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말로 하면 참나에서 진선미가 나온다고 하거든요. 이런 말 쉽게 쓰시는데, 왜 그런지 보십시오. 우리 에고의 세계, 에고의 세계에 뭔가 들어와요. 어~ 1+1=2다. 이런 정보가 들어왔어요. 여러분 참나가 맞다라고 해 주는 건 참나입니다. 진리인지 아닌지 인가해 주는 건 참나가 해줘요.여러분은 뭐가 진리인지 아닌지 인가할 힘이 없어요. 에고는. 1+1=2다. 이거 어떻게 생각하느냐? 했을 때 내면에서 ‘맞다’라는 느낌이 울리면 참나가 인정을 해주면 여러분은 맞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선도 그래요. 어떤 행위에 대해서 선하냐? 악하냐? 내면서 선하다고 울려줘야 되요.
내가 친구한테 이러이러한 밀을 했다. 선하냐? 선하다. 사단분석을 해보니 선하다고 나와줘야 되요. 여러분한테 어떤 산, 멋진 산천을 보여줬다.아름답다고 안에서 나와야 되요. 안에서 안 나오면 이게 인가가 안 됩니다. 이걸 다 줄여서 한마디 하면 뭡니까? 진선미를? 자명이라고 할 수 있죠. 진리에 있어서 자명 하냐? 옳고 그름에 있어서 자명 하냐? 자명하게 옳으냐? 아름답고 추함에 있어서 자명하게 아름답냐? 이 진선미가요,참나 차원에 가면 하나입니다. 에고 차원으로 내려오면 쪼개져요. 감정 따라 아름답다고 느낀 게 틀리겠죠. 여러분 기질 따라 다 틀려요.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누구는 클래식을 들어야 되고, 누구는 팝송을 들어야 되고, 누구는 뭐~ 국악을 들어야 아름답고 느끼고. 이거는 그분의 기질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그 기질 너머에서 뭐가 아름답다고 해주고 있나요? 참나가요. 모든 에고를 넘어서 진선미가 있다고 아시고. 진선미는 둘일 수가 없죠. 참나자리에서 나오는 근원적인 울림이기 때문에 여러분이요, 이런 말 기초적인 어떤, 말초적인 학문이나 말초적인 예술을 다 넘어가서 근원에 들어가면 참나에 가까이 갈수록 진선미가 하나로 모아집니다. 그게 뭐냐 하면 육바라밀이에요. 사실은. 그래서 어떤 분야의 학문을 하건 예술을 하건요, 근원에 들어가면 뭐가 되어있냐 하면 철학자기 되게 되어있어요.
나중에는 근원적인 진선미에 대해서 연구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적인 조건의 아름다운 그런 게 아니고요. 우주에서 근원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걸 탐구하기에 들어가요. 탐구해가요. 그게 뭐냐 하면 육바라밀에요. 인간이 육바라밀을 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 에고를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을 해요. 이해되시죠? 그러니까 처음에는 어떤 그림을 봤을 때 어떤 풍경을 봤을 때 아름답다는 느낌을 느끼는 게 좋아서 미를 자꾸 추구하다가 마지 막가면요, 우주의 미를 추구하는 거예요. 내 에고의 조건을 넘어선 미. 어떤 미를 추구했을 때 내 에고가 가장 신성해지고 아름다워질까?
그렇게 들어가다 보면요, 결국 레벨1로 들어옵니다. 레벨1 전에는요, 어떤 학문을 해요. 어떤 분야의 달인이에요. 어떤 분야의 아주 뭐~ 진리를 알아내는데 달인일 수도 있고, 옳고 그름을 잘 실천하는 달인일 수도 있고, 예술 쪽에 달인일수도 있는데,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참나 자체의 진선미를 탐구하게 되고 그렇게 됐을 때 참나 자체가 지닌 이런 진리들과 이런 선함과 이런 아름다움의 이 조화에요, 뿅 가게 됩니다. 그때 진짜 환희가 터져 나와요. 우주는 신이 이룬 거구나 하고 알게 되요. 그래서 세속적인 걸 넘어가게 됩니다. 이게 모든 동서양철학에서 예술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진리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들에 어떤 귀결입니다.
1레벨 들어가기 전에 일어나요. 그래서 여러분도 보시면 유명한 가수인데, 오랜만에 TV나왔다 그러면 철학을 얘기하기 시작해요. 인생이 어떻고. 아니면 문을 열심히 만드신 분이 나한테 인터뷰를 하잖아요. 장인. 무형문화재급들한테. 인생이 문이더라고 하면서 이상한 얘기를 하기 시작하세요. 그분들은 자기 분야를 통해서요, 우주의 근원적인 진선미를 보기 시작하는 겁니다. 본격적으로 진선미를 탐구하기 시작하는 길에 들어 선 분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1지 보살은 진짜로 본격적인 입문이 됐다는 겁니다. 이때부터는 이제 세속적인 걸 추구하기보다 자기 안에 있는 진선미를 어떻게 더 내 에고라는 작품. 에고가 이제 재료가 되요.
이해되시죠? 예술의 재료가 되요. 진리를 표현한 재료가 되요. 내 에고에 뭐가 재료가 되나요? 에고의 생각, 감정 오감을 재료로 삼아서 생각을 지혜로, 감정을 자비로, 오감을 능력으로 이걸 통해서 자기 참나가 지닌 진선미를 지혜와 자비와 능력으로 하나씩 표현해 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도 표현하고 계세요. 작가세요. 다. 여기 계신 분들요. 여러분들은 다 조금씩 보살이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보살에 입문을 하시려면 한참 파 들어가야 되지만. 이미 여러분 안에 불성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참나가 돌아가서 진선미 아시잖아요. 제 얘기 듣고 ‘맞다’ 하시잖아요.그러면 그 순간순간 보살들이세요.
