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챗GPT가 바꿀 미래가 걱정됩니다. (2023.04.30.)

Buddhastudy 2024. 1. 30. 19:52

 

 

요즈음 뉴스에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ChatGPT)

중요한 이슈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제가 챗GPT에 대해서 궁금한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GPT 등장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개발된 것처럼

우리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합니다.

기대가 되면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이 어떤 마음과 태도로 챗GPT를 사용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둘째, 지금까지 전통적인 학습은 지식을 전달하고 습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공지능과 챗GPT를 이용하여

많은 정보와 지식을 손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습의 필요성이 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면

자동번역기가 있는데 왜 영어 공부를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학습은

어떤 목표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100년 전을 생각하면 포클레인도 없지 않았습니까?

200년 전을 생각하면 자동차도 없었지 않습니까?

전기불과 전기톱도 없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기계가 발명이 되고 많은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그만큼 자연이 많이 파괴되기도 하면서

때로는 다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또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나와서

뉴스가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아는 것이 많아졌지만

그만큼 나쁜 것도 굉장히 빨리 전파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옛날 같으면 그 지역에서 발생했다가 사라질 텐데,

과거와 달리 인류가 전 세계로 이동을 하다 보니까

사람을 따라서 전 세계로 순식간에 확산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과학 기술은 도덕성과 가치관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에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하는 거예요.

또 지금 유리한 것이 나중에 불리한 것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가운데

지금은 지금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지금이 천국 같아도

지금 사람들 역시 괴로움이 존재합니다.

 

옛날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사나?’ 하고 생각할 것 같아도

지금 사람들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앞으로 그 무엇이 개발되어도

인간의 괴로움은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 무엇이 개발되어도

인간은 거기에 적응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무엇이 개발되어도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이 숫자와 문자를 발견한 것은

그 당시에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어

100개 내지 1000개 이상은 헤아리기가 어려웠는데

숫자가 발명되니까

엄청나게 많은 수()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고,

문자가 발견되면서

수많은 경험을 기록해서 먼 곳까지,

후대까지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기술 개발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하지만

옛날 문자가 발견되었을 때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인격적인 감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문자로만 전달이 되다 보니

점점 지식화되는 폐단이 생겼습니다.

 

그것처럼 지금의 기술 개발도

인간의 사고를 편향된 쪽으로 흘러가게 하거나

나쁜 것을 빠른 속도로 전달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첫째,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또다시 적응해서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며칠 전에 오지 마을 숲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지금 선진국 사람들에게 그곳에 가서 살라고 하면 못 살 겁니다.

매일 물을 길어 물동이를 이고 1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오가며 살 수 있겠어요?

하루에 네 번 물동이를 이고 와야 온 가족이 겨우 밥을 해 먹을 수 있는데

그 물을 갖고 무슨 목욕을 하고 무슨 빨래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목욕과 빨래는 거의 포기한 상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적응해서 산다는 겁니다.

태어나서 그런 모습만 보고 살면

그런 환경이 아무렇지도 않고 원래 사는 것이 그런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진국 사람들에게 거기서 살라고 하면 못 살아요.

 

반대로 그 사람들이 선진국에 오면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천국 같을 겁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서는 인간의 차별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런 숲속 마을 오지에는 차별이 없어요.

 

선진 사회라고 하는 곳에서 온갖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또 다른 괴로움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변하면 변하는 대로 인간은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시기에는 어떤 사람이 괴로울까요?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는 기성세대가 가장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산업사회로 변화할 때

농사를 20년씩 지은 40대들은 기계를 만지는데 서툴렀어요.

그런데 스무 살이 안 된 젊은이들은 금방 적응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도시에 와서 노동자가 되어 빠르게 적응을 해나갔고,

가족을 거느리고 온 40대들은

대부분 도시 주위의 빈민촌을 형성해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변화의 시기에는 기성세대가 불리합니다.

그렇지만 또 그 나름대로 모두 적응해서 살게 되어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학교 공부를 하지 않고도 다 잘 살았잖아요.

그러나 산업사회가 되면서 학교 공부를 통해 지식을 배웠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이 삶을 살아가는 수단이 되었죠.

지금은 지식과 기술이 모두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근대사회처럼 지식과 기술을 암기하고 습득하지 않아도

우리는 삶을 살 수가 있게 된 거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과학 기술이 개발되든

그것을 운용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어떤 습관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미래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능력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창의성이라고 합니다.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지식을 이용해

지금 내 앞에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자녀 문제, 개인 문제 등

인생의 많은 고민이 있을 때 절에 간다고 해결이 되었습니까?

부처님과 하느님에게 빌어도 해결이 안 되죠?

 

그런데 즉문즉설을 통해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것은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네’,

이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되겠네’,

이것은 이렇게 하면 별 문제가 아니네하고 느낄 수가 있잖아요.

 

이것은 전통적인 법문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지금 전통적인 종교는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농업사회에는 90퍼센트가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농사짓는 사람이 10퍼센트도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산업사회에는 대부분이 공장에 다녔는데

요즘은 자동화가 되고 공장에 다니는 사람이 소수가 된 것과 같아요.

