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법상스님] 보수냐? 진보냐? 지혜롭게 정치하는 길

Buddhastudy 2021. 8. 18. 19:02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이요, 젊었을 때 엄청난 진보성향이었어요.

그래서 보수인 정치인들을 엄청나게 욕하고 그랬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회사에 다니면서 잘나가고 돈도 많이 벌고 이래저래 하다 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봤더니 엄청난 보수로 바뀌어 버렸어요.

 

이게 가능할까요?

우리 언 듯 생각에는

엄청난 진보였던 사람이 엄청난 보수로 바뀌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저는 그 친구를 보고서,

, 이게 가능하구나.”

 

원리적으로 가능하거든요.

왜 가능한지 아세요?

그건 그냥 생각일 뿐이지, 그게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은 똑같은 연봉을 가지고

어떨 때는 너무나도 부자라고 느끼다가

어떨 땐 또 너무나 가난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옛날에는 20평 아파트만 있으면 좋겠어, 이랬는데

나중에 40평 아파트에 살아도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계속 변해가기 때문에, 제행무상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분별심은 계속 바뀌어요.

바뀌는데 이걸 바뀐다는 생각을 못하고

이게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바뀌거든요.

 

그런데 나는 이게 실제라고 집착할 때 우리는

특정한 종교적인 견해, 정치적인 견해,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에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을 믿게 돼요.

 

그 견해를 취하는 건 좋습니다.

그게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고 해서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집착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소리예요.

 

불교는 그러면 보수가 맞다고 합니까? 진보가 맞다고 합니까?

그런 거 없어요. 어떤 견해도 쥐지 않아요.

그러나 마음을 내도 좋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하잖아요.

 

진보적 성향을 가져도 좋아요.

보수적 성향을 가져도 좋아요.

어떤 마음을 가져도 좋습니다.

그걸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 그걸 절대 진실이라고 집착하지만 마라.

 

나는 이게 옳다고 생각한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절대 진실이고 저 놈들은 절대 틀렸어하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집착한 생각이니까.

 

그 생각은 그냥 왔다 가는 것인데

내가 취했기 때문에.

그럴 때 우리는 괴롭죠.

 

또 그랬을 때, 여기에만 꽉 사로잡히면 저쪽 사람들의 상대를 둘로 나누니까

적으로 규정을 하거나 아주 잘못된 거로 규정하거나

옳고 그름, 맞고 틀림으로 규정해서

저들과 대화를 하지 않게 돼요.

 

그런데 진짜 중도적인 훌륭한 어떤 정치인이 있다면, 불교적인 정치인이 있다면

제가 느끼기에, 불자 정치인이라면

부처님 중도를 제대로 아는 정치인이라면

여기저기 중간쯤에 있겠다.”

이게 중도 정치냐? 아니에요.

 

보수를 하더라도 불교적인 정치인이 될 수 있고

진보를 하더라도 불교적인 정치인이 될 수 있어요.

어떻게?

 

보수를 하면서도

내가 이게 옳다고 느끼니까 열심히 해요.

그러나 나만이 절대적으로 옳아가 아니라

저 사람들이 옳은 견해도 있을 수 있어.”

턱 마음을 열고 있는 거죠.

 

그러면 이런 사람에게 저쪽 사람들이

더 다가가서 대화하고 싶지 않겠어요?

꽉 막힌, 나밖에 모른다는 정치인과 대화하고 싶겠어요?

그러니까 좌우 대립을 화합시키지 못해요.

한쪽에 치우쳐 있는 정치인들은.

 

부처님 중도의 사상을

바르게, 올바르게 지혜롭게 이해한 사람은

어느 쪽에 있더라도 그쪽에 사로잡히지 않아요.

그게 무주법이에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법.

 

겉으로 봤을 땐 속해 있는데

그 사람은 자유로운 거예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