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89회) 살생 업에 대한 참회기도

Buddhastudy 2011. 3. 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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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몸이 아프고, 가족 중에도 병이 나거나, 신체장애가 있거나 그러면, 부모로서는 또 할머니로서는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몸이 아픈 게 이게 괴로움인가? 손자가 몸에 화상을 입은 게 이게 괴로움인가? 이 말이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늦게 들어오는 것, 애가 공부를 잘 못하는 것. 이것이 괴로움이라고 하는데. 하나하나 문제를 삼아서 괴로움이라고 하면 이 세상에 안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온갖 것이 다 괴로움이에요.

 

우리가 볼 때 얼굴이 아주 예쁜 미인은 그 사람은 더 예뻐지기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하고 비교했을 때, 코만 조금만 더 높았으면, 또 눈만 조금만 더 커졌으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삼아서 괴로움을 만들면 천만 가지가 다 괴로울 일이고. 그런데 놔 버리고 생각해 보면 괴로울 일이 또 아무것도 없어요. 우선 몸이 좀 안 좋다 이러는데. 눈 어두워서 안 보이는 사람하고 비교해 보면 어때요? 감사한 일이죠.

 

또 음식을 입으로 못 먹는 사람. 그래서 목구멍에 이렇게 구멍을 뚫어서 죽을 넣고 사는 사람 있잖아. 거기에 비교해 보면 이빨이 좋으니 안좋으니 해도. 이렇게 내 입으로 음식으로 씹을 수 있는 거에 참 굉장히 건강한 거요. 휠체어 타고 걷지 못하는 사람에 비교한다면 그래도 계단도 걸어서 오를 수 있다는 거. 이거 엄청난 복이오. 손이나 팔 없는 사람 한 번 보세요. 그 불편한 거에 비하면 음식을 자기 손으로 떠 먹을 수 있다는 이것도 큰 복이고. 말 못하는 사람에 비하면 좀 내가 더듬거리고, 말 할 때 좀 떨린다 그래도 할말은 다 하잖아 그죠? 저 말 잘 못해요. 하면서 할 말은 다 합디다.

 

그러니까 이 우리가 가진 복이 굉장히 많다는 거요. 그런데도 늘 부족하고 불만이오. 이 사람들 극락에 가도 불만투성이오. 불만 없을 거 같아요? 그러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아들 못 낳는 사람은 아들만 낳았으면, 아들 낳으면 또 공부 잘했으면, 공부 잘 하면 또 좋은 직장 들어가서, 또 배필 잘 만났으면, 손자 잘 됐으면. 언제 끝나겠어요? 이게.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분들 죽을 때까지 불행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면 자기를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그 불행의 원인을 찾는단 말이오.

 

왜 내가 불행할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봐. 하느님을 안 믿어서 벌 받나 봐. 사주팔자가 나쁜가 봐. 이렇게 자꾸 뭘 만든단 이거야. 만일 내가 불행하지 않다면 그런 원인을 찾을 게 없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니까 안 죽고 살아있다는 것만해도 너무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또 하루 살아서 좋은 거 보고, 좋은 거 듣고, 좋은 거 먹고, 좋은 일 할 수 있게. 죽어 버리면 못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무슨 전생타령하고, 사주팔자 타령하고, 하느님타령 할 일이 뭐가 있어요?

 

두 부부가, 그저 남편이 죽어버렸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 중에 죽어버렸으면 속 시원하겠다는 사람도 있기는 있겠지마는. 막상 죽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미워하던 사람도 딱 죽어 버리면 후회되는 일이 많아요. 불평불만 있어도. 그러니까 남편이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이거야. 직장 안 다닌다고 불평하지만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마워요. 직장, 월급이 많니? 적니? 해도 직장 다니는 것만 해도 고마워요. 늦게 들어오니? 일찍 들어오니? 그러지만은 병 안 난 것만 해도 고마워요. 좀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바람 피운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거요? 안건강하다는거요?

 

건강이 안좋으면 바람이나 피우라 해도 피울 수 있겠어? 건강이 안좋으면 술이나 먹으라 해도 먹을 수가 있겠어?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지만 빌려줄 처지가 된다는 거요. 일가 형제들이 자꾸 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은 빌려줄 만한 처지가 되니 찾아와서 빌려달라 그러지. 도와줄 처지가 되니 도와달라 그러지. 자기 처지가 좋다는 얘기 아니오 그게. 그런데 자기에게 유리한 거는 생각 안한다는거요. 늘 더 가지려 하고, 더 올라가려 하니까 끝이 없어요. 언제 끝나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손자가 그 화상을 입고도 안죽고 살은 것만 해도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데. 안죽고 살은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그러면 여기에 다른 얘기는 아무 필요가 없어요. 그 나머지는 살았는데, 좀 모양을 좋게 하는 거는 현대 의료기술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거요. 그런데 거기 자꾸 원래 되로, 원래 되로. 원래 되로 있는 사람도 또 더 만든다고 다 수술 하잖아요. 요즘에. 요즘 학교 선생님들 얘기 들어보면요 방학 하고 오면 애를 잘 못 알아 본데요. 하도 많이 고쳐가지고. 이런다고 행복해 지느냐는 문제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질문하신 거, 기도문을 줘서 아침에 어떻게 해라, 저떻게 해라, 어떻게 해라, 저떻게 해라. 이거 다 방법이에요. 그러나 지혜로운 자라는 거는 한 생각 탁 바꿔버리면 더 이상 할 게 없어져 버려. 손자는 아이고 그래도 그 화상에 옛날 같으면 죽었어요? 살았어요? 죽었지. 시절이 좋아서 부처님 가피로 아이고 우리 손녀 살아서 감사합니다. 거기다가 예뻐야 되고, 좋은데 시집 잘 가야 되고, 공부 잘해야 되고, 이렇게 붙이면 끝이 없다니까.

 

그냥 아이고 그 어려운 가운데도. 참 옛날 같으면 죽었는데 내가 절에 다니고 우리 부처님돌봐주셔서 저래도 구사일생으로 살았구나. 아이고 살은 것만해도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번뇌가 싹 없어진다니까. 몸 아픈 것도 그래. 아이고 그래도 눈이라도 떠서 보이네. 아이고 스님 법문도 들을 수 있네. 그래도 절에 꾸벅꾸벅 걸어 올 수는 있네. 아이고 몸이 이만하길 얼마나 다행이야. 이 세상에 아파서 눈 안보여서 스님 얼굴도 못보고, 부처님 얼굴도 못보고, 귀가 어두워서 스님 법문도 못 듣고, 다리가 아파서 여기 오지도 못하는 사람 많은데 아이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내야 몸이 낫는단 말이오. 몸이.

 

그렇게 마음을 안내고 늘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으니까 병원에 다닌다고 이게 낫겠어요? 그렇게 마음을 딱 내십시오. 그러면 기도라는 거는 이렇게 오늘 법문 듣고 그렇겠구나, 그렇구나. 했는데. 문만 열고 가면 그렇게 안되는게 문제란 말이오. 또 시비가 생긴다. 그럴 때 돌이키는 거요. 아이고 내가 또 경계에 팔렸구나. 내가 또 진리를 놓치는구나. 내가 또 상에 집착하구나. 그러면서 엎드려 절을 하면서 집착한 거를 다시 내려놓고. 어리석음을 다시 내려놓고 이게 공부란 말이오.