 

이렇게 인간은 환경이 바뀌면 다시 적응하며

다른 일로 직업을 바꿉니다.

직업을 바꾸는 과정에서

예전에 지녔던 기술이 필요 없어지는 사람들은 무

기력에 빠지는 고통을 겪게 되죠.

 

이때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반대하면

사회변화가 늦어져서 실패한 사회가 되고,

변화를 빠른 속도로 따라가면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변화는 받아들이되

자동화됨으로 인해 필요 없어진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사회보장제도로 보호해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해야 합니다.

 

단순히 기술의 변화만 쫓아가서는 안 되고

변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최대한 고통이 적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사회적인 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좋은 점도 많습니다.

영어를 안 배워도 되면 더 좋죠.

무엇 때문에 영어를 배우려고 합니까?

 

제가 어릴 때는 주산과 암산을 배웠습니다.

요즘은 전자계산기를 누르면 되는데

굳이 주판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잖아요.

 

10년 전만 해도 저는 해외여행을 다닐 때 지도를 한 가방 갖고 다녔어요.

그런데 요즘은 지도를 한 장도 안 가지고 다닙니다.

그냥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검색해서 다니면 되니까요.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 맞게 적응해서 살아가면 됩니다.

 

기억하고 암기하고 암산하는 기능은

앞으로 그 필요성이 갈수록 적어질 겁니다.

 

과거 조선조 말에 근대학교가 생기면서

서당에서 공부하고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를 등용하던 시스템이

의미가 없어졌던 것처럼

이런 지식적인 기능으로 학생들의 등수를 매기는 현재의 학교 시스템은

미래사회를 생각해 봤을 때 큰 의미가 없습니다.

 

부모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 때문에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켜

등수를 올리려고 하는데

조선조 말의 과거시험처럼

지금의 학교 시스템도 거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제는 창의성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도하고

아이들이 갖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특이한 성격을 갖거나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기성사회에서는 배척이 되었는데

지금같이 변화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런 사람의 아이디어가 중요하게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된 사회에서는

기성교육에 너무 매달리는 것은 큰 실효성이 없다고 봅니다.

 

전 세계에서 영어를 사용하니까

요즘은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내지만

영어를 잘한다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굉장히 중요시되는데

모든 사람이 다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이런 변화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요즘은 해외여행을 다닐 때도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면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큰 문제가 없어요.

저도 지금 해외에서 번역기를 사용하며

현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전문 분야나 즉문즉설 같은 대화에서는

번역기만 갖고는 대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영어를 못 한다고 해서

해외여행을 못 가거나 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앞으로 번역 앱의 기술이 더 정교해지면

전문적인 영역에서도 번역기를 사용할 수 있겠죠.

 

그래서 변호사 같은 직업도 앞으로는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 거예요.

왜냐하면 모든 법률을 다 학습시킨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잘 판결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사람이 판결할 때는

법에 어긋나더라도 상황을 봐서 형량을 낮춰주거나

처벌 수위를 조정하는 융통성을 가질 수 있는데

기계는 그걸 못하겠죠.

그러면 너무 경직된 사회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제가 어제 인도에서 부탄으로 가는 국경에 6시에 도착했는데

입국심사를 하는 사무소가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법적으로는 24시간 열도록 되어 있는데

임의로 이렇게 닫기도 하고

또 사정을 하면 열어주기도 합니다.

 

9시에 국경을 넘게 되면

그날 저녁 대사님과 잡힌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한국 같았으면

어쩔 수 없이 9시까지 기다려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는 사람들이 계속 문 앞에 서서 열어달라고 간청을 하니까

심사관이 자다 깨서 업무를 봐줬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같으면

규칙이 정해졌으면 닫지도 않고 열지도 않겠지요.

이러한 융통성 때문에 뒷돈이 오가는 부정부패도 있지만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긴급할 때는 또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미래에 인공지능으로 모든 업무가 이루어지면

부정부패는 없어질지 몰라도

융통성도 함께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굉장히 경직된 사회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운전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도 사람은

그냥 간 김에 이 길로 가자하고 갈 수 있는데

내비게이션은 계속 돌아가라고 안내만 하잖아요.

정해진 길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라고만 하는 겁니다.

 

그런 것처럼 인공지능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질문자 정도의 나이면

삶을 사는데 유용한 도구로써 사용이 될 뿐이지

벌써 인공지능 때문에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거나

인공지능에 지배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요즘 외로운 사람들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 않습니까?

반려동물에 애착을 갖다 보니

병원비를 비롯해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앞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노인들도 잘 돌보고 애들하고도 잘 놀아주고 부엌일도 해주는 로봇이 나온다면

강아지 키우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삶이 편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로봇이 나와서

삶의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해도 안 돼요.

인생의 문제는 삶이 편리해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고

마음공부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를 계속 지켜보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해악이 된다면 규제를 하면 되고,

인간에게 유리하다면 발전을 시키면 됩니다.

 

인공지능은 이런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을 살펴가면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사용해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