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강제로, 혹은 실수로, 혹은 형벌에 의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왜 우리는 지구에서 인간으로 태어나는 선택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의식 혹은 우리의 영혼이
지구라는 물질계가 제공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조건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란 우리를 몹시 제한하지만
특정한 대상들에게만 집중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모두 잊는
망각의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현상이 바로 에고와 시공간입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잊은 망각과 시공간이라는 제한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나를 표현하게 해주는 밀도 높은 물질계는
모험심이 강한 영혼들에겐
아주 매력적인 차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를 [탐험]함과 동시에
끊임없이 [재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지구라는 물질계는
[망각]을 하였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알아가고 배워나가는
[성장]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에
우리 영혼은 이 지구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결정의 궁극적 목적은
[나] 자신을 [경험]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인데
왜 영의 세계에서는 나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순수한 영의 세계에는
분리라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있습니다.
그곳은 양극성과 상대적인 것이 없기에
움직임과 변화가 없는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고정되어 완벽한 하나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그 어떤 성장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장이 필요한 존재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은 배움이나 성장이 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어떤 존재나 상황이
신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신이 모든 걸 창조했고
존재하는 것이라곤 오로지 신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단, 신이 자신이 신이라는 걸 모두 잊고
신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제한하게 된다면
신은 거기서 배움과 성장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신이 그러한 경험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바로
이 영상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입니다.
우리는 원래 한계와 제한, 분리와는 무관한
영원한 존재인 신/근원이며,
모두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나를 잊어야
다시 나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신이 신인 상태로만 있으면
자신이 신이라는 걸 알 수가 없습니다.
완전한 앎의 상태에서는
놀라움도, 신비로움도, 경의로움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신이 아닌 것이 있어야
그것을 통해 비추고 비교하여 무엇이 신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신과 신 아닌 듯한 것 사이에
무수한 스칼라가 바로 인간들, 대상들, 영적 존재들
그리고 우주들과 차원으로 표현이 된 것입니다.
지구를 어린 영혼들이 배우러 오는 학교라고 하는 것 역시
잘못된 해석입니다.
자신이 쓴 교과서를 배우러 가는 학생은 없을 테니까요.
이 세상은
신인 내가 창조하고 다시 경험하고 있는 곳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듯 여겨지는 것은
내가 교과서를 쓰고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그 사실을 잊어버렸기에 그런 것입니다.
무언가에 대해 배우고 지식을 얻고 쌓으며
불완전한 나에서
점점 더 완전한 내가 되어가거나
더 작은 나에서
더 큰 나로 되어 간다는 것은 환상입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무한하며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궁극적으로는 무언가를 배우러
혹은 어떤 목적이나 임무를 달성하고
완수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영혼은 어떠한 경험을 계획할 수는 있습니다.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배움과 성장은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신이 존재하는 구조는
이미 완전하고 완벽하기에
이것은 더해지거나 빼지지 않고
고정 불변입니다.
하지만 그 불변의 신은
늘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신의 구조를 경험하는 나를 통해
성장과 확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움직이지 않지만
동시에 역동적이라는 패러독스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미 존재하는 성장으로
이미 존재하는 확장으로
성장하고 확장하는 것이지만,
내일의 나를 통해 오늘의 신은
또 확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나의 경험이고
새로운 신의 경험이 됩니다.
내가 원한다면
나는 더 이상 물질계가 아닌
다른 행성, 다른 차원들의 경험이 가능해집니다.
그 경험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보통
지구에서 더 이상 탐험할 것이 없을 정도의 경험을 했을 때 일어납니다.
만일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모든 인간적인 것을 열등하게 여기고
인간적인 상태를 초월하고자 한다면
영혼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선택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선
완전히 인간이 되는 경험을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완전히 인간이 되어보는 경험을 원합니다.
완전히 인간이 되는 경험이란
인간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가치를 알아보고 인정하여
인간을 통해 영적인 본연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본연의 상태는
조건 없는 사랑, 통합, 감사, 기쁨, 자유, 평온이며
인간이 가진 것은
몸, 마음 혹은 에고, 또 거기서 나오는 감정, 생각입니다.
나는 나를 인간이게 하는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내 것이라 인정하고 있나요?
아니면 인간적인 것은 진짜 내가 아니다라며
모두 부정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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