다면 인생이 뭔지 말하실 수가 없어요. 실제로.여러분이 진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아십니까? 진짜 인간으로 참나가 원하는 진짜 인간으로 살아보지 않는 한은요, 인간이 이런 존재다. 라고 말하실 수 있을까요? 안 살아보고는 말 못해요. 인간, 그러면 내가 한 걸 떠올렸더니 맨 먹고싸고 먹고싸고, 인간이 이러진 않을 거 같은데. 진짜 인간은 뭘까 하면요, 참나의 뜻을 온전히 구현했을 때 우리가 그렇게 살았을 때 인간은 이런 존재다. 이러라고 만들어진 거라는 말을 할 수가 있듯이. 지금 우리가 이걸 섣불리 얘기하기보다는 이정도 알고 나날이 하루하루 그 여러분의 삶속에서 한 번 더 실험을 해보세요.
그랬을 때 여러분의 이해가 조금씩 더 성숙될 거라고 봅니다. 그랬을 때 조금씩 조금씩 인간이란 뭔지, 인생이 뭔지에 접근해가는 거지. 누구도 지금 완벽하게 “인생은 뭐야?” 이렇게 단언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본인이 격은 만큼 이해한 만큼 좀 더 수준 높은 식견을 가지시게 되겠죠. 더 높은 지혜를 자기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높은 지혜를 가지신분 얘기를 듣고 싶은 거고요, 참고하게요. 완벽하다고 말할 순 없다고 봅니다. 그분도. 왜냐? 그분마저도 또 더 좋은 경험을 또 통해서 끝없이 배워 가실 테니까요. 으흠.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배움을 서로 공유하면서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생을 이런 측면에서 접근해보자고 저도 말씀드릴 수 있지. “이겁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죠.
그래서 각자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시면서 각자 느낀 경험들을 공유하다보면요, 우린 서로를 또 도와주면서 인생이 뭔지에 대한 또 우리 학생의 자세. 배움의 자세로 갈 때 그 우리가 훨씬 인생의 본질에 대해 접근하겠죠. 이렇게 좀 생각을 하시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네.
'윤홍식 > 윤홍식_즉문즉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58. 윤홍식의 즉문즉설 - 나에 대한 몰입 (0) | 2013.07.28 |
---|---|
57. 윤홍식의 즉문즉설 - 에고는 어디까지 닦아야 하는 것인가요? (0) | 2013.07.28 |
55. 화엄경 강의 중 발췌 - 무명과 유마경 (0) | 2013.07.21 |
54. 마야, 신의 작용 - 성통공완_윤홍식 (0) | 2013.07.14 |
53. 법공 法空 - 신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다_윤홍식 (0) | 2013.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