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 스님은 왜 불교 강의가 아닌 즉문즉설을 하시나요? (2023.10.24.)

Buddhastudy 2023. 12. 26. 19:44

 

 

지난달에 스님의 영어 즉문즉설 강연에 친구를 초대했어요.

친구는 오랫동안 불교를 공부하고 있는데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들으며 의문이 생겼다고 합니다.

불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며

스님께서 붓다의 가르침을 알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질문에 답변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랫동안 즉문즉설 강연을 해오고 있는데

이런 대화 형식의 강연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핵심 목표는

인간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네 가지로 나누어서 접근했습니다.

-첫째, ‘괴롭다하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둘째,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 원인을 제거하면 괴롭지 않은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넷째, 앞으로 괴로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고집멸도(苦集滅道),

즉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을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즉문즉설은 이 사성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놓음으로써

본인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제가 묻고 상대가 답하는 과정에서

그 괴로움의 원인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대화 중에 질문자는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 별일 아니었네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세 번째 단계입니다.

집에 돌아가서도 괴로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네 번째 단계입니다.

 

사성제를 통해 인간의 괴로움을 없애려고 했던 붓다의 방식을

제가 지금 즉문즉설을 통해 행하고 있는 거예요.

 

붓다는 사람들과 만나서 불교 교리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아들이 죽었다’, ‘남편이 죽었다

온갖 사람들이 삶 속에서 겪는 괴로움을 가지고 와서

붓다에게 호소하면

붓다는 이런 대화 방식을 통해서

그들을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했습니다.

 

이러한 대중과 붓다의 수많은 대화를 분석해서

그 원리를 가지고 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점점 학문화된 것이 철학으로서의 불교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붓다를 믿으면 모든 괴로움이 없어진다’,

붓다를 믿으면 네가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진다하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발전한 것이 종교로서의 불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불교는

종교로서의 불교와 철학으로서의 불교, 이 두 가지입니다.

 

저는 붓다의 고유한 방법에 따라 불교를 실천하다 보니까

위의 두 가지 방향과는 사뭇 달라 보일 겁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지식은 그냥 지식일 뿐입니다.

그 지식을 안다고 해서 우리의 고뇌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하는 것을

근본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즉문즉설이 바로 부처님이 행하신 담마 토크(Dharma Talk)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단순히 불교에 대한 교리를 설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가진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해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제가 즉문즉설을 하는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담마 토크의 원리나 법칙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담마 토크의 원리와 법칙은

바로 사성제, 팔정도, 중도, 연기법, 무상, 무아 등 불교의 교리입니다.

이런 원리를 알고 싶다면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런 원리에 대한 설명이 바로 불교 철학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목표는 이런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불교의 목표입니다.

 

자동차 운전을 한번 비유로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자동차가 움직이는 원리를 잘 몰라도

액셀레이터를 밟고,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돌리고,

이런 몇 가지 기능만 알아도 운전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해서 편리함을 누립니다.

 

그러나 왜 핸들을 돌리는데 차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가느냐

왜 엑셀레이터를 밟는데 차가 앞으로 가느냐

어떤 이유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서느냐

이런 의문점을 이해하려면 차의 구조나 작동 원리를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동차 정비사가 하는 일입니다.

물론 정비도 할 줄 알고 운전도 할 줄 알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정비를 할 줄 몰라도 운전을 할 수 있고

자동차를 이용하여 편리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즉문즉설 강연에서 저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의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운전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간단한 원리를 배워서 자기 생활에 적용하면 자유롭게 살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는 불교교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정토불교대학을 마련한 것입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불교의 원리와 법칙에 대해 자세히 공부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전법을 담당하는 정토회의 전법활동가는

어느 정도는 이런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운전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정비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운전만 가르치면 되지

정비까지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운전을 못하는 정비사도 있을 수 있고

운전을 할 줄 아는데 자동차를 정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를 수도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연구하고

불교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도

실상 자신의 고뇌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학교 교수는 될 수 있고, 박사는 될 수 있더라도

자신을 괴로움이 없는 해탈의 길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즉문즉설의 목표는

사람들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소수라 할지라도 불교의 원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필요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