아름답다고 아시잖아요. ‘옳다.’ 하시잖아요. 그런데 그 아름답다 에요. 에고의 욕망이 잔뜩 묻어있으면 그 아름답다가 왜곡되겠죠. 맞다 하는데요, 뭔가 그게 맞는 거 같아 하는데 에고의 욕망이 잔뜩 묻어있을 때 우리가 맞는다고 하는 건 덜 미덥죠. 그런데도 맞다 하는 건 참나라는 걸 아셔야 되요. 참나가 욕망에 가려져있기 때문에 왜곡됐을 뿐이지. 더 캐들어 가면 근원에서 맞다고 하는 느낌, 근원에서 아름답다라고 외치는 그 느낌을 추적해 들어가면 우리 참나 밖에 없다는 걸 아셔야 되요. 에고는요,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 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에요.
에고는요, 긴가민가하는 자리지 “이거야”라고 의심 없이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애초에 아니에요. 에고는 의심하는 자리에요. 그냥. 여러분이 혹시 긴가민가 상태시면 에고상태에요. 탁 명확하셔서 한 점 의심이 없어지면 자명해지면 참나상태에요. 자명하게 맞다_진. 자명하게 옳다_선. 자명하게 아름답다_미. 진선미가 다 참나로 부터 나옵니다. 그걸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 진선미의 근원이 참나라는 걸 알고 참나가 육바라밀로 돌아가기 때문에 온갖 진리와 선함과 미를 다 갖고 있다는 걸 아실 때 육바라밀 이 순간에 실천하는 이유가 뭣 때문에 실천하시겠습니까? 진리니까. 옳으니까. 그게 제일 아름다우니까요.
지금 제가 육바라밀 어기는 거는 아름답지 못하다는 걸 아셔야 되요. 이 순간 누군가한테 피해를 주고 남한테 괴롭히고. 그렇죠. 남의 걸 빼앗고.보시를 어겨보세요. 남의 걸 빼앗고, 계율을 어기고, 받아 들이여 되는데 못 받아들이고, 나태하고, 마음이 혼란스럽고, 지혜롭지 못하면 이게 아름답지 못하잖아요. 아시겠죠? 이거 아름답지 못하다는 거 아시겠죠? 참나가 아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는 게 아니에요. 에고는 “그런가?” 하는 자리에요. “꼭 그러면 안 되나?” 이런 게 에고입니다. 맛이. “이게 예쁘다고?” 이런 게 에고구요. “와~” 하는 때는 참나가 여러분 내면에서 발현 할 때는 의심이 사라지고 명확해집니다.
그러니까 훌륭한 예술작품은 훌륭한 철학 경전. 훌륭한 작품들은요, 뭘까요? 여러분 마음에서 빨리 진선미를 끌어내는 것들이에요. 이 얘기를 들으면 여러분이 맞다 해버리시기가 좋게 만들어진 것들을 우리가 작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진선미를 효과적으로 끌어내지 못하면 여러분이 진선미를 느낄 수가 없잖아요. “아름다운 그림을 좀 그려봐.” 이게 뭔 말인지 아십니까? 내 안에 있는 진선미를 자극 시켜서 빨리 끌어 나오게 만드는 그런 작품을 나한테 보여주란 뜻입니다. 진선미는 본인 마음에 있거든요. 미가 그림에 있는 게 아닙니다.
미는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데 내 마음속에 있는 그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자명한 감각. 느낌을 불러일으킬 조건을 나한테 만들어주라는 겁니다. 또 뭐죠? 진리에 있어서는 뭐죠? “내가 자명하게 옳다.” 라고 할 말을 나한테 좀 해줘 봐. 이 얘깁니다. 그렇죠? 철학자는 그걸 해줘야 돼요.철학자는요, 여러분들이 들으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진리와 선함에 대해서 얘기 할 수 있어야 되고. 철학자는 일단 진리 쪽이죠. 선하다는 건요,행동으로 보여줘야 됩니다. 그게 옳다 하는 걸 보여줄 때 선, 그러고요.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서 예술 작품을 통해서 여러분 안에 있는 근원적인 아름답다하는 느낌을 끌어낼 수 있으면 우리가 작품이라고 하는 거죠. 예술이다. 하는 겁니다.
인간이 여기서 조금도 못 벗어나고 살고 있다는 걸 아셔야 되고, 여러분 안에 진선미는 여러분 마음속에 늘 있다. 참나 속에 늘 있다. 그 진선미를 표현하고 싶어서 육바라밀로 표현하면, 그게 우주에서 최고의 작품이라는 걸 아시는 분들이 보살이라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이렇게 보살을 한번 이해해보시기 바랍니다. 1지 보살은 여기까지 알았어요. 뭐가 제일 아름다운지 알고, 뭐가 제일 진리인지 알고, 뭐가 제일 선함인지 알아서 환희를 했고요, 그 정도의 영성지능 얻었습니다. 뭐가 옳은지는 알아요. 이제. 육바라밀을 해야 된다는 걸 너무 실감나게 알았기 때문에[ 1지 보살은 언제어디서는 육바라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환희지는 다른 이름으로 뭐였죠? 정신지. 마음이 청정한 자리. 그 마음이요, 이 참나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해진 자리를 뜻합니다. 그런데 행동까지 청정해졌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참나가 뭔지 알아서 그 마음이 청정한 그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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