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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THATch] 선과 깨달음, 읽어야 들을 수 있다

Buddhastudy 2025. 1. 15. 19:22

 

 

선이라는 말의 어원은

인도의 디야나라는 말을 음차한 것으로

한자로 선나이고

뜻으로 번역한 말인 정()을 합해

선정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오래된 말입니다.

 

이 말이 뜻풀이까지 해야 하는 복잡한 용어가 된 것은

후대로 가면서 많은 입장들이

서고 갈라지고 합치고를 반복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우리가 이 역사까지 다 알려면

불교학자나 선가의 학생이 되는 것이 맞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간단하게나마

우리가 왜 선불교라고 따로 이름을 지어 부르는가 하는 것은

이해하면 나쁠 것은 없는데

물론 이 내용도 정리하는 방식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분량이 될 수 있어서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선은 마음의 집중과 통일을 통해

진리를 알고 자유를 얻는 요가

즉 수행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불교라고 하면 떠올리는 좌선은

말 그대로 앉아서 하는 명상입니다.

행선은 걸으면서

입선은 서서

와선은 누워서.

 

뭘 누워서 한다는 거죠?

, 마음의 집중과 통일을 하는 겁니다.

선의 방법이 너무 많다 보니

선이라고 하면 자꾸만 방법을 떠올리지만

뭘 하든 마음의 집중과 통일을 하면

그게 선입니다.

 

불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 네 눈앞에 있느니라

눈앞에 있다면 저에게는 어찌하여 보이지 않습니까?”

너에게는 너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느니라

스님께서는 보셨습니까?”

너만 있어도 안 보이는데

나까지 있다면 더욱 보지 못하느니라

나도 없고 스님도 없으면 볼 수 있겠습니까?”

나도 없고 너도 없는데

보려고 하는 자가 누구냐?”

 

무엇을 하든 보려는 것이 선입니다.

그 방법 때문에 구분되기도 하고

단계와 수준 때문에 구분되기도 합니다.

 

저는 주로 글로 된 선문답이나 선시를 들어 선을 전하고 있습니다만

지나간 모든 교화선을 다 써먹을 수 있는 입장이라

무슨 선이냐고 물으면

다 선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이름도 어려운 달마선, 능가선, 조사선, 여래선, 간화선은

이미 지나간 불교의 역사에 있는 것이고

사실상 지금 불교가 융성하는 중심은

인도도 중국도, 티벳도, 미얀마나 태국, 한국이나 일본도 아닌 미국에 있는 마당에

계파를 따지면 그게 정말 선문답 같은 소리가 됩니다.

 

모양과 차림새를 갖추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지금은 알겠느냐?”

 

바로 지금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한때 조동종의 좌선 묵상을

금지옥엽의 신행으로 삼은 적이 있습니다.

무조건 앉기, 가만히 앉기, 어쨌든 앉기,

허리, 척추도 별로 안 좋은 사람이

앉아 있기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정통이라고 하니 받아들였죠.

 

물론 지금도 시간이 나면 좌선을 합니다만

좌선 묵상이 끝나면

곧바로 생각과 친해져 명상을 잊어버린다면

그런 좌선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안 하는 것이 낫습니다.

 

무시선, 무처선이라고

시간과 장소를 잊어버려야 진짜 선입니다.

바로 지금을 알아야 합니다.

 

엽자호단출, 붓끝에서 살아난 잎

금비지면생, 땅 위에 돋지 않는 뿌리

원래무견영, 달 떠도 그림자는 없고

풍동불문성, 바람에도 들리지 않는 소리

 

좌선 묵상을 하면 말을 잇는 듯합니다만

실제로는 일어나는 온갖 대화 담화들이

마음을 차지하기가 쉽죠.

 

그래서 좌선의 척도는

그런 말들이 얼마나 끊어졌는가 하는 것으로 삼기가 쉽습니다.

이른바 생각이 끊어진 정도입니다.

 

생각은 잘 안 끊어지는데

말이 없는 말도 있습니다.

생각이 없다는 생각이죠.

우리는 그것을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진정한 침묵은 늘 있기 때문에

내 말이 끊어진다고 갑자기 드러나는 침묵은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 함이 없는 것입니까?”

이것은 함이 있는 것이다.”

 

함이 있거나 없거나 살필 수 있는 것이 선입니다.

허공에는 좌표를 찍을 수 없지만

우리 마음은 이 기준이 왔다 갔다 하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른바 마음이 흔들리죠.

 

그래서 선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초 학습이 필요하고

연기법과 유식론의 이치와 원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억지로 마음을 멈춘다고 진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멈추게 되는 이치와 원리를 이해해야

헛발질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이론 공부와 명상 수행을 연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부류였죠.

둘 중에 하나만 하면 안 되나?”

매번 의문이 솟을 정도로 어려워하는 부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추구하는 선이 다 선이 된 것은

결국 둘이 회통을 해야만

진짜가 되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선일체, 정혜쌍수, 지관겸수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온갖 중생이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다 하니

어떤 것이 날마다 쓰는 것입니까?”

특별하게 대답한들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우선 특별하게 대답할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이치와 원리입니다.

특별하게 일러준 것을 익혀야

특별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선일체

공부는 정혜쌍수

수행은 지관겸수)

 

그렇게 읽고 읽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다 뻥입니다.

석존은 84천 법문의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고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가섭에게 연꽃을 들었던 분이

우리들에게는 분명히 오리발을 드셨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뻥을 친다는 것을 알려면

무슨 뻥인지, 뻥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뻥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바로 앞에서 보이스피싱을 해도 눈을 뻔히 뜨고 당합니다.

 

선문답은 보이스피싱입니다.

살벌합니다.

 

오늘의 주제

읽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납자가 운문에게 묻기를

만약 설법을 듣는 사람도 없고, 설법을 할 장소나 시간이 없다면

세존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야 아무 설법도 하지 않으면 되지

 

그대가 이렇듯

듣는 사람이 내내 없었으니

세존은 아무 설법을 안 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