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재혼에 대해 상대편의 가족이 반대를 하니 화가 납니다. (2024.01.03.)

Buddhastudy 2024. 2. 1. 20:16

 

 

8년 전 이혼을 하고 아이 둘을 혼자서 키우고 있습니다.

4년 전 이혼을 한 남자를 새로 만나게 되었고,

이 남자는 이제 12살 된 아이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남자에게 기대고 싶었던 마음이 큰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이 남자를 보면

좋은 마음보다 화나는 마음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저와의 재혼을 반대하는 아이와 어머니를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너무 화가 납니다.

그런데도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제가 너무 한심하고요.

다섯 가지가 좋은데 다섯 가지가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답답합니다.

좋은 다섯 가지를 위해서 싫은 다섯 가지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싫은 다섯 가지를 버리려면

다섯 가지 좋은 것도 같이 버려야죠.

경전에 공덕천(功德天)과 흑암천(黑闇天)’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남자에게 공덕천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미인이 찾아와서

이 집에 들어가도 됩니까?’ 하니까

남자가 어서 오십시오하고 환영을 했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아주 얼굴이 검고 못생긴 흑암천이라는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흑암천이 이 집에 들어가도 됩니까?’ 하고 물으니

남자가 안 됩니다하고 거절을 했어요.

그러자 흑암천이 조금 전에 들어간 분이 제 언니입니다.

우리는 자매지간이라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공덕천을 받아들이기 위해 흑암천을 받아들이고,

지혜로운 자는 둘 다 쫓아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질문자가 공덕천을 받아들이려면

흑암천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남자를 받아들이려면

그 아이도 받아들여야 하고, 그 어머니도 받아들여야 해요.

왜냐하면 그 둘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을 딱 떼서 너는 가고, 너만 오너라!’ 이렇게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나머지 둘이 싫으면 남자도 포기를 해야 합니다.

둘을 딱 떼서 좋은 면만 갖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아이와 아버지의 천륜을 끊어내려는 행위가 되고,

모자지간의 천륜을 거스르는 행동이 되는 겁니다.

내 이익을 위해서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을 서슴없이 한다면

그걸 어떻게 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건 애당초 갈 길이 아니에요.

그리고 질문자 역시 재혼할 처지가 아니잖아요?

 

재혼을 하겠다면 둘을 받아들여야 하고

재혼을 안 하겠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 남자와 가끔 만나서 연애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하지 안잖아요.

가끔 만나서 대화하고 즐기는데 그걸 할머니가 알겠어요, 아이가 알겠어요?

음부터 만나지 말든지,

만나도 친구 정도의 관계만 유지한다고 생각하면

상대편의 가족을 원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외로울 때마다 가끔 만날 수 있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면 돼요.

 

질문자가 재혼할 처지가 된다면

상대에게 한번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해 보면 됩니다.

재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상대가 맺고 있는 관계를 다 수용할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혼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어떡하고 어머니는 어떡해요?

 

그 남자에게서 아이와 어머니를 떼어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고 세상에 분란을 일으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친구로 지내는 건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친구로 지내든지,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상대의 가족을 모두 수용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얼굴만 갖고 싶다고 해서 손발을 잘라낼 수는 없잖아요.

미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딱 가지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질문자는 수행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따끔하게 이야기해 드린다면

심보가 더럽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보를 고쳐야 합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연애는 둘만 좋으면 됩니다.

나이 차이가 나도 아무 상관이 없고

외국인이랑 연애를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혼이란 둘이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결혼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나 혼자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약 질문자도 남자친구가 재혼을 하자면서

질문자의 아이 둘을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하면 결혼할 수 있겠어요?

본인도 안 되면서 왜 상대편에게는

아이와 어머니를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하는 게 말이 돼요?

애초에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저 친구로 지내든지, 그것도 안 하든지

둘 중에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이상을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이기심입니다.

괜히 질문했다가 본전도 못 건진 것 같죠?

 

...

 

그런 관점을 가지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

 

다행히 질문자가 수행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수행자니까 이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겁니다.

만약 제가 일반인을 상담하면서

너 심보 더럽다이렇게 말하면 큰일 나겠죠.

일반인에게는 그런 말을 못 합니다.

그냥 좋게만 얘기하거나 침묵을 하게 되죠.

 

그런데 우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큰 대화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이런 대화는 수행자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