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구르지예프의 존재수준 (1/2)

Buddhastudy 2025. 1. 6. 20:15

 

 

게오르게 이바노비치 구르지예프

깨달음 공부를 하면서 지나쳐 가기 어려운 이름입니다.

하지만 워낙 정보가 제한돼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도 아닙니다.

 

그에게는 고대의 지혜를 발굴해 소개한

영적 스승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파격적인 방법과 기괴한 행적의

흑마법사라는 의심도 평판에 있습니다.

 

저는 오쇼 라즈니쉬의 저서 속에 인용된 몇몇 장면들을 통해

그를 처음 접했는데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게 만든 것은

그가 서양인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었고

수피즘, 신지학, 오컬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가 직접 쓴 책으로 우리나라에 출판된 것은

나와 있는 책으로는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유일한데

사실 책의 내용은 자신의 행적에 관한 것이라

그가 가르친 내용을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가르침에 대한 내용은

그의 제자였던 우스펜스키의 저작 밖에는 없습니다.

 

출판된 책 중에 제가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가르침을 찾아서>였고

나머지는 모두 알음알음으로 정리된 인터넷 정보들이었습니다.

 

우스펜스키의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태라

책 제목만 들은 분이 많을 겁니다.

제가 구르지예프를 연구해 보겠다고 했던 적은 없지만

그의 가르침 중에 특정한 내용들은 우리가 참고해 볼 필요가 있고

그중 하나가 존재의 수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는 인간이 발전하는 데는 두 개의 길이 있다고 말하며

-그것이 지식의 길과

-존재의 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지식이 무엇인지

그 수준이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지식이 크거나 적고, 그 질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는데

존재와 관련된 지식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용어가 우리 일반적인 것과는 좀 다르게 사용되는데

제가 번역된 책만 알고 있는 사정상

일단 다른 해석 없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존재라는 것이

단순히 비실재에 반대되는 실재를 의미할 뿐이고

존재나 실재가 매우 다른 수준과 범위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존재라고 하는 것을

구르지예프는 뭐라고 설명하는 것인지 조금 더 들어보죠.

 

구르지예프는 사람들이 존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절대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특히 당시 서 사회에서

이런 풍토가 강했다고 말하면서 예를 듭니다.

 

예컨대 유능한 과학자는

위대한 지식을 소유함과 동시에

인색하고, 비열하고, 우쭐대며, 질투심이 강하고, 고지식하며

트집을 잡거나 얼빠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존재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인간의 지식수준에만 큰 관심을 둘 뿐

인간의 존재 수준에는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사람의 인격이나 품위를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뒤이어 그런 존재의 수준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 수준이 낮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존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나아가 인간의 지식은

그의 존재 수준에 의존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가 말하는 지식과 존재는 단어 자체로는 감을 잡기가 어렵지만

설명을 들으면 존재라는 것이

단순한 인격, 품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지식과 존재 간의 균형이 이들 각자의 발전보다도 더욱 중요합니다.

 

지식이 존재보다 무겁다면

알고는 있으나 실행할 힘이 없습니다.

그것은 쓸데없는 지식입니다.

 

반면 존재가 지식보다 무겁다면

실행할 힘은 가지고 있으나 알지 못합니다.

즉 어떤 것을 할 수는 있으나 무엇을 할지를 모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지식이 존재보다 무겁거나

존재가 지식보다 무거워

운명이 사라져 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이해를 위해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는 허약한 요가 수행자와 멍청한 성자를 비교하며

존재와 지식의 균형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존재의 길 없이 지식의 길이 발전하면

허약한 요가 수행자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많이 알고는 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인식 능력이 없는 사람

즉 한 가지 지식과 다른 한 가지 지식 간에

아무 차이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지식 없이 존재의 길이 발전하면

멍청한 성자가 됩니다.

예컨대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나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만약 그가 어떤 일을 한다면

자기 주관적인 감정으로 행동함으로써

일을 그르치게 되고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가 말하는 존재라는 것이

일종의 영성지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즉 존재 수준이란

지식과 상대적인 영역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형성과 실행력을 가진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켄 윌버의 구조-상태 모델이나

데이비드 호킨스의 Power- Force 대비를 통해 그런 개념을 본 적이 있죠.

 

즉 존재수준이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난 각성의 힘을 말합니다.

 

인간이 분별을 통해 규정하고

논리를 통해 이어붙인 것이 생각의 틀

즉 지식이라면

그루지에프의 존재란

이런 생각의 틀을 벗어나

세계의 연기적 형성과 이론적 맥락에 설 수 있는 능력

한마디로 각성의 힘을 의미한다는 것이 저의 해석입니다.

 

허약한 요가 수행자나 멍청한 성자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을 균형 잡으려면 이해가 필요한데

지식과 이해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지식 자체가 이해를 주지는 못합니다.

즉 지식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는 지식과 존재와의 관계에 의존합니다.

 

이해란

지식과 존재의 결과물입니다.

지식과 존재가 함께 성장해야 변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와 지식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 정도로 간략하게 구르지예프의 존재

존재 수준에 대한 설명을 살펴봤는데요.

켄 윌버의 구조와 상태에 대한 구분과도 일맥이 상통합니다.

 

그가 20세기 초반에 살았던 사람이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접목되는 동유럽이라는 지역에서 성장했으며

스스로 방랑에 가까운 체험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체득했다는 면에서

그 이론 설명은

특정한 종교나 철학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포괄적인 당대의 영성에 대한 설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대 문명에서 존재 수준의 가치와 중요성은

완전히 상실되었습니다.

지식의 수준은

존재의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 역시 망각되었습니다.

 

실제로 어떤 주어진 존재의 한계 내에서

지식의 질은 변화될 수 없으며

단지 동일한 성격을 가지는 정보의 축적만이 가능합니다.

지식의 성격이 변하려면

존재의 성격이 변해야 합니다.

 

특히 구르지예프는 존재 수준이 낮은 상태의 사람을 기계라고 표현하면서

분석과 제어에 필요한 것은

기계 역학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내연기관과 자동차가 출연했던 당시에는

사람이 기계라는 말이 기이하게 들렸겠지만

AI가 출연한 요즘 들으면

이 기계적이라는 말은

인간의 즉자적인 사고와 행동을 묘사하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느껴집니다.

 

일반적으로 현대인은 존재의 질이 매우 떨어집니다.

어떠한 변화도 가능하지 않은 나쁜 질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 변화할 수 있는 존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병이 깊이 들어 고장난 기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과는 아무것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왜 적은 수의 사람만이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가 그것을 막는 것입니다.

 

존재를 쉽게 말하면 I AM입니다.

생각으로 살고 있지 않은 각성 상태이고

이것의 궁극이 곧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대원경지입니다.

 

이것에 수준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음 지도의 처음부터 계속 강조해 반복하고 있습니다.

굳이 켄 윌버, 데이비드 호킨스, 대승기신론을 들지 않더라도

현대 심리학에서조차

심리적 성숙의 수준을 말할 정도입니다.

 

우리는 현대 문명의 수혜를 받으면서

발달 수준이나 성장 단계 같은 개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이 일반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며

현재도 다양한 접근 방식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버전으로

지각, 인식, 심리 수준에 대한 설명들을 만날 수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같은 것이죠.

 

그런 점에서 구르지예프의 존재의 개념과 존재 수준에 대한 설명을 참고해

대승기신론의 깨달음 단계나

켄 윌버의 구조 상태 모델을 이해하면

조금 더 내용을 풍부하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다음 동영상에서는 구르지예프가 직접 설명한

인간의 